[컬쳐컬럼]일본중학생들과 함께 본 <돈 후안>

2011-03-24     임연철 / 국립중앙극장장

몰리에르는 희곡으로, 바이런은 희극시로 모차르트는 오페라 <돈 조반니>로, R.스트라우스는 교향시로 창작할 만큼 14세기 스페인의 전설적 인물‘돈 후안’을 끊임없이 예술적 창작의 소재가 되어왔다. 오늘날 여성 편력가의 대명사처럼 되어있는‘돈 후안’을 지난 구정 연휴가 시작되는 2월 1일 일본 시즈오카 무대예술센터(SPAC: Shizuoka Performing Arts Center)에서 만났다.

스페인 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Tirso de Molina)와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Moli're)의 희곡을 종합해 만든 연극이었다. 연상의 여인과의 정사, 해적의 딸 하이디와의 사랑, 콘스탄티노플 왕비와의 사랑, 러시아 예카테리나 여왕의 총애 등 여성 편력가의 대명사가 된‘돈 후안’에 대해서는 줄거리나 인물에 대한 소개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후 5시, 시즈오카 중심에서 약간 떨어진 SPAC 예술극장의 600여 좌석은 남녀 중학생으로 꽉 차 있었다. 2층 오른쪽 좌석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학생 관객들을 보고 필자는‘내가 공연 장소를 잘못 들어왔나’하고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통역을 맡은 분이 맞다고 해서 자리에 앉았지만“어떻게 <돈 후안>이 중학생 관람가가 되고 그것도 학교 전체가 단체 관람을 할 수 있는지?”혼란스러웠다.
통역은 나중에 SPAC 예술총감독과 면담시간이 잡혀 있으니 물어보라고 말하면서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자신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날 관람한 SPAC <돈 후안>의 특징은 출연자들이 모두 서양인 모습의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점이었다. 관람 후 미야기(宮城聰)총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출연배우마다 맞춤형 가면을 제작해 눈의 움직임이나 입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했고 가면을 씀으로써 일본인 배우지만 서양인 분장으로 연극의 사실성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마침 하늘이 맑아 후지산(富士山)이 창밖으로 환히 보이는 극장 로비에서 미야기 총감독으로부터 궁금했던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궁금했던“어떻게 중학생들에게 <돈 후안>같은‘남자 바람둥이’ 주제의 연극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옆에는 여성인 나루시마(成島 洋子) 무대예술센터 예술국장도 동석해 있었다.
미야기 총감독은“그 같은 의견은 처음부터 고려대상이 아니였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학생 관람여부는 고전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돈 후안’은 뮤지컬, 오페라, 연극 등 수많은 장르로 무대화 되었습니다. 그만큼 고전이라는 의미지요. 표현상 외설적이거나 폭력성만 없다면 학생들이 관람해도 무방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미야기 총감독은“주인공‘돈 후안’이 바람을 피우는 세기의 색남(色男)으로 나오지만 그 결과로 신으로부터 벌을 받는 내용은 교훈이 되기도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나루시마 예술국장도 동감임을 표현했다.

 두 사람의‘열린 사고’에 대해 이해는 하면서도 한국 실정에서 보면 중학생 관람용 연극이라고 하기에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탕한 남자를‘돈 판(돈 후안) 같은 놈’이라고 부르는 사회 분위기에서 아무리 고전이라해도 이를 중학생 미성년자에게 보이는 것은 사회적 거부감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엄격한 성적 도덕성을 강조하는 기독교와 유교문화의 전통이 강한 한국의 특성 탓으로 말도 꺼내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기록이나 금기는 깨라고 있는 것”,“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는 금언도 있는 만큼 불가능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서울의 국립극장은 중학생 관람용 연극 레퍼토리로 <시집가는 날(맹진사댁 경사)>, 고등학생용으로 <봄 봄>을 공연하고 있다. 모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들이다. 학생들에게 일찍부터 문화예술 감상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성인이 되었을 때 자연스레 문화예술과 가까이 하도록 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SPAC에서도 똑같은 목적으로 <중학생 문화예술 감상 추진사업>, <고등학생을 위한 연극 감상교실>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 두 기관간의 차이는‘국립’과‘시립’이다. 

국내에는 전국적으로 2000여개의 공립극장이 있다, 시설도 잘 되어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활동예산의 부족으로 일반인을 위한 공연도 열지 못하고 있다. 학생을 위한 공연은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국립극장의 프로그램은 서울, 기껏해야 수도권 학생들이 볼 수 있을 뿐이다. 하루 빨리 16개 시 ·도의 주요공연장에서도 서울 국립극장 수준과 규모의 청소년 공연이 일반화되기를 기원한다.

미야기 총감독과의 대담이 끝난 후 나루시마 예술국장은 SPAC소속의 리허설 센터와 야외 공연장 등이 있는 차로 10분 거리의 별도 예술센터를 안내했다.경내에 차밭이 잘 가꾸어진 리허설 센터와 소극장은 20여 년 전에 일본의 경제 환경이 좋을 때 지은 것으로 20여명이 숙식을 하며 연극이 가능하고 소극장은 100여명의 특별관객을 위한 연극이 자주 공연된다고 한다. 특별관객이란 후원자들로 각종 공연 주최자들이 이들을 위해 소규모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2월 23일자 첫 글에서 밝힌 것처럼 필자의 이번 일본 방문은 일본문화교류기금(Japan Foundation)의 초청으로 1월 29일 일본 동북부 아키타(秋田)현에서 시작됐다.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미야기(宮城)현의 이웃 현이다. 지난 회에 소개했던 와라비 극장과 관계자들에게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