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조선 일류 가객, 박춘재 (8)

제2장 - 박춘경의 제자가 되다

2011-06-13     박춘재 일대기

사람들은 그때 잡가에는 박춘경이 으뜸이라고 말해주었다. 유산가는 그동안 잘 불려지지 않았는데 스승이 가사와 곡을 정리해서 직접 불러왔기 때문에 지금은 널리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고도 했다. 그 말은 잡가에는 박춘경이 으뜸이라는 말과 통하는 것이기도 했다.

박춘경은 원래 사설 지름시조를 잘했는데 그 곡조가 정확하고 비교적 긴 가사를 잘 소화해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가 정리한 잡가는 다른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리되고 퍼지게 된 게 열 두 잡가였고, 그 첫 번째로 꼽는 것이 바로 유산가였다.

유산가는 원래 있던 것을 박춘경이 대폭 수정해서 새롭게 한 것인데 지금의 유산가는 원래의 유산가에 비하면 싱거울 정도라고 했다. 본래의 유산가는 가사가 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란춘성, 으로 시작되는 부분도 원래의 유산가에는 맨 마지막에 붙어 있었다고 했다. 가사와 곡을 정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열두 잡가는 그런 식으로 소리꾼 사이에서 불려져 오면서 지금의 소리로 정착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니 소리를 배운다는 것이 결코 소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열 두 잡가를 되새겨 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소춘향가, 집장가, 십장가, 형장가, 평양가, 선유가, 달거리, 출인가, 방물가, 이 노래들은 언젠가는 자유자재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정복하고 말리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래서 소리꾼들을 만날 때마다 누가 무슨 노래를 잘 부르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가 그가 어디 살며 이름은 무엇인지 잊지 않기 위해 적어 놓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움집에서 세번째 겨울을 지나고 났을 때 하루는 스승이 춘재를 서강 나루터 주막거리 소리방으로 보냈다. 무당소리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니까 가보라는 것이었다. 가서 보니까 선소리꾼들이 잔뜩 모여서 한 해 재수굿을 벌이고 있었다. 매년 무당들을 불러왔는데 올해는 나이든 무당들이 모두 병객이 되고 젊은 만신들만 있는데 소리가 도무지 맘에 들지 않는다면서 거기 무당소리를 잘하는 젊은이가 있다고 해서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자네가 그 젊은이란 말인가?”
 이제 겨우 열 네 살이 된 춘재를 보고 산타령꾼들은 기가막혀 혀를 끌었다. 그러나 다짜고짜 무당 흉내를 내기 시작하는 춘재를 보고 모두 비켜서면서 배꼽을 쥐었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장고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썩 나서더니 반주를 해주는데 움집 안이 갑자기 굿청이 되어 버렸다. 그러자 춘재의 목소리가 으뭉스럽게 잦은난봉가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