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얘, 넌 어떤 기분일 때 '연애' 하니?

작가 최인석 10번째 장편소설 <연애, 하는 날> 펴내

2011-09-26     이소리(시인, 본지 논설위원)

“기분이 더러웠다. 배우자를 강간하는 것이 범죄냐 아니냐, 하는 논쟁을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났다. 그런 논쟁 자체가 상곤에게는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는데, 범죄가 분명하다는 쪽으로 토론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 토론에 따르면 상곤은 범죄를 저지른 셈이었다. 월요일 아침, 그는 성범죄로 하루를 시작했다. 도대체 이런 억울한 노릇이 어디 있단 말이냐. 어째서 아내는 그를 성범죄자로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75쪽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사랑’ 그 속내로 도망칠 수밖에 없는 세상이며, ‘연애’ 그 알몸에 매달려 ‘헉헉’거리며 악을 쓸 수밖에 없는 사회일까. 무엇이 그들을 ‘사랑’ 혹은 ‘연애’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그 ‘사랑’은 ‘참사랑’일까. ‘8282 스트레스’와 몸이 지닌 본능, 그 욕망을 푸는 것을 ‘연애’라고 하는 것일까.

 사랑과 ‘연애’, 그 선은 어디에 그어져 있을까. 몸에 그어져 있을까. 몸이 아닌 마음으로만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애타게 기다리는 것, 그것이 ‘사랑’일까. 몸과 마음을 함께 섞는 것, 그것이 ‘연애’일까. 마음은 없고 몸만 서로 섞는 것, 그것은 ‘사랑’도 ‘연애’도 아닌 ‘불륜’ 혹은 ‘성범죄’일까. 사랑, 연애 그 갈림길은 어디에 있을까. 그대는 어떤 기분일 때 '연애'를 하는가?

 작가 최인석이 이번에 펴낸 열 번째 장편소설 <연애, 하는 날>에 그 답이 엎드려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해보는 여자와 처음부터 사랑보다는 물질에 길들여진 남자를 통해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속내를 발가벗긴다. 그들을 올가미처럼 묶고 있는 그 속에 ‘사랑’과 ‘연애’가 어정쩡하게 서 있다는 것이다.

 내 아내가 참으로 예뻐졌다. “연애라는 것은 어찌 보면, 기대하기로는 가장 은밀하고 가장 친밀한, 어쩌면 결혼보다 사회적 인지를 덜 필요로 하기 때문에 훨씬 더 은밀하고 사적인 인간관계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인간관계가 집, 이라는 것과 더불어 물질이나 물적 관계로 하여 어떻게 피폐하고 참혹한 지경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문예중앙> 127호 ‘대담’ 몇 토막

 작가 최인석(58)이 펴낸 <연애, 하는 날>. 이 책은 지난 2010년 가을, 한동안 문고리를 닫고 있었던 계간 <문예중앙>이 다시 대문을 활짝 열면서 작가 최인석이 1년 동안 연재했던 장편소설을 묶어낸 것이다. 이 소설은 ‘연애’ 그 아름답고도 뾰쪽한 가시를 통해 우리들 삶과 우리 사회가 지닌 상처와 멍에를 날카롭게 도려낸다.

 모두 4부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은 1부 ‘이월의 방’, 2부 ‘낯선 삶’, 3부 ‘게임’, 4부 ‘집과 집’과 함께 프롤로그, 에필로그로 꾸려져 있다. 이 책 곳곳에는 작가가 내뱉은 말처럼 “슬픔,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삶”이 불안하게 떠돌고 있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시시포스나 프로메테우스 같은 존재”가 보이기도 한다.

 “아내는…… 예뻐졌다. 그의 아내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다. 그의 아내 수진은 옛날에도 예뻤다. 예쁘고 착하고 따스했다. 그러나 이제 수진은 여전히 예쁘지만 차가워졌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난 네 여자가 아니야, 하고 말하는 듯했다. 아내가 현관문으로 들어서는 것을 볼 때면 그는 가끔 깜짝 놀랐다. 이 여자가 내 아내란 말인가?”-81쪽

 이 소설은 주인공 장우가 어머니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기름장수 아주머니 딸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문을 연다. 장우는 그곳에서 수진을 만난다. 수진은 어린 시절 보았던 그 울보 수진이 아니다. 환한 웃음을 지닌 눈부신 여자이자 다른 남자 아내가 되어 있다. 장우는 그 눈부신 여자 수진을 품기 위해 자신이 꾸리는 회사에 취직시킨다.

 어느 날, 수진은 장우가 부르는 호텔로 간다. 수진은 장우가 입을 맞추자 그를 밀쳐내지 못하고 이상하게 스펀지에 쏟긴 물처럼 스르르 빨려든다. 수진은 장우에게서 그동안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낀다. 장우는 그런 수진과 자주 몸을 섞기 위해 오피스텔을 마련한 뒤 관계를 할 때마다 몇 백만 원을 아무렇지 않게 건넨다.

 수진은 돈 때문에 그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수진은 장우와 자주 갖는 그 관계를 그동안 찾지 못했던 ‘참사랑’이라 여기며 마음 깊숙이 꼭꼭 새긴다. 장우는 수진이 지니고 있는 생각과 많이 다르다. 장우는 수진을 그저 ‘훔쳐서 갖고 싶은’, ‘몸이 지닌 욕망을 푸는’ 여자쯤으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뜨겁고 강렬하고 눈부신 저 해돋이와 순간마다 그녀의 몸을 덥게 만드는 이 열망, 이것이 현실이 아닐 리 없었다... 이처럼 생생하고 뜨거운 것은 없었다. 길지 않은 그녀의 생애 최초로 그녀는 삶을, 현실을, 그녀 자신을, 그리고 사랑을 명료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어쩌면 평생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143쪽

 수진은 장우에게 아파트를 사 달라 졸란다. 장우는 마지못해 수진에게 아파트를 사준 뒤에서야 깨닫는다. “수진에게 아파트를 사준 순간 매뉴얼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갔다는 것을. 더 이상 매뉴얼은 없었다”는 것을. 장우는 수진과 더 가보고 싶다. 문제는 장우가 “더 갈 것이냐 끝낼 것이냐”에서 선택한 것은 더 가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연애, 하는 날>은 우리 시대의 욕망과 그 비참함에 관한 이야기”라고 못 박는다. 그는 “욕망을 욕망이라고 부르건 사랑이라고 부르건, 그것은 늘 상처 입고 타락한 모습으로 실현되고, 그 내력을 담는 공간은 늘 왜곡된다”라며 “‘연애하는 날’은 진흙의 시간 속에 기포처럼 떠 있지만, 기포만큼 맑은 것은 아니며, ‘연애하는 방’은 인환의 거리에서 도려낸 먼 섬처럼 물러서 있지만, 섬처럼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고 적었다.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이창동은 “이런 소설을 만나는 것이 실로 얼마 만인지”라며 말문을 연다. 그는 “총체적이면서도 동시에 개별적인, 지금 이 순간 고통을 품고 신음하는 우리의 앓는 몸과 같은 소설”이라며 “이 세계의 폭력으로부터 상처 입은 영혼을 안고 있으면서 치유받기를 갈망하고 소통하기를 꿈꾸는 소설. 그래서 아프고, 무섭고, 슬프다. 그러나 또한 가슴이 메도록 아름답다”고 썼다.

 작가 최인석 열 번째 장편소설 <연애, 하는 날>. 이 소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를 훔쳐 맘껏 즐기고 싶은 남자 장우와 그 남자에게서 느끼는 육체적 쾌락을 ‘참사랑’이라 여기는 여자 수진이 겪는 아픈 현실이다. 작가는 장우와 수진을 통해 ‘사랑과 연애’ 그 시작과 끝을 맘껏 넘나들며 우리 사회가 지닌 멍에를 더 깊숙이 파헤친다.

 작가 최인석은 195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1979년 희곡 ‘내가 잃어버린 당나귀’가 계간 <연극평론>에 실리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에는 희곡 ‘벽과 창’으로 한국문학사 신인상을 받았고, 희곡 ‘그 찬란하던 여름을 위하여’로 대한민국 문학상과 영희연극상 등을 받았다. 그는 영화 ‘칠수와 만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1986년에는 <소설문학> 장편소설 공모에 ‘구경꾼’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집 <내 영혼의 우물>로 제3회 대산문학상, 제18회 박영준 문학상을 받았다. 창직집으로 <인형만들기>, <내 영혼의 우물>, <혼돈을 향하여 한걸음>, <나를 사랑한 폐인>, <구렁이들의 집> 등이 있다.

 장편소설로는 <잠과 늪>, <새떼>, <내 마음에는 악어가 산다>, <안에서 바깥에서>가 있으며, 연작장편 <아름다운 나의 귀신> 등이 있다. 강원도 탄광촌에 숨어든 운동권 대학생들이 겪는 절망과 사랑을 그린 작품 <새떼>는 <그들도 우리처럼>이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