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홍승엽의 댄스살롱’

현대무용의 대중성과 예술성, 두 마리 토끼 잡기

2013-04-09     김인아 기자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현대무용은 어렵다고 인식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결코 쉽지만은 않은 현대무용이 관객을 향해 말을 건네며 친근히 다가온다면 어떨까.

지난 3월 29일(금)부터 4월 4일(목)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쳐진 국립현대무용단 국내안무가초청공연 ‘홍승엽의 댄스살롱’은 홍승엽 예술감독이 직접 안무가와 대화하며 공연을 진행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과 함께하고자 했다. 더불어 공연장 로비를 문화살롱으로 탈바꿈하여 이번 공연의 연습과정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고, 그곳에서 관객과 안무가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등 관객에게 다가서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간단한 다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사진전은 순수하게 때로 열정적으로 몰입하고 있는 무용인들의 눈빛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로, 공연 시작 전부터 관객은 살롱에 전시된 사진들을 보며 서먹함을 없애고 작품에 대해 자연스럽게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안무가베이스캠프’ 프로젝트를 통해 역량있는 안무가들이 안무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창작 환경과 제작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신진 안무가의 육성이라는 초보적 캠프에서 벗어나 현재 활발히 활동중인, 이미 육성되어 있는 안무가들을 초청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기본 방침. 국립현대무용단이 프로젝트를 통해 초청한 안무가는 총 네 명으로 각기 다른 네 가지 색깔의 개성있는 춤 작품이 이번 ‘홍승엽의 댄스살롱’ 무대에 선보여졌다.

첫 번째 무대는 김정은 안무가의 ‘Three’. 특정한 주제를 표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세 개의 감각, 세 개의 감정, 세 개의 몸이 만나 이루어내는 충돌과 조화에 집중한 작품이다. 세명의 무용수는 푸른빛의 고삐 모양 소품을 귀에 걸거나 입에 물면서 유쾌한 표정으로 몸짓을 시작한다. 때로 그들은 머리, 팔꿈치, 골반, 손목 등 각 신체부위를 분절적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셋이 따로 또같이 큰 도약을 하거나 접촉즉흥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부분적으로 등장하는 검은 옷의 한 여성은 피리 불기, 가글 하기, 나레이션 읊기 등의 효과음을 담당한다. 절정의 순간 그녀는 무대 2층으로 올라가 David Hill의 ‘Orff- In trutina(Carmina Burana)’ 곡에 맞춰 과장된 표정으로 성악하듯 립싱크한다. 무용수의 움직임과 배경음악․라이브 효과음 등의 소리는 마치 하나의 완전체와 같다. 소리가 움직임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움직임이 소리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한 이 긴밀한 조합이 퍽 인상적이다. 충돌과 조화가 반복되는 무용수 세 명의 움직임에 소리가 입혀지는 매 장면은 새로운 이미지를 구현하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얀 스티로폼 공을 정점으로 무용수들의 격렬한 움직임은 막을 내렸고, 이후 조명이 꺼진 암흑의 소극장은 무용수들의 거친 숨소리로 뒤덮여졌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타인의 사랑은 가볍게 지껄이는 수다처럼 치부되어 버리곤 한다. ‘짧은 사랑에 대해 지껄이다’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박근태 안무가의 ‘I wish...’는 사랑에 대한 무게감을 깔끔한 안무와 수다스런 대사로 가볍게 풀어낸 작품이다. 노란 빛을 띠고 있는 실크 갓의 스탠드는 젊은이들의 따뜻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다섯 명의 무용수들은 움직임과 동시에 수다와 같은 대사를 끊임없이 내뱉으며 다섯 개의 사랑, 다섯 개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여념이 없다. 부산 사투리의 걸쭉한 대사와 춤이 만나 부산스러움이 부각되고 그 안에서 저마다의 사랑이 앙상블을 이룬다. 모차르트의 피아노소나타의 빠르기에 안무동작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음악의 빠르기에 흔들림없는 정교한 움직임을 꼼꼼히 안무하여 작품을 돋보이게 했다.

송주원 안무가의 ‘환. 각 (幻. 刻)’은 기억에 대한 사적인 시선을 이야기한다. 안무가는 기억이라는 것을 몸에 기록되어 있는 흔적이라고 보고 작품 제목에 깨달을 각(覺) 대신 새길 각(刻)을 넣어 시간성과 동시에 새겨지는 의미를 부여했다. 앞서 작품이 지극히 현실적이었다면 이 작품은 환상과 환각의 비현실적인 세계 그 자체다. 길게 늘어뜨린 고무줄 머리카락, 두 무용수의 머리와 머리를 연결시킨 2미터 정도의 머리카락, 풍선을 한데모아 크게 만든 풍선머리, 마지막으로 세명의 무용수가 머리에 이고 나왔던 판 모양의 한평 머리와 같은 그로데스크한 오브제의 시각화는 매우 자극적이다. 이 작품에서는 머리카락이 개인의 본질 또는 정체성에 가까운 신체부분이라는 것에 착안, 머리카락을 이용해 만든 그로데스크한 오브제를 통해 왜곡된 기억을 시각화시켰다. 대부분의 무용수는 머리카락이나 망으로 얼굴을 가린 채 등장했는데 이런 얼굴의 익명성은 ‘나’이자 ‘너’를 상징함을 의미한다. 기억의 파편들을 전달하기 위한 무용수의 움직임은 느릿느릿하게 섬세하다가도 불현듯 거침없이 격렬해진다. 한없이 이어지는 음산한 음악, 알 수 없는 문장을 주절주절 읊조리거나 구슬픈 멜로디를 노래하는 등 작품의 사운드는 어둡고 몽환적이다. 머리카락이라는 물성에 무용수의 몸성, 울림있는 라이브 사운드가 지속적으로 확장․변형되며 ‘기억의 환타지성’은 면밀하게 이미지화되고 있었다.

공연의 마지막 무대는 안영준 안무가의 작품 ‘카니발(Carnival), 카니발(Cannibal)’이 장식했다. 이 작품은 일탈과 해방의 시공간인 카니발(Carnival) 속에서 드러나는 잔혹한 식인행위(Cannibalism)를 통해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네명의 남성무용수가 네발 짐승이 되어 무대를 가로지어 뛰어다닌다. 하얀 토끼털옷을 입은 연약한 여자무용수가 남성무용수들에게 물어 뜯기고 이리저리 던져 받아내지는 장면은 무서울정도로 폭력적이다. 야생의 세계를 상징하는 정글(jungle)짐 안에 약자가 갇혀 이리저리 채이고 휘청거리기도 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연약한 줄로만 알았던 약자는 어느샌가 토끼 가면을 뒤집어쓰고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강자였던 짐승에게 총을 겨눈다. 한편의 단막극을 춤으로 마주한듯한 이 작품은 무거운 주제를 다양한 에피소드로 재미있게 풀어내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팔과 팔을 이어 가제트 팔처럼 연장시킨 손을 만드는 장면, 격렬한 아크로바틱 동작들을 응용한 장면 등 여러 곳에서 안무가의 재치있는 발상과 다채로운 안무를 엿볼 수 있었다. 

‘홍승엽의 댄스살롱’은 비단 대중성만을 고려해 순수예술의 품격을 훼손한 현대무용 작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내공있는 현대무용 작품을 선보이면서도 이것이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한 점에 박수를 보낸다. 현대예술의 난제인 예술성과 대중성, 그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어느정도 성공적이었던 이번 공연은 현대무용을 일반인 속에 뿌리내리려는 의지가 돋보인 공연이었다. 진일보한 국립현대무용단의 앞으로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