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디자인 개념에서 본 예술과 과학

재료(材料)와 기법(技法)으로 본 한국성 -2

2013-05-30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회원

<지난호에 이어>

 

우리 그림의 기법이 서양의 수채화 정도로 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그들에게, 먹이 인디언잉크로, 붓이 페인팅 브러쉬로, 화선지(순지)가 페이퍼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먹은 벼룻돌 위에서 수마(水磨) 되면서 비수용성의 탄소분말인 카본과 무기질인 벼룻돌의 석질(石質)이 1200~1800方(1평방 미리 미크론 내에 함유 가능한 최대 분말 개체수)의 미세(微細) 분말(粉末)로 수마되면서 먹 속에 아교(阿膠) 접착제(接着劑)와 용뇌향(龍惱香)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묵즙(墨汁)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어렵게 얻어 낸 묵즙(墨汁)을 용매(溶媒)인 중성 석간수(石間水)에 희석(稀釋)시켜 화선지에 침투(浸透)시키면 모세관(毛細管) 현상에 의해 정확하게 붓 자국이 시간에 따라 민감하게 드러나 시,공간(時,空間)이 하나로 조화를 이룬다. 세상 그림도구 중에서 가장 민감(敏感)한 종이(紙)와 붓(筆)과 먹(墨)이 서로 만나면서 시간과 공간이 하나임을 극명(克明)하게 보여주는 조형적 원리와 철학이 드러나는 것이 우리 수운묵장(水暈墨章) 즉 수묵(水墨)의 재료기법에서 오는 우주관(宇宙觀)이며 예술사상이다. 수묵화가 단순한 흑백(黑白)의 그림이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채료(彩料)의 용매점도(溶媒粘度)와 필획(筆劃)의 탄성도(彈性度)는 반비례하고 필치(筆致)의 길이는 비례한다. 고구려 벽화의 천정그림 대부분이 화필이나 죽필(竹筆)을 썼고 측벽화의 선은 낭호장봉(狼毫長鋒)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천장화(天障畵)는 조벽지기법(粗壁地技法)의 고점도(高粘度) 용매(溶媒) 채료를 씀으로서 장기간(長期間) 누수(漏水)에 화면이 노출되는데도 보전상태가 양호하다. 그러나 측벽화(側壁畵)는 대부분 화장지기법(化粧地技法)이며 저점도(低粘度)의 용매제를 사용함으로써 필획은 활달(豁達)하나 보전상태(保全狀態)가 불량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우리 그림은 왜 장지기법(壯紙技法)이 주종(主從)을 이루고 있는지, 왜 우리 그림은 당지(唐紙)나 화지(和紙)와 달리 외발뜨기의 유결지를 선호(選好)했는지를 알고 보면 모두 깊은 까닭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뜻을 알아야 버릴 것과 가질 것을 가려 낼 수 있으며 외래문화를 수용하는 능력을 기르고 문화적 접변성(接變性)을 키워 '나 답게' 즉 '아름답게'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서구화된 조형논리로 경도(傾倒)되고 있는 미술교육에 한국의 자생문화 관용미학의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국적 있는 21세기 문화인프라 구축을 통한 국제경쟁력을 높여가야 할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