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지뢰로 뒤덮여 있어요”

연극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사가테 요지 원작, 한국적 각색ㆍ연출 돋보여

2009-07-09     편보경 기자

영국의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살아생전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은 대인지뢰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팔 다리가 잘려져 나가고, 땅이 황폐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알지 못하고 있어요. 나도 앙골라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그러한 사실을 잘 몰랐었습니다.”
연극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그의 말을 회상하게 한다.

사가테 요지 페스티벌의 두 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 연극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원제 ‘오뚝이 아저씨 자빠졌다’를 연출가 김광보 씨가 한국의 상황에 맞게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하나를 생산하는 데는 고작 3달러밖에 안 들지만 제거하는 데는 무려 1천 달러나 드는 지뢰의 극심한 피해를 조명한다.

또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가 언어는 다르지만 전 세계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지뢰가 없는 땅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이 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은 천국일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연극에서는 지뢰와 관련한 인물들이 옴니버스 식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지뢰를 집주변에 묻고 싶어하는 조폭 두목과 두목의 명령에 따라 지뢰를 찾으러 떠나는 부하 조폭, 지뢰를 만드는 공장에 다니는 아버지와 그 가족, 지뢰 때문에 다리를 잃고 결국 지뢰를 제거하는 일을 하게 되지만 결국 지뢰에 두 팔까지 모두 잃고 마는 한 여자,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자이툰 부대원, 아프가니스탄에 취재차 갔다가 자국으로 귀국하는 과정에서 기념으로 클러스트 폭탄을 가져가다 공항 검색대에서 체포되는 기자의 이야기, 온통 지뢰가 묻힌 마을에 살고 있는 마을사람들의 이야기 등 각각 따로 떨어져 있음직한 이야기들을 결국은 한 선상에서 만나게 하면서 탄탄한 이야기 구성이 흥미를 자극한다.

또 평소에 지뢰와 전쟁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극에서는 지뢰를 묻기 쉬운 땅인 모래밭 위에서 모든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야기 전개에 따라 등장인물들이 혹여 지뢰를 밟게 될까봐 관객 입장에서도 항상 조마조마하다.

그 밖에도 비가 오면 지뢰가 떠내려가 원래 묻었던 곳을 알 수 없게 돼 매우 위험하다는 점, 지뢰에 의한 살상행위를 막기 위해 지난 1997년 지뢰금지조약(‘오타와협정’이라고도 불린다)이 선포되어 현재 143개국이 서명했지만 한국과 미국은 지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알게 된다.

이외로 ‘스펙이 짱짱한’ 배우들의 출연에도 놀라게 된다. 보스 누님 역에 지난 2001년 제38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배우 윤소정을 비롯, 보스 역에 36회백상예술대상 인기상을 수상한 배우 정규수, 2005년 영희연극상을 수상한 아버지 역의 배우 박용수, 어머니 역의 2008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기상 수상자 길해연 등이 등장, 묵직하게 균형을 잡는 가운데 의족을 한 여자 역에 2005년 서울연극제 연기상을 수상한 윤다경,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조폭인 정승길 등이 진지하면서도 때론 유머러스한 호연을 보여준다.

한국의 지뢰지대가 여의도 면적의 10.8배에 달한다고 한다. 남의 고통을 돌아보게 하는 연극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오는 12일까지 계속된다. 또 6월 공연 전석 매진으로 화제를 모은 사카테 요지의 또 다른 작품 ‘다락방’도 오는 15~20일 무대에 오른다.

서울문화투데이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