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구의 음악칼럼]협주곡의 역사 1

2014-03-21     정현구 정현구 남양주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

오늘날 ‘협주곡’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기악 독주와 관현악을 위한 3악장 혁식의 악곡을 가리키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음악사(音樂史)에 의하면 ‘콘체르토’란 말이 처음으로 쓰인 1519년부터 현대에 이르는 약 500여 년 동안 다양한 악곡에 이 ‘콘체르토’란 이름이 붙여져 왔다. 오늘날의 통념(通念)상 ‘콘체르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개략(槪略)적으로 라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협주곡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Concerto, 독일에서는 Konzert라고 하는데, 이 말의 유래는 몇 가지가 있다.

16세기 초엽에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이 말이 쓰일 즈음에, 그것은 이탈리아 말이 지닌 ‘협력ㆍ일치ㆍ조화’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당시 콘체르토는 성악의 ‘합창곡’, 기악의 ‘합주곡’ 정도의 뜻에 불과했다. 더욱이 1565년 무렵부터 성악과 기악의 합주곡을 ‘콘체르토’라고 부르는 습관이 생겼고, 이것이 바흐 시대까지 이르렀다.

한편, 17세기 중엽부터 ‘소나타’와 ‘신포니아’에 있어서 독주(트럼펫 혹은 바이올린)의 양식이 점차 성행함에 따라 ‘콘체르토’라는 말도 이탈리아 말의 ‘협력ㆍ일치ㆍ조화’의 뜻 보다는 라틴어가 지닌 뜻인 ‘경쟁ㆍ대항ㆍ투쟁’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즉, 이 말은 라틴어와 이탈리아어가 교묘하게도 서로 반대의 뜻을 지니고 있고, 이것이 음악 용어로서 ‘콘체르토’가 된 것은 미묘한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그리고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엽까지의 바로크시대에 ‘콘체르토’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의 뜻 가운데, 어느 한쪽 또는 두 가지를 함께 내포하였으며, 고전시대와 낭만시대에는 라틴어의 뜻에 가까웠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또다시 바로크 이전 용법의 부활을 찾아 볼 수 있게 된다.

기악협주곡의 역사는 우선 코렐리, 토렐리의 시대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콘체르토’라는 제목의 곡은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콘체르토’와는 많이 다르다. 그 중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안드레아와 지오반니 가브리엘리의 「콘체르티」(1587년)로서 이것은 6성에서 16성부의 기악 반주가 따르는 모테트이다. 다음에 아드리아노 반키에리의 「콘체르티 에크레지아스티치」(1595년)도 유명한 작품으로 이것은 2중 합창을 위한 종교곡이었으며, 또 로드리고 비아다나의 「열의 콘체르티 에크레지아스티치」(1602년)는 통주저음이 따르는 다성 성악곡이었다. 몬테베르디도 그의 「마드리갈 곡집 제7권」(1619년 간행)에 ‘콘체르토’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으나, 이것은 기악반주가 붙은 다성 마드리갈 곡집이다.

이들은 형식적으로 모노디, 마드리갈, 모테트 등 여러 가지였다. 이 전통은 독일에도 영향을 미쳐서 하인리히 쉬츠의「종교적 소협주곡」(1636년) 등을 거쳐 18세기의 바흐도 전승하게 되어 ‘칸타타’를 ‘콘체르토’라 불렀다.

17세기 중엽까지의 ‘콘체르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악 반주의 성악곡이었으며, 그 명칭은 그 후 1세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20세기에 접어들어 이 전통이 다시금 부활하게 되는데, 이는 작곡계의 바로크 회고의 풍조로써 달라피콜라는 소프라노 독창과 실내악을 위한 곡의 제목을 ‘콘체르토’(1957년)라고 붙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