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기행-118] 사랑과 추억, 느림을 보다 - 우표박물관

2014-09-05     이정진 Museum Traveler

언제부턴가 고지서와 홍보물로 가득 차 건조해진 우편함을 열어보는 일은 현대인들에게 참 무미건조한 아니 귀찮은 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반가운 소식이 담긴 편지가 보기 드문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나마 꾸준히 매달 우편함을 채워주었던 고지서들마저도 이제는 이메일과 SNS가 대신하고 있어 머지않아 종이 고지서까지도 그리워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우리들을 슬프게 한다.

미래학자 찰스포프(Charles Pope)는 우리생애 사라질 9가지 중 하나로 우체국을 선정한 바 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손으로 편지를 써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는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게 됨에 따라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체통은 작게만 보이고 눈에도 잘 띄지 않게 되었다.

우체통과 편지-사람이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담아내준 인간애의 작은 유산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속도와 즉흥만 따라가는 세태에 밀려 편지의 미학이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하다.

번번이 빈 통이기 일쑤인 우체통을 마지못해 확인하는 집배원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이는 이유다. 택배 및 보험 등을 제외한 우편산업이 이미 오래전부터 적자라고 하니 찰스포프의 선견지명이 미래학자 답다 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체국이 건재하다는 것을 아니 건재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듯 서울중앙우체국에는 평일 낮부터 우편업무를 보러 온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자신의 대기번호를 지루하게 기다리는 이들의 눈길이 교차하는 곳에 우표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 소장품이 제각각인 만큼이나 우표박물관을 찾아오는 관람객들 또한 다양하다. 엄마의 손을 붙잡고 온 아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시 나온 회사원, 교복을 입은 학생들까지, 덕분에 박물관은 휑할 틈이 없다.

이들이 박물관에오는 목적도 각양각색의 우표만큼이나 다양하다. 어떤 이는 추억을,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첫사랑이 보내 준 연애편지를 회상하기도 한다. 이 중 우표를 통해 역사공부에 관심이 많은 이들도 바로학생이다.

먼저, 1884년 11월 우리나라는 우정총국을 개설하여 근대식 우편제도를 시작했다. 이때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도 발행되었으니 다가오는 11월로 우표탄생 130주년이 된다. 한 세기를 이어온 우표들은 독특한 디자인과 의미를 각기 담고 있으며 그 종류역시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동전 남짓한 작은 사각형 속에 우리민족의 역사는 물론 세시풍속도 시리즈로 담아내고 있으며 월드컵과 올림픽을 기념한 우표에서는 당시 생생했던 환호가 들려오는 듯해 반갑다.

특히, 근대 우리나라를 담아낸 우표들에서는 예스러운 디자인에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일기장을 들춰보듯 정겨워 보낸 재미가 쏠쏠하다.

전문 수집가가 아닌 이상 우표가 갖고 있는 세세한 수수께끼를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우표가 단순히 작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것은 큰 오산이다.

듣도 보도 못한 향기 나는 우표며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열 반응 우표, 빛을 모았다 어둠 속에서 발산하는 야광우표 등 비밀을 가진 우표가 전시되고 있는 진열장 앞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슬며시 눈과 코를 가져다 대보고픈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우표가 전 세계 공용 통신수단인 만큼 각 국의 아름다운 우표들을 통해 상상의 세계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지구촌 각국의 역대 수상(首相)이 그려진 우표 속 얽힌 이야기며 전쟁의 발발(勃發)을 야기한 우표이야기는 어느 역사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신비감을 준다.

각 나라별 우표 속에서 자리하고 있을 알록달록 가지각색의 우체통들은 다양한 모습과 함께 그 나라의 작은 특징마저 읽어내게 해 흥미롭게 다가온다.

느림의 미학을 느껴볼 수 있는 체험공간에서는 옛 낭만을 즐기는 모녀가 함께 미래의 당신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정겹다. 1년 뒤 도착한다는 그 편지는 기대와 희망, 격려의 메시지가 적힌 종이와 함께 지금의 행복한 시간까지 봉투에 소담하게 담길 것이다.

행복한 모녀의 모습을 뒤로한 채 필자는 이 날 우체통에 경품 추첨용 응모엽서를 넣어보았다. 우표를 붙이는 자리에는 수취인 후납 이라고 적힌 둥근 스탬프가 그려져 있어 미색 엽서가 더 무색해보이기까지 했다.

명절을 앞두고 우체국엔 택배업무로 줄 선 이들로 가득한 가운데 편지를 넣는 우체통 앞은 한산하기만 하다. 한 줄 한 줄 정성스레 써 내려가던 편지, 혀로 붙였던 봉투 위의 우표, 이제 그 아름답던 추억까지도 박물관에 가야만 회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우표박물관 - 추억과 낭만, 사랑까지 볼 수 있어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좋다.   

■ 참조 : 우표박물관(http://www.kstamp.go.kr/kstampworld/)
■ 위치 : 서울시 중구 소공로70 서울중앙우체국(POST TOWER) 지하2층
■ 문의 : 02-6450-5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