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항일투사가 지은 「해녀의 노래」

2014-11-01     심우성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민속사학자

 

나는 뒤늦게 제주출신 마누라를 얻은 덕에 말년에 섬사람이 되었다.
제주도의 주변 섬가운데 가장 크고도 기름진 곳 하면 우도(牛島)를 꼽는다.
옛날에는 ‘소섬’이라 불렀다는 ‘우도’ 이 곳은 일제(日帝)가 강점하던 시절에는 항일(抗日)의 요지(要地)로도 유명했던 곳이다.
그런데 이 섬에 주민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헌종(憲宗) 9년(1843) 경으로 기록되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도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하여 관련된 인원의 왕래가 빈번 했었으며 특히 순조(純祖) 23년(1823)부터는 제주의 백성들이 ‘우도’의 개척을 조정에 요청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헌종’ 8년(1842)에는 조정의 승낙을 받기에 이른다.
한편 세월이 지나면서 주거지의 이름을 ‘소섬’이라 함은 듣기에 거슬린다 하여 1900년에는 연평(演坪)으로 바뀌기도 했었다. 당시 이곳에서 훈장을 하던 ‘표선면 성읍’ 출신 오완철(吳完哲)이 중심이 되어 한자(漢字)로 ‘연평’이란 지명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일제(日帝)가 이 땅을 강점한 이후 갑작스런 시달림이란 말할 수가 없었다. 어획물이며 곡식 모두를 세금이란 명목으로 도둑질 해 갔다.

당시 이에 반항하는 항일투사가 많기로 이름난 곳이 바로 오늘의 ‘우도’였다. 이른바 ‘항일비밀결사단’이 「혁우동맹」을 세워 ‘제주해녀항일운동’의 배후가 된 핵심 단체라 하겠다. 제주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당시 ‘우도’의 삼대천재(三大天才)는 바로 항일투사의 앞잡이들이었지오!
바로「해녀의 노래」를 지으시기도 한 강관순(康寬順)동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독립운동가 신재홍(申才弘)동지, 당시 연평 보통학교 교사로 항일투쟁과 해녀들의 조직화를 위하여 앞장선 김성오(金聲五)동지, 이 어른들께서 바로 삼천재((三天才)이시자 삼투사(三鬪士)이십니다.


여러분께서도 ‘우도’에 가 보신 분이면 다 보셨을 것입니다. 베에서 내리자마자 넓은 마당에 ‘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牛島海女抗日運動紀念碑)’가 우뚝 서 있습니다.
‘건립 취지문’은 다음과 같다.

「취지문」
한일합방이라는 미명하에 일본제국주의자들은 36년간 우리들의 국권을 침탈하고 우리들을 노예로 만들어 혹사함은 물론 민생을 도탄 속에 빠지게 함으로써 천추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한을 남겼습니다.
일제(日帝)는 제주도사(濟州島司)를 경찰서장 및 어업조합장직을 겸직케 하고 일본인 또는 그들의 앞잡이에게 해산물 상매에 따른 상권을 갖게 하여 계획적이며 조직적으로 해녀들의 해산물판매권을 독점하고 수탈을 다반사로 진행하였던바,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고 해녀 스스로의 권익을 획득코자 흔연히 궐기하여 전개한 운동이 해녀투쟁운동인 것이다.
이 투쟁운동은 구좌읍 세화리에서 전개는 하였으나 그 실은 이 운동의 주체적인 핵심인물이 우리 고장분들이요, 참가해녀 또한 우리 고장 해녀들이 대동을 이루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다수의 주종인물들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다. 구속된 인사 중 전흘동(錢屹洞) 출신 강관순 씨는 옥중에서 해녀들의 한 맺힌 사연을 노래로 만들어 그 시절 해녀들에게 널리 보급하여 항일투쟁의식을 고취하며 민족정기를 굳게 하였다.
이에 본 추진위원회는 위와 같은 사항을 들어 그 시대 우리 고장 해녀들의 노래비와 해녀상을 세워 후세에 전승함은 물론 영원히 기념하고자 노래비 및 해녀상 건립을 추진하는 바입니다.
1995년 월 일
해녀비 및 해녀상 건립 추진위원회 위원장 신인흥

온 평생을 항일운동에 앞장선 강관순(康寬順 1902~1942) 동지께서 신음을 다하여 지으신 ‘해녀의 노래’가 영원한 비석처럼 완연하리라.
(함경북도 청진에서 병사 하신듯…….)

강관순 지음 「해녀의 노래」
1. 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엾은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
추운날 무더운 날 비오는 날에도
저마다 물결위에 시달리는 몸
2. 아침일찍 집을 떠나 황혼이 되면
돌아와 어린아이 젖먹이며 저녁밥 짓는다
하루종일 해왔으나 버는것은 기막혀
살자하니 한숨으로 잠못이룬다
3. 이른봄 고향산천 부모형제 이별하고
온가족 생명줄을 등에다 지어
파도세고 무서운 저바다를 건너서
기울산(조선각처) 대마도로 돈벌러 간다
4. 배움없는 우리해녀 가는곳마다
저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 놓고
우리들의 피와땀을 빼앗아 가니
가엾은 우리해녀 어디로 갈까

강관순 동지시어!
당신의 따님 ‘길여’는 지금도 ‘우도’에 잘 살고 있습니다. 없다는 사진, 찍어서 넣었습니다. 보고 싶으시죠…….
또 당신들께서 오직 한 장, 남기고 가신 소중한 자료 「항일투사 다섯 분이 한 자리 하신 모습…….」‘제주도’가 아니, ‘우리나라’가 다시 살아 나는군요!
강관순 동지시어 그저 평안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