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김혜영씨, 여행 동반자 같은 수필집 [더듬듯이] 펴내

해드림출판사 刊,사회 불평불만 없는 ‘부작용’ 일으킬 독자는 피해야

2014-11-21     이은영 기자

누군가 까치발을 하며 기다렸다는 김혜영의 수필집 [더듬듯이]가, 기차 여행의 동반자처럼 해드림출판사를 통해 출간됐다.

[더듬듯이]는 독자의 사유를 더욱 성숙하게 할 읽을거리가, 잘 차려진 가을 잔칫상 같은 수필집이다.

그런데 이 수필집의 작가는 이 책을 읽고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독자들의 현 상태에 대해 조목조목 예시를 들어 읽지말 것을 강력히(?) 권하고 있어 흥미롭다.

[더듬듯이]를 더없이 잘 표현한 저자의 ‘더듬듯이 안내서’를 보면 다음과 같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독자

잘 가꿔진 정원의 탐스런 꽃들을 보고 감탄하거나 화초처럼 자란 분 읽지 마세요. 이 책의 야생화 얘기는 어차피 알려줘도 모를 테니 답답해 죽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부족한 것 없이 모두 갖춘 분 읽지 마세요. 시간 아까워 죽을 수 있습니다.

돈은 많은데 불행하다 여기는 분 읽지 마세요. 돈 없이도 만날 행복하게 사는 가족 얘기에 약 올라 죽을 수 있습니다.자녀를 SKY 보냈거나 보낼 예정인 분은 읽지 마세요. 그 시간에 학원 알아보고 진학 상담하러 가셔야죠. 이 책 읽다보면 속 터져 죽을 수 있습니다. 특히 고액과외 시키시는 학부모님 읽지 마세요. 학원 안다니고 대학 간 딸 얘기에 배 아파 죽을 수 있습니다.

자식하고 갈등 많은 분 특히 싸가지 없는 자식 때문에 골치 아픈 분 절대 읽지 마세요. 열 받아 죽습니다.
아들만 있는 분도 권장하지 않습니다. 부러워 죽는 건 본인 팔자라지만 늦둥이 낳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아들들 인생도 대책 없어집니다.

호화 여객선 타고, 국적기만 타고 해외여행 다니시는 분들 읽지 마세요. 가난한 여행기가 재미없어 죽을 수 있습니다.

이 나라와 사회에 불평불만 없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모두 만족스러운 분도 읽지 마세요. 이 책의 작가는 약간 비틀리고 꼬여 있어서 불편해 죽을 수 있습니다.

후남이처럼, 종말이처럼 차별대우 받고 자란 분 읽지 마세요. 과거가 떠올라 가슴앓이 할 수도 있습니다.
기껏해야 수필집 한 권에서 온 우주를 엿보거나 작가의 철학 따위를 기대하지 마세요.

함께하면 행복할 수 있는 독자

어느 날 갑자기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온 갱년기가 당혹스러운 언니들, 자식들이 낯설고 내 편이라 믿었던 남편이 ‘남 편’처럼 어색할 때 같이 위로 받아요.

자식 교육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 읽어보세요. 천하태평 자식 교육을 하면서도 가장 행복한 엄마와 아이들로 사는 비결을 훔쳐가도 좋습니다.

어느 햇살 따듯한 봄날 문득 바라본 풀밭에서 아주 작게 피어난 이름 없는 풀꽃이 궁금했거나 우리 생태계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 읽어 보세요. 재미난 생태 이야기와 야생화 이야기가 당신을 자연으로 안내합니다.

사유가 깊지도 않으면서 세상사 별별 이야기를 꼬집고 더듬고 비틀었으니 공감하면 친구요. 공감하지 않으면 그냥 무시해도 좋아요.

훌쩍 떠나고 싶은데 만날 생활에 속아 떠나지 못했던 분 읽고 도전해 보시라고 비결 대 방출합니다.
작가와 가족을 훔쳐보고 엿보다가 감정이입 되어 펑펑 울 수도 있으니 감정조절 절 하시구요.

작가라는 작자들은 도대체 무슨 고민을 하면서 사는지 같이 고민해 볼 ‘꺼리’가 되는지 확인해 보세요. 기웃거려 보시면 운 좋게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소중한 가치들을 찾을 수도 있겠네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세상에 제가 최고라고 착각하는 철없는 어린 것들아 읽어보렴. 여기 너를 애처로이 보고 있는 네 부모의 고민이 몽땅 들어있단다.

그러므로 이글은 제 이야기지만 바로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김혜영 저
|면수 252쪽 | 규격 150*220 | ISBN 979-11-5634-052-2| 03810
| 값 12,000원 | 2014년 10월 31일 출간| 문학| 에세이|

작가 스스로가 말하는 수필가 김혜영

구석진 자리가 편한 사람입니다.
시내 구석진 곳의 커피숍, 그 커피숍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전용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 들러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작품의 9할이 이 자리에서 나오니 주인이 문을 닫을까 그것이 제일 겁나는 일입니다.

타인들이 생각하는 김혜영은 씩씩하고 당당한 앞자리가 어울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커피숍 구석 자리처럼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곳에 있어야 비로소 편안함을 느낍니다. 실제의 나는 겁도 많고 낯을 많이 가려서 처음엔 친해지기 힘든 소심증도 살짝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정리정돈불감증’ 인데 ‘정리정돈증후군’ 남자와 사느라 때때로 한 남자를 속 터지게 하면서도 충청도 특유의 느려터짐을 여유라고 박박 우기며 가족들을 20년째 길들이는 중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희 집은 열린 집이지만 방문은 최소한 세 시간 전에 연락 필입니다.

자녀 교육 노하우 이런 것 없이 방목하여 키운 세 딸이 자립심 강한 아이들로 잘 자랐다는 칭찬에 무임승차로 곧잘 묻어가는 철없는 엄마입니다.

‘철학’은 개미 눈곱만큼도 모르면서 첫 책 이름을 『철학 한 잔을 마시다』라고 정해서 오해를 많이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