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국악담론]용재오닐이 해금산조를, 양성원이 아쟁산조를 연주하는 것을 꿈꾸다

2015-01-28     김승국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상임부회장

해마다 수만 명의 학생들이 해외로 유학 혹은 연수를 떠나고, 세계 각국으로부터 많은 유학생들 혹은 연수생들이 국내로 들어온다. 세계 각국의 학생들 혹은 연수생들이 모이게 되면 상대방 유학생 혹은 연수생들의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몇 년 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의 행정고시 출신의 사무관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문화부로 발령을 받고 미국 유학의 기회가 주어져,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영재들과 함께 유학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유학생활을 하던 어느 날 저녁 한자리에 모여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돌아가면서 소개를 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 날 자리에 모인 유학생들이 자신의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너무나도 해박하게 설명하고 모국의 전통음악을 멋지게 연주 혹은 노래하여 깜작 놀랐다는 것이다.

마침내 자기 차례가 되어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한국이 5,0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국가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 높은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많이 보유한 나라라는 것에 무척 놀라워하는 분위기가 느껴져 어깨가 으쓱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한 외국 유학생이 한국의 노래를 불러달라고 해서 가곡 ‘선구자’를 불러주었는데, 노래를 듣고 있던 도중에 고개를 흔들며 그런 서구의 노래 말고 한국의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여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 외국 학생이 듣기에는 ‘선구자’는 음악어법이 서구 음악어법이므로, 한국의 전통적인 선율 음계로 구성된 한국의 노래를 듣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사무관은 자기 자신은 입시위주의 공부에 매몰되어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전통음악에 대해 교육 받은 것이 별반 없어서 관심조차 갖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막상 외국에 나가보니 우리 전통음악의 소중함을 알겠다고 하면서, 한국 사람이라면 단소 등 간단한 악기로 간단한 전통음악 하나 쯤 연주할 줄 알고, 우리 민요 하나쯤, 혹은 판소리 단가 하나쯤 부를 줄 알고, 기본 전통 춤사위 정도는 출 수 있도록 정규 교육과정에 꼭 반영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용재오닐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해금 산조를, 첼리스트 양성원이 아쟁산조를, 풀루티스트 최나경이 대금산조를, 트럼페터 안희찬이 피리산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과연 불가능한 상상일까? 이들의 서양악기 연주 실력은 가히 세계적인 정상급 수준으로서 자랑스럽긴 하나, 결국 서구의 작곡가들이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것이고 이들만큼 연주를 잘하는 연주가들은 세계 도처에 많다.

그러나 이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연주가들이 최소한 우리나라의 전통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다면 세계의 어느 연주가들보다도 더욱 경쟁력 있는 세계적인 연주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윤이상이 세계적인 작곡가가 된 것은, 백남준이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가 된 것은, 박생광이나 이응노가 세계적인 미술가가 된 데에는, 서구(西歐) 예술가들이 갖지 못한 한국의 전통예술의 원형질이 그 대가들의 밑바탕을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음악을 전공으로 하더라도 먼저 자기 나라의 전통음악의 기본을 바로 알고 서양음악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미국으로, 유럽으로 서양음악 공부를 하러 갔을 때, 그리고 서구 무대에 서서 한국의 전통음악을 선보여 달라고 요청 받았을 때, 멍하니 당황스런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멋들어지게 산조 한 장단을 연주해 보여 문화민족의 자존심을 보여줄 것인가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답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