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윤이 만난 아티스트 1] 국립발레단 발레마스터 염지훈

누레예프ㆍ바르나발레콩쿠르 입상 등 세계유수콩쿨 석권, 뉴질랜드왕립발레단 최초 한국인이자 동양인 솔리스트로

2015-07-01     박자윤 문화/예술 칼럼니스트

염지훈은 1974년 부산출생으로 어린 시절 골목대장으로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끼가 넘쳤던 성향을 보였다. 음악, 태권도등에 두각을 나타내었으나 부모님 지인의 추천으로 초등 4학년 때 발레를 배우게 되었다.

평생의 은사가 되신 김정숙선 생님을 만난 행운으로 마산에서 초중등시절 발레의 기본을 쌓아 주니어콩쿠르를 휩쓸며 서울예술고 무용과에 수석으로입학한다.

서울예고와 성균관대학 재학시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습벌레로 테크닉을 단단히 익혀갔으며, 그의 타고난 끼는 국내외 크고 작은 콩쿠르들의 수상으로 이어졌다. 대학 졸업 후,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을 거치며 미국, 일본, 유럽도시를 순회하는 많은 국제적인 무대에 서게 되면서 1990년대 한국발레계를 대표하는 발레리노로 활약하게 된다.

이미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호수’  중 광대, ‘심청’ 중 솔로역할 등으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타임스 평론 등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기도 했던 염지훈은 누레예프국제콩쿠르 입상, 바르나발레콩쿠르입상, 미국잭슨콩쿠르입상 등 명성 높은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와중에, 한국신인콩쿠르대상수상으로 병역특례를 받았다. 이미 더 넓은 무대를 꿈꾸고 있던 그는, 유니버설발레단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 진출하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

후원자나 인맥적인 네트워크 없이 혈혈단신 오디션만으로 메릴랜드주립발레단의 주역, 뉴질랜드왕립발레단의 솔리스트 자리를 따내며 해외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염지훈은 한국무용수들의 한계로 종종 지적되는 감정표현과 연기력을 극복한 사례인데, 정확하고 섬세한 테크닉과 풍부한 표현능력으로 외국에서도 그 연기력을 인정받고 찬사를 받았다.

특히 뉴질랜드왕립발레단에서는 최초의 한국인이자 동양인 솔리스트로 로미오와 줄리엣, 백조의 호수 등의 클래식 무대를 멋지게 소화할 뿐 아니라 심오한 현대무용으로 지평을 넓히게 되는 계기가 된다.

무릎부상과 수술이 이어지며 한국으로 돌아오게된 그는 잠시 국립발레단 생활을 하다가 독립하였다. 그후, 현대무용을 접목한 창작세계에 몰입하여 신인안무가전, 젊은작가전 등에 선정되며 창작예술가로서의 제2의 삶을 개척하였다.

그의 창작무대는 그동안 그가 쌓은 국내외의 다양한 예술적 경험과 인생의 고뇌가 집합되어 춤의 색깔이 무대마다 매우 다양한데,  특히 그의 ‘해피’춤 시리즈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연극적인 특성으로 대중적인 호평을 받았다.  현재는 무대에 직접 서지 않고, 국립발레단의 발레마스터로서 안무와 지도자로서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염지훈의 타고난 정열과 카리스마 넘치는 수업을 받는 단원들과 학생들의 성과는 성공적인 무대발표와 대회수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소한 그 이름 '발레마스터', 직업의 시작."

‘발레마스터’란 운동선수들에 비유하자면 ‘팀트레이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레단원들은 공연전에 무대에서 실제공연과 똑같은 상황으로 연습하는 ‘공연예행연습’을 합니다. 예행연습 이전에 발레단원들은 매일 오전마다 발레무용수가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과 몸, 그리고 정신을 훈련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발레마스터는 그 훈련시간인 ‘발레클래스’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발레란 무대에서 행해지는 종합예술입니다. 무대에 오른 순간부터는 ‘나’를 벗어나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발레하면 흔히들 무대에서 보이는 화려함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 이면에는 매일 아침 철저히 자기 자신을 다듬고 채찍질해야 하는 발레클래스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발레무용수들이 실전무대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지도하는 역할이 바로 발레마스터입니다. 그런점에서 전 엄청난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매일아침 국립발레단 발레클래스를 이끌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4일부터 28일까지의<백조의호수> 공연의 게스트 주역, 프리드만포겔."

포겔씨가 입국해서 다음날 제가 진행하는 발레클래스를 처음 들어왔습니다. 저를 비롯해 모두 그 무용수에관해 궁금한 상태였지요. 일단 그 무용수의 체격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센터웤(Center Work)이 진행되는 순간 제가 그 무용수를 보며 느낀 감정이랄까…그느낌을 저희 단원들 또한 모두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각자가 부지불식간에 어떤반응을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즉 포겔씨의 춤을 보며 한마디로 모두가 무언가를 깨달은거죠. 그리고 그 클래스에서 많은 무용수가 이전과 다른 한차원 높은 춤을 추고 있었어요. 전 순간 전율을 느꼈습니다. '최고의 배움은 백번의 말보다 자기스스로가 보고 깨닫는 것'이란 걸 다시한번 느끼는 순간이였습니다.

"메릴랜드주립발레단, 뉴질랜드왕립발레단의 주역. 1990년대의 최고의 발레리노."

전 항상 최고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긴장했습니다. 제가 무대에 섰던 매순간이 최고의 무대였다고 감히 생각하고 싶습니다. 좀더 기억에 남는 무대라면 제가 한국을 떠나 해외발레단을 도전하기 위해 문을 두드렸던 그 시절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을 떠나 처음으로 좌절과 실패를 맛보고 방황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지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도전과 실패의 경험들이 제 인생에 최고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최고의 무용수들이 모인 '국립발레단' 단원들. 후배, 제자, 그리고 나의 과거이자 미래."

제일 큰 고민은 '내가 과연 올바르게 가르치고 있는가?'입니다. 저 또한 한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저 스스로에게도 조금의 여지를 주고 싶어합니다. 어차피 춤 또 한 사람이 하는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냄새 나고 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때 전 감동을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테크닉과 신체를 가졌다하더라도 그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으면 전 흥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춤출때 만큼은 더더욱이 순수해져야 합니다. 그어떤 계산과 욕심을 배제한 춤 그대로의 에너지와 열정 말입니다. 그것을 단원들의 내면으로부터 끄집어내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염지훈 평생의 스승, 김정숙 선생."

여러 은사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한분 한분이 저에겐 소중하고 감사한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특히 저를 무용의 길로 처음 이끌어 주신 첫 번째 은사이신 김정숙 선생님을 저의 멘토로 꼽고 싶습니다. 제가 마산(현재창원시)에서 초등학교 4학년때 발레를 시작하고 서울예고 입학하면서 서울로 떠날때까지 저의 가장 순수한 시절을 함께한 선생님이십니다. 이화여대 무용과를 나오시고 프랑스에서도 수학하셨는데, 결혼도 하지않으시고 고향 마산으로 돌아오셔서 어린제자들을 키우셨습니다.

당시 유일한 초등남학생인 제가 누나들 틈바구니에서 연약한 발레보이가 되지 않도록 저에겐 더 엄격하게 발레를 가르치셨습니다. 때론 발레수업을 마친 뒤 스튜디오에서 가야금 산조를 들으며 선생님과 오붓이 차를 마신 기억도 납니다. 발레에 대한 테크닉 뿐만아니라 예술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저를 지탱하게 한 저의 예술적 사고의 뿌리를 만들어 주신 분이십니다.

선생님은 흔히들 말하는 ‘삶의 진정성’이라는 말을 그 분은 평생 실천하시며, 일상생활로 보여주셨습니다. 발레와 평생 결혼하신 진정한 예술가셨죠. 이 자리를 빌려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최종목표, 그리고꿈."

‘제 최종목표는 없습니다’라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하시겠지요.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대충 산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떠한 목표를 가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전진할겁니다. 그러면 저도 모르게 성취를 향한 욕심과 집착에 빠질 것이며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제게로 돌아오며, 제가 진정 바라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전 그저 제가 자리 잡고 있는 지금이 순간 하루 하루를 무대 위의 삶처럼 살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면 일과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여태껏 저의 삶이 이렇게 흘러왔듯이.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 미리 걱정하고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일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즐기며 누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죽기 전에 꿈이라면…‘자유의 나무 - 좋은 사람들의 진정한 축제’라는 프랑스판화의 제목처럼 저와 춤에 대해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 분들을 모시고 한자리에서 춤도 추고 먹고 마시는 신나는 축제의 장을 한 번 마련하고 싶습니다. 단 일회로 끝나기에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없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진정한 축제공연을 말입니다.

 박자윤 문화/예술 칼럼니스트
는 캐나다 토론토 로열 콘서바토리에서 쳄버 오케스트라 멤버로 활동하고, 뉴펀드랜드의 스즈키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지도자 수업을 듣는 등 5년 간 수학 후, 퀸스 대학에 경제학과에 입학하였고 3학년, 음악과로 전과하여 바이올린과 비올라, 두 가지 악기를 전공하는 동시에 음악사학을 깊게 공부했으며, 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비올리스트로 2년을 보냈다.

탁월한 음감을 바탕으로 토론토 로열 콘서바토리 내 Mazzoleni 콘서트 홀, 토론토에서 가장 큰 콘서트 홀 중 하나인1천 135석의 Koerner 홀 그리고 줄리어드 음악학교의 Paul 홀에서 열린 리사이틀과 콘서트 등에서 스테이지 사운드 디렉팅을 맡은 경험이 있다.

캐나다 킹스턴 도리언 음악학교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CY&C MUSIC의 음악감독, 그리고 매니지먼트 디렉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음악은 삶에서 감동, 아름다움, 그리고 기쁨을 선사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문화/예술 칼럼니스트로서, 클래식 음악 매거진 등’에 북미 전문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