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2)베르테르씨에게

2015-12-0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괴테의 의해 탄생한 당신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난 게 2000년입니다. 대본은 고선웅, 작곡은 정민선. 보면 볼수록 대본이 참 깔끔하게 좋더군요.

‘괴테’라는 작가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대한민국 창작뮤지컬의 구조 속에 담아낼 수 있는 최선(最善)이었습니다. 귀족인 당신과 서민인 카인즈를 병치시키는 방식도 유효했습니다. 정민선의 현악기가 중심이 된 서정적인 음악도 이 작품을 지속시키는 큰 힘입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그 선율이 귓가에서 맴돌게 됩니다. 숭고한 교회음악과 갖춰진 합창음악의 분위기가 현악기를 중심으로 잘 그려집니다. 대한민국의 90년대 발라드의 감성도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서간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제 대한민국의 뮤지컬 ‘베르테르’가 되었습니다. 많은 배우가 베르테르가 되고 싶어했고, 모두가 유명해졌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2002년에 베르테르가 되었던 조승우와 엄기준을 가장 꼽습니다. 2015년 가을, 두 배우가 다시 베르테르가 되어서 우리 곁에 찾아왔습니다.

베르테르씨, 당신에게 질문이 있어요. 첫 번째로 묻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당신은 지금도 롯데를 사랑하고 있겠죠? 롯데를 향한 당신의 지고지순한 당신의 사랑을 아무도 말릴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롯데를 향한 연정 혹은 열정을 그리 좋게만 보는 건 아닙니다. 그걸 집착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무척 서운해 하겠죠.

뮤지컬 베르테르에선 딱히 당신의 입장만이 부각되는 건 아닙니다. 관객들은 그리 말합니다. “처음엔 베르테르가 보이고, 중간엔  롯데가 보이고, 마지막엔 알베르트가 보인다!” 조광화 연출(2013, 2015)이 궁금하시죠? 무대가 화훼산업도시 발하임이기에, 꽃과 온실 등을 잘 연결합니다. 꽃(시민)과 총(귀족)의 대비도 그려내죠. 조광화는 당신편입니다. 유약(柔弱)하고도 지순(至純)한 당신을 잘 그려내고 있어요. 하지만 알베르트도 현명한 남자로 그려집니다. 뮤지컬 ‘베르테르’에서는 해바라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날 때, 해바라기가 쓰러집니다.

베르테르씨, 당신은 자살할 수밖에 없었나요? 그래요. 어찌할 수 없었겠죠. 하지만 그래도 어찌해야 하는 게 인생 아닐까요? 죽음이란 게, 선택한 사람에겐 구원일지 몰라도, 남겨진 사람에겐 평생 낫기 어려운 아픔입니다. 당신의 자살소식을 듣고,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롯데는 어떠했을까요?

당신이 세상을 떠난 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 대한민국에선 이런 노래가 불렸습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당신은 너무 힘겨운 사랑을 했습니다. 당신의 그 힘듦을 이해하게 됩니다. 베르테르 당신을 생각하면, 늘 두 개의 감정이 오갑니다. 사랑이란 게 맹목적(盲目的)인 걸까? 합목적(合目的)이어야 할까?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속세에 물든 사람이라 해도 좋습니다.

당신도 “베르테르 효과”란 말을 알고 있나요? 당신이 살았던 낭만주의라 불리는 그 시대에,
당신처럼 옷을 입고 당신처럼 죽음을 택한 젊은이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유명인을 따라서 그리 하는 걸 ‘베르테르 효과’라고 합니다. 베르테르씨, 당신도 ‘베르테르효과’란 말이 사어(死語)가 되길 바라시겠죠.

베르테르씨, 저는 이리 생각합니다. “나의 탄생이 내 선택이 아니듯이, 나의 죽음도 내 선택은 아니다.” 그 대신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있는 모든 것을 현명하고 아름답게 잘 선택해야겠죠. 또한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나의 선택이 곧 상대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 베르테르씨, 당신은 지금도 여기서 이렇게 살아서, 우리들에게 계속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자살을 미화하고픈 마음이 없고, 당신의 사랑이 퇴색되길 바라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뮤지컬 베르테르 (2016년 1월 10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