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혁수 용인문화재단 대표이사 “예술교육? 지역에 보탬되어야 의미있는 것, ‘찾아가는 교육’ 계속한다”

"예술가 마인드 안버리고 일한 것 칭찬받아 기뻐, 문화활동가들과 네트위킹 추진"

2016-11-02     이은영 기자/ 임동현 기자

“용인이란 곳이 내세울 문화재도 없고, 도시와 농촌 격차도 많은 곳이에요. 문화 행사를 해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아니었고요”.

그랬다. 용인은 이처럼 ‘문화 불모지’라고 해도 반박할 부분이 없는 곳이었다. 물론 정몽주의 묘소, 조광조의 서원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 자체가 용인을 대표하는 곳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척박한 문화의 현장. 그 곳에서 문화의 꽃을 피운다는 건 얼마나 어려울까?

그러나 김혁수 용인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이 고민을 참 쉽게(?) 해결했다. ‘그래, 시골까지 찾아가자, 찾아가서 예술교육을 하자’. 그렇게 시작된 ‘찾아가는 예술교육’은 많은 이들의 우려 속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수채화를 그리는 할머니, 캘리그라피를 하는 아주머니, 기타를 치는 아이까지. 문화 소외 지역이었던 용인에 문화의 꽃이 핀 것이다.

용인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 그를 바탕으로 다가가는 문화 정책을 추진한 김혁수 대표이사. 사실 그의 일은 어쩌면 지금이 시작인지도 모른다. 용인의 문화 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활동으로 용인을 일으켜세우고 있는 김혁수 대표가 들려주는 ‘용인의 변화’를 들어보자. 

우선 이 인터뷰는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자 인터뷰이기도 하다. 늦었지만 수상 소감을 듣고 싶다

예술 활동을 하다가 행정을 한다는 점은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다. 용인문화재단이 처음 생긴 조직이고 현장의 어려움이 있어 많이 힘들었다. 그간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예술가적 마인드를 버리지 않고 해보았는데 그런 부분을 칭찬해주셔서 감사하고 많은 분들이 '그럴 줄 알았다'고 하셔서 기분 좋았고 신뢰가 높아졌다. 

사실 시장님도 연임을 시키면서 고민을 하셨다고 하는데 이렇게 검증을 받아 고맙고 올해 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아 안정적인 운영을 하게 되는 힘이 되었다. 그 점에 감사드린다.

용인문화재단의 ‘찾아가는 예술교육’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용인이라는 곳이 본래 도농복합지역이다. 도시와 농촌의 차이가 큰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예술 격차도 클 수 밖에 없다. 오케스트라를 데려와도 도시인들은 오지만 시골 분들은 오지 못하니 잘 되지 않는다. 어쩌다 트로트 가수가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웃음).

예술 교육은 지역 사람에게 보탬이 되어야 의미가 있지, 이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다. 이 계획은 2년 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인데 강사가 없어서 바로 시작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키우고 재능기부 등을 통해 100명의 강사를 뽑았다. 시골에 있는 노인들이 좋아할 지, 교구재까지 들고와서 교육한다는 것이 상당히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잘 진행되고 있고 빠르게 전파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프로그램이 10개 정도 있다. 음악, 미술, 하모니카, 노래 등이 있는데 어르신들이 미술을 많이 원하신다. 사실 음악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시골 할머니들이 그림 그리시는 것을 좋아하시더라. 동양화는 물론 수채화, 정물화 등도 좋아하시고 아주머니들은 캘리그라피를 좋아하신다.

음악도 물론 좋아한다. 하모니카 같은 것도 인기다. 기타를 배우는 어린이들에게는 절대 기타를 먼저 사지 말라고 말한다. 왜? 기타를 먼저 사면 꼭 안 치게 된다(웃음). 우리가 가르치고 난 다음에 기타를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게 낫다고 본다.

교구재는 우리가 다 준비한다. 동사무소를 통해 부르면 챙겨서 달려나간다. 강사가 집안까지 들어온다고 하니까 금방 소문이 났다. 하루에 3~10명 정도로 하고 있는데 4명 정도 모이는 게 적당한 것 같다. 왜냐면 인원이 많아지면 결국 강의가 되더라. 자문을 받아보니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가장 적정선 인원이 4명이라고 하는데 물론 3명 이하도 원하면 한다. 

가급적이면 '문화가 있는 날'처럼 어느 요일에 어느 동에서 한꺼번에 가르치는 것으로 파급효과를 키우려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안하려한다. 정해진 시간은 없다. 우리에겐 비정기적으로 여겨지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정기적으로 보인다. 일주일에 한번은 배움의 시간이 되니까. 내년에는 용인 관내 대학생들과 같이하면서 강사 풀을 넓히려한다.

‘찾아가는 예술교육’을 실천하기까지 어려운 점이 많았을 텐데

처음엔 직원들이 반대했다. 신청할 사람이 있겠냐라는 이유였다. 이전에 농협의 협조를 받아 찾아가는 예술교육을 한 적이 있었다. 시골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진행했는데 사람이 많다보니 강의 그 이상의 것이 나오지 않았다. 끝나고 사람들이 고마워는 했는지 좋아하지는 않아 보였다.

그 때 생각한 것이 ‘집까지 들어가자’였다. 직접 찾아가서 하나하나 알려주고 보여줘야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 보였다.  

매달 신청을 받는데 지난 8월에는 58개 팀이 신청했다. 5월 한 달 집중 홍보하고 6월부터 시작했는데 금새 이렇게 늘어난 것이다. 보니까 방학 때라 손주들이 놀러오니 같이 놀려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가 같이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를 보면 힘들더라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지게 된다. 이분들의 작품을 전시도 할 예정이다.

대부분 자기 집에서 하고 싶어한다. 몇 사람이 모여도 장소는 꼭 자기 집에서 하자는 분들이 많다. 할머니들과 쉽게 친해지니까 그 이후부터는 일이 쉬워지더라.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도시로 오게 될 것이다. 문화행사를 할 적마다 사람들이 안 온다고 푸념하는데 십수년 기다리만 해서 무얼 하나. 직접 찾아가서 문화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다행인 것은 용인시장님이 이 계획을 단기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지를 잘 이해해주시니 일이 수월하게 되는 것 같다. 축제나 행사는 시의원 구의원이 쫓아다니는 행사가 아니라고 보고 시장님이 인사말을 하지 않는다. 사실 화려한 축제 여는 것 보다는 이렇게 시민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치적이 아닌가(웃음).

청소년을 위한 행사에도 열심인 모습이 보인다

지금 청소년들을 보면 발표회하는 것에 급급해하고 있다. 연주를 하던 노래를 하던 그래도 마음 속에는 꿈과 철학이 있어야하지 않나 예술가를 통해 예술을 동경하며 무대에 서는 거지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안된다. 자체 청소년을 위한 워크샵이나 청소년을 위한 시간을 만들고 예술단 자문위원들을 거기에 맞춰서 모시고 그분들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청소년들이 꿈과 비전을 마련하는 기회가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청소년 위문공연도 줄이려한다. 물론 그들이 위문공연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는 아이들을 소비시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원래는 '꿈의 오케스트라'도 신청 못하게 했다.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하는 것이기에 이번에 만들어서 하기로 했고 그것보다 예술교육 차원에 컨셉을 맞춰 운영하려했다.

재단에서 도서관을 운영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는데

처음에 시장님이 도서관을 만들자고 했을 때는 동네 아이들 공부하고 노인들 신문만 보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게 주면 누워서 책보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시작해보니 사서들이 많이 반대했다. 도서관을 문화재단이 만든다고 하는 것에 반발했고 결국 권리를 보호받겠다면서 문화부에 투서까지 보내고 결국 문체부가 하지 말라는 권고까지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시장님이 재단에서 하라고 밀어붙였다. 사실 사서들이 반대한 것은 우리가 직원들을새로 뽑으려하니까 거기에 반발했던 것이다. 지금 사서는 새로 다 뽑았고 2년이 지나면 정직원 신분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작은 도서관이지만 도서관도 반응이 좋고 앉아있는 도서관이 아닌 열린 도서관을 만들었는데 이를 벤치마킹하는 것을 보니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런 변화가 믿음의 초석이 됐다고 생각한다.

용인에는 포은 정몽주, 정암 조광조 선생의 흔적이 있다

정몽주 선생은 묘소가 있는 처인구에서 용인문화원이 주최하는 문화제를 하고 조광조는 수지구에 묘소가 있고 그가 만든 심곡서원이 있다. 한때 지역구 의원이 우리를 믿지않고 자신이 직접 조광조 선생을 기리는 행사를 추진하겠다고 했다가 실패한 바 있다. 그래서 이번엔 어린이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넣고 어른들의 제사가 아닌 아이들이 체험하는 축제를 만들려하고 있다. 오는 29일 10시부터 5시까지 심곡서원에서 연극놀이, 전통놀이, 국악공연 등이 열리며 조광조 선생을 기리게 된다. 

사실 정몽주 선생의 원 고향은 영천이고 문중들이 그곳에 다 계시다. 용인에는 묘소 외엔 없다. 용인에서 제례를 하니 문중들이 고증이 안 됐다고 비판하시더라. 그래서 고증은 문중이 해주셔야지(웃음). 용인문화원도 열심히 하고 계시지만 어르신들이 많다보니 한계가 있고 미래성이 없다. 아마 이번 조광조 축제가 잘 된다면 그분들도 이해를 해줄 것이고 하나의 모범사례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즐겨라 뮤지컬 페스티벌’을 유치했다

지난해 충무아트홀에서 열렸는데 부대행사로 찬밥 신세에 머물러있기에 그러지 말라는 의미로 유치했다. 포은아트홀을 두 주간 참가자들 맘대로 쓰게 했다. 다 불러서 신나게 했다. 배우뿐만이 아니라 스탭도 데려와서 직접 무대 조명도 돌리고 음향도 만지게 했다. 

언제 그들이 무대 공부를 해보겠나. 그렇게 배워야한다. 그들이 제작하고 세팅해서 산실을 만들어주고 남는 기간에는 우리가 하고픈 공연도 하고 가수도 초청하고 하는 것이다. 홀이 비는 날은 이처럼 직접 무대 공부를 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문예회관 오픈스튜디오를 작가들을 위해 개방했는데

문예회관이 30년 됐는데 지하가 다 썩었더라. 그걸 개조한 것인데 미술 작가들을 위해 서비스한 것이다. 용인에 있는 미술협회 인원이 250명인데 미술관만 있었지 해놓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은 과거 경찰대학교가 있던 부지에 5층짜리 대형 강의동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부도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강의동이 있지만 교통이 불편하지 않나. 그 곳보다 더 넓으면서 교통도 편한 강의동이 들어서면 작가들의 최적의 장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용인의 또 하나 안타까운 점은 문학 행사를 하려해도 지역에서 기획서들이 안 들어온다는 것이다. 용인문인협회가 있고 용인문학회가 있는데 협회는 어르신들이 책을 내는 것이 주고 학회는 지역신문 대표가 맡고 있어 각각 한계가 있다. 학회의 경우 자칫 신문사 행사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최근 '찾아가는 문학공연'으로 청소년들을 만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어 선보이는데 작품을 각색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내가 한다. 30분짜리 작품 10개가 만들어졌다. 사람도 없고 마침 나도 하고 싶었고 그래서 한 것이다. 

앞으로 계속 추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지역문화재단의 가장 큰 문제는 네트워킹 정보가 너무 막혀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월 포럼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있다. 네트워킹이 되어야 일을 할 수 있는데 아직 여건이 안 되니 편차가 너무 심해 지금은 시스템 구축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 수도권 재단에서만 회장 하나 부회장 둘이 나오는데 앞으로 수도권은 물론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등 권역별 부회장단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재단과 문화활동을 하는 이들과의 네트워킹도 추진 중이다. 지역문화재단이 해야할 일은 바로 그런 이들을 키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