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낯설게 하기]문송한 현실 속 인문학의 재발견

2017-06-05     이현민 대중문화칼럼니스트/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는 가장 가슴아픈 신조어로 평가된다.

철학과에서 각종 어문계열, 사회학 계열까지. 대학의 최소 50% 학과가 인문계인 나라에서 문과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죄송해야 하다니. 취업시장에서 ‘문과라서 죄송한’ 현실은 많은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간다.

문과는 취업이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더 많은 학생들이 오직 취업 잘되는 진로만을 꿈꾸고, 급기야 100만 공시생 시대가 열렸다.

이러한 현실과는 별개로 방송가에서는 최근 “인문학”이라는 키워드가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오디션, 먹방, 쿡방, 여행 등 지금껏 다양한 트렌드를 주도한 방송가가 인문학을 통해 재미와 공익성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인문계 기피 현상과는 달리 인문학이 방송가를 점령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오락성만을 추구하던 예능을 넘어 사고와 재미, 힐링을 함께 선보일 수 있는 프레임이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특히 세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웃고 떠들기 위한 예능이 아닌 더 깊은 사고를 위한 도구로 활용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tvN의 <어쩌다 어른>은 각계 전문가들이 지친 어른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며 위로를 건네는 컨셉의 예능이다. 강연의 내용과 분야는 각기 다르지만 역사, 글쓰기, 평론,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는 다양하다.

강연의 공통적 특징은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세상을 꿰뚫는 통찰력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정보 전달의 강연을 넘어 인문학을 통해 사고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이를 통해 지친 어른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또 나영석PD는 신작으로 인문학 예능을 론칭하였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는 작가 유시민, 칼럼니스트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물리학자 정재승 등이 모여 국내를 여행하며 그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컨셉이다.

학문이라는 큰 틀에서 전혀 새로운 관점들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또 TV조선에서는 <배낭 속에 인문학>을 통해 세계여행과 인문학 강연을 결합시킨 진화한 형태의 여행 예능을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방송가에서 인문학에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에서는 인문학이 고루하고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받지만, 오히려 그러한 기준에 억눌린 대중들은 인문학에서 더 큰 위안을 받고 싶어함을 방증한다. 또 세상의 기준과 자신만의 기준을 조율하고 정리할 수 있는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활용되면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렇듯 경제활동과는 별개로 인문학적 수요가 늘어나면서 예능에서도 인문학 따라잡기가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토대와 구조를 바라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인문학의 기능과 역할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 올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문송한 현실 속에서 TV 예능의 인문학 바람은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문화를 주도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인문학이 그저 지루한 학문이 아닌 즐거움으로 재평가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이번 인문학 바람이 잠시 스쳐지나가는 도구가 아닌 인문학의 의미와 재미를 재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