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열정이 치솟는 이태원의 밤 ‘호모나이트쿠스’

사진가 김남진의 ‘이태원의 밤2’가 스페이스22에서 8월16일까지 열려

2017-07-30     정영신 기자

우리는 '한국 속에 있는 외국'을 '이태원'이라 부른다.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열정으로 채워진 이태원의 밤은 낮과 다르게 새롭게 탄생한다.

서울의 밤 문화는 통금이 있었던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도 흥청대는 밤 문화는 소위 나이트클럽이란 이름으로 존재했었다. 이태원은 국적과 인종의 경계도, 성소수자의 경계도 없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젊은이들 해방구다.

사진가 김남진은 지난 26일 대안공간 ‘스페이스22’에서 이태원의 밤 ‘호모나이트쿠스’라는 이색적인 전시를 열었다. 광란의 밤을 연출하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찾아 들어가 자유로운 젊은이들의 문화를 탐색한 결과물이다.

개막식이 있는 첫 날의 전시장은 조명과 음악은 물론 칵테일까지 준비해 마치 이태원의 클럽처럼 꾸며 “놀 준비되셨습니까?”라는 특별한 오프닝 파티를 마련했다. 이렇듯 그는 취재하듯 조심스럽게 촬영한 것이 아니라 함께 즐기며 동화되어 작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전시한 사진은 80년대의 이태원을 기록했던, 아날로그 흑백 필름과는 다르게 디지털 컬러로 작업했다. 흑백으로 볼 수 없는 화려한 의상과 조명의 색이 리얼하게 묘사되었다, 낙서와 그림자, 춤추는 젊은이들의 모습으로 뒤섞인 숨겨진 젊은이들의 문화를 밖으로 끄집어낸 것이다.

파티와 카니발을 즐기는 젊은이 속으로 들어가 가감 없이 기록하여 ‘호모나이트쿠스’ 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호모 나이트쿠스라는 신조어는 밤의 문화를 개척하는 새로운 밤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마치 시간이 옷을 입은 것처럼 말이다.

이번 전시는 1987년도 발표한 ‘이태원’과는 달리 강렬한 색이 주는 원색적인 밤의 분위기가 감각적이다. 디지털 칼라사진이 주는 강한 색으로 욕망과 열정을 극대화했다. 모든 문화가 바뀌듯, 사진가의 시선도 바뀌었다.

그는 “시간이 흘러간 사이에 모든 것이 변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극장식 무대에서 클럽으로, 해밀턴호텔 뒤의 주택가도 유흥가로 바뀌었다” 며 아쉬워했지만 수용했다. 서울은 인구 천 만 명이 넘는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밤 문화는 향락적이다,

우리의 전통적 밤 문화는 오늘처럼 동적이 아니라 정적이었다. 고향집 평상위에 가족들이 쑥으로 만든 모깃불 앞에 모여앉아 수박을 쪼개먹던 추억처럼, 옛날에는 아늑한 분위기의 밤 문화를 즐겼다. 그리고 텔레비전이 없는 시골마당에 비취는 달과 별은 다채로운 만물상의 풍경을 보여주는 정적인 밤이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은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낭만주의 이후의 문학, 특히 시는 이 밤에 거의 모든 것을 걸었다”고 했다.

일탈과 파괴를 꿈꾸는 예술가들에게 밤 시간은 그야말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그들의 감각을 흔들어 깨우는 시간이다. 김남진이 찍은 이태원의 밤은, 뿜어내는 열기가 욕망으로 허기질 때 느끼는 허망함까지 사진에 드러나고 있다.

이젠 밤은 죽는 시간이 아니라 문화를 향유하는 시간으로 인식이 바뀐 사람이 대부분이라 밤 문화가 도시의 해방구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빠져서는 안 되는 것 또한 밤 문화다.

80년대 찍은 “김남진의 <이태원의 밤>에 대해 사진평론가 진동선은 해설에 이렇게 적고있다. “김남진의 <이태원의 밤>은 자유스럽게 찍지 못한 시대풍경이다. 무섭고 두려움에 쌓여 찍은 사진이지만 전체적으로 솔직하고 이성적이고 아웃사이더적인 사진이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시대적 시선, 우리사진이 외면한 첨예한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주류사진계가 집단적으로 외면한 80년대 시대성을 반영한 사회문화적 시선이라는 것이다. 80년대 사회문화 곳곳에 하나의 구호처럼 떠돌던 ‘현실과 발언’이라는 테제를 그 시절을 건너온 사진가들의 작품에 대입해 보면 한국사진의 민낯을 알아챌 수 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오늘의 작업은 어떠했을까? 무섭고 두려움에서 벗어 난 시각은 자유로웠고,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인 사진이라 할 수 있다. 환갑이 된 나이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구역을 종횡무진하며, 젊은이들과 어울려 오늘의 밤 문화를 조명한 것이다.

사진가보다 ‘갤러리브레송’관장으로 전시기획자로 더 알려진 그가 보여주는 이태원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없는 이태원만의 빛깔과 색감이 사뭇 도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밤의 이태원에서 만난 청춘들, 외국인, 성 소수자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부류의 사람임을 확인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숨겨진 환락의 밤거리를 거닐며 이태원의 실상과 허상을 통해 젊은이들의 고뇌와 정신을 그만의 언어로 담아 낸 사진가 김남진, 그는 사진예술로 밤 문화를 찾아내는 도시의 산책자다. 디오니소스는 “술잔은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춤추기 시작한다”고 했다.

강남에 있는 ‘스페이스22’에 가면 달콤한 퇴폐와 향락이 넘실대고, 욕망이 시간을 지배하는 밤을 엿볼 수 있다.

김남진의 ‘이태원의 밤, 호모나이트쿠스’전시는 오는 8월 16일까지 열린다.

*‘호모나이트쿠스’는 밤을 뜻하는 ‘나이트(night)’와 인간을 뜻하는 접미사 ’쿠스(cus)’를 붙인 신조어로 밤을 잊고 편의점이나 술집, 24시간 카페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