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들여다 보는 도시의 조명이야기]의미를 못 따라온 실행, 사람은 사람길 서울로가 불편하다

2017-08-24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 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로가 개장했다.

우여곡절 끝에 개장한 서울로는 기존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수고 새로 짓고 하던 건축계에 신선하고 아주 발전적인 발상이었다. 대부분의 공공의 프로젝트가 그러하듯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의미있고 찬성하는 사람들의 이유 역시 의미있다.

뉴욕의 하이라인공원을 걸으면서 우리와는 다른 사고의 다양성, 의사결정의 유연함에 대한 차이를 느끼며 우울해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쌍수를 들어 지지하는 태도를 취했었다. 설령 100점짜리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도라고 믿었다.

개장 3일전 야간경관 상태 점검에 나섰다. 적정한 밝기가 형성되어 있는지, 시민의 안전에 위협될만한 위험요소는 없는지 빛공해가 주변건물의 내부로 흘러들어가지는 않는지 그리고 서울을 대표할 만한 충분히 아름다운 장소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문가의 시각을 전달하기 위한 점검이었다.

현장은 생각보다 열악했다. 기본적인 골격 자체가 너무 노후화되어 그것이 대대적인 보수를 먼제 했었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만큼. 시멘트 덩어리로 구성된 공원, 더운 열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콘크리트 바닥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공원’이 아닐까 싶다. (공중보행로 서울로가 공원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할말은 없다.) 방문 주 목적인 조명이 하나 둘씩 켜지면서 우려했던 상황이 전개되었다.

분명 무언가를 비추도록 계획하였을 텐데 지금은 허공을 향하는 조명들, 수종, 크기를 고려하지 않은 조명계획으로 앙상한 나뭇가지를 씩씩하게 비추고 있는 조명. 밤인지 낮인지 조차 알 수 없는 하늘에 익숙한 도시의 사람들에게 과한 밝기, 목적하는 곳이 없는 허공을 향하는 빛을 규제하여 사람과 식물에게 밤 시간 만큼은 어둠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취지의 ‘빛공해 방지법’이 무색할 정도였다.

당초 해외설계사에서 밤하늘의 갤럭시라는 컨셉으로 바닥에 깔리는 파란빛을 계획했을 때 동양권에서는 초현실적인 존재들을 연상시키게 하여 혐오하는 색상이다, 오랜 역사의 도시 서울의 아름다움을 해칠 것이다 등등의 이유로 우려의 눈길을 보냈던 것을 생각하면 여기저기 널려있는 푸른색 빛은 차라리 신선했다.

서울로의 모티브가 된 뉴욕의 하이라인공원은 많은 도시계획을 공부하는, 정책하는 사람들에게 성공한 도시재생프로젝트로서 대표로 꼽힌다. 산업용으로 쓰이던 철로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건축가들의 창의적인 제안으로 공원으로 변신하였는데 가능한 기존의 것들을 그대로 두고 필요한 기능 -머물고, 쉬고, 먹고,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하고- 을 위한 최소한의 공공시설물을 계획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wild landscape 컨셉대로 관목과 초화류를 심어 -서울로와 마찬가지로 관목을 심을 만한 토심이 확보되지 못해서였으리라 짐작한다- 키 큰 나무 한그루 없이 초록 공원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해가 기울면서 허드슨 강에 반사된 노을빛이 주변 건물의 유리창에 비추어져 온통 연보라 물이 들다가 해가 완전히 지면 하이라인은 고스란히 어둠에 묻힌다. 대신 주변의 건물들의 창에서 나오는 빛들이 공원의 형태를 보여주며 추락방지를 위해 설치한 가드레일에서 나오는 빛이 주변의 갈대를 비추어 밝은 효과를 더한다.

군데군데 놓여진 벤치 아래의 빛, 군데군데 나지막한 나무를 비추는 빛이 하이라인공원을 구성하는 빛요소의 전부다. 물리적인 수치로만 보면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밝기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환경이지만 그 어둠과의 동행이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이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프로젝트의 목적이 과장된 제스츄어 없이 소박한 자연을 그대로 도시에 끌어들여 긍정적인 결과를 만든게 아닐까.

서울로는 콘크리트의 열기 때문인지 태양의 열기가 식은 밤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다. 푸른빛으로 물든 서울로는 주변 서울역사의 나트륨등에 의한 주황색빛, 에너지 정책의 일환으로 최근 LED로 교체된 가로등의 차가운 흰빛, 서울스퀘어의 미디어 파사드, 어둠 속의 철로, 눈부신 전광판 등으로 둘러싸인다.

하이라인파크에서 경험했던 쉼, 움직임의 편안함 대신 어마어마한 시각적 시끄러움의 한가운데에 놓여져 영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 주간의 풍경이 오히려 밤이 되면서 각기 다른 무게와 질로 아우성을 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도심 한복판 빌딩과 차들의 번잡함 속에 섬처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기대했던 건 나의 착각이었을까? 어느 한구석에서라도 활기찬 서울의 야경을 즐길 수 없는 서울로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진정한 서울시민을 위한 공공의 장소가 될지 진지한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