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덕수궁에 미술작품의 꽃이 핀다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 빛 소리 풍경', 다양한 작가들이 펼치는 '덕수궁을 통한 과거와 현재의 연결'

2017-09-05     임동현 기자

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덕수궁.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근대국가로 거듭나려던 덕수궁의 모습과 그 주변에 설치된 건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그곳에서 이제 미술작품의 꽃이 피고 있다. 바로 지난 1일부터 열린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 빛 소리 풍경>전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가 함께 개최하는 이번 전시는 지난 2012년 덕수궁에서 열린 <덕수궁 프로젝트>의 계보를 잇는 궁궐 프로젝트로 참여 작가들이 덕수궁 내 공간 곳곳을 탐구하며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는 신작을 구상, 제작, 설치하는 장소 특정적 현대미술 전시로 특히 올해는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맞아 대한제국 시기를 모티브로 덕수궁이라는 역사적 공간에 조형적 접근을 시도했다.

대한문으로 입장한 관객들은 중화전 앞 행각에서 양방언-장민승의 <온돌야화>를 만나게 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을 맡은 양방언과 미술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이면서 황신혜밴드 멤버이기도 한 장민승이 함께 한 이 작품은 기록물로만 확인할 수 있는 한국 근대 시기의 건물 및 생활상들을 재발굴해 아날로그 슬라이드 필름으로 풀어낸다.

마치 근대시절 삼각대를 세우고 천 안에 들어가서야 찍을 수 있는 사진기를 연상시키는 곳으로 들어서게 되면 양방언의 음악과 더불어 장민승이 풀어놓은 근대 당시의 사진들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방금 전까지 우리가 거닐었던 그 길이 100여년전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료사진이 양방언의 음악과 함께 소개되면서 잠시 100여년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착각을 하게 한다.

석조전 본관과 별관을 잇는 계단과 복도에는 김진희와 정연두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석조전 계단에 수놓아진 것은 전자기기 속에 들어있는 부속품들이다.

전자제품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고 재가공하는 김진희의 <딥 다운-부용>은 해체된 전자기기 속에 들어었던 부속품들과 그것들을 다시 조립해야 나올 수 있는 라디오 속 국악(혹은 클래식)을 함께 선보인다. 바람소리를 잡아내고 그 소리에 따라 음악을 연주하는 듯한 분위기가 석조전과 또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복도에는 정연주의 <프리즘 효과>가 있다. 사진 4점이 있다. 네 개의 시선으로 보는 고종황제와 어린 덕혜옹주의 모습이다. 네 장의 사진은 각각 다른 시선으로 찍혀있다. 고종이 딸을 지키려는 시선, 침략자들이 고종황제를 바라보는 시선, 그 모습이 담긴 작품을 큐레이터가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시선 등 한 피사체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이 눈길을 끈다.

석조전을 지나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이층 건물 석어당에서는 권민호의 <시작점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참, 이 프로젝트 전시 기간 중에는 전시작품이 있는 곳의 내부 입장이 가능하다. 작품을 보기 전부터 그동안 보지 못했던 덕수궁 건물의 내부 모습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미술 작품이 된다. 그리고 그 곳과 전시 작품이 어우러진다. 이 어우러짐을 느끼는 것이 이번 전시의 포인트다. 미리 알려둔다.

권민호는 대형 드로잉을 선보인다. 얼핏 덕수궁 대한문을 그린듯하지만 이 속을 보면 서울역, 적산가옥, 최초 증기기관차인 모갈1호, KTX, 골목 풍경 등이 세세하게 담겨있다. 게다가 그림 뒤에는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낮에 봐도 좋지만 밤에 가면 더 운치가 있는 전시다. 드로잉 작품 하나에 백년의 역사,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역사가 다 들어있다. 자세히 봐야, 저녁에 봐야 느낌을 알 수 있다.

고종황제의 알현실로 사용되던 덕흥전에는 강애란과 임수식의 작품이 있다. 이 두 작품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역시 덕흥전 내부의 모습에 먼저 취한 상태에서 이들의 작품을 본다. 

조선왕조실록, 고종황제가 즐겨읽던 서적 및 외교문서, 근대에 들어온 외국 소설 및 한국 문학 작품들이 놓인 황제의 서고를 라이트 북 작업으로 상상을 보태 재현한 강애란의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현존하는 인사들의 책가도를 병풍 형식으로 표현한 임수식의 <책가도389>가 있다. 근대의 공간에서 만난 황제의 서고와 현대 인사들의 서고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이제 마지막으로 고종황제의 침전이자 승하한 장소이기도 한 함녕전으로 들어선다. 이 곳에는 구한말 일제의 강압 속에서 불면증에 시달렸던 고종의 심경을 이미지와 사운드로 표현한 <어디에나 있는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불면증 & 불꽃놀이>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공개가 되지 않았던 함녕전 행각으로 향한다. 

이 곳에는 오재우의 VR 작품 <몽중몽>이 있다. 관객들은 행각 내부에 앉거나 누워서 덕수궁의 이미지를 담은 영상을 감상할 수 있고 VR 안경을 쓰고 입체 영상을 볼 수 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곳에서 옛날 벼슬아치들처럼 앉거나 누워서 작품을 감상하는 현대적 풍류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 빛 소리 풍경>은 미술 작품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덕수궁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시청 앞을 지나가면서 흘낏 보고 말았던 덕수궁 대한문, 덕수궁 안에 들어가도 막상 건물 내부에 들어갈 수 없어 그저 겉모습만 바라보고 사진찍고 지나가는 것을 떠나 건물 내부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다. 낮에 보는 모습과 밤에 보는 모습이 다르다. 시간이 난다면 저녁 시간을 이용해 관람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덧붙여, 비단 미술작품 관람이 아니더라도 이처럼 건물 내부를 개방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어떻게든 우리의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대한제국의 꿈이 덕수궁에 묻어있다고 보여지기에 그 모습을 자세히 보려면 내부를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덕수궁 야외프로젝트>가 단순히 특정 기간의 전시를 떠나 고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