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세종시 이전, 이것이‘최선의 선택’인가?

외국 관광객 접근성 떨어지는 세종시에 박물관 이전을 결정한 문체부

2017-10-27     임동현 기자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 역대 국립민속박물관장들과 문화계 원로들이 모였다. 이들은 이날 '민족문화사랑 동행 문화인 모임'(이하 '문화인 모임')은 '문재인 대통령님께 올리는 국립민속박물관 세종시 이전 반대에 관한 청원서'를 발표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세종시 이전의 건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갑자기 결정된 사안으로 충분한 사전 검토와 학계, 박물관계 전문가들이나 국회 문화관광상임위의 의견청취가 없었습니다...(중략) 국립민속박물관을 뿌리채 뽑아 이전을 추진한다는 것은 장기적 비전의 부재로서, 국제적 망신이고 결국 우리의 문화적 손실이라고 봅니다".

장관 취임 직후 갑작스럽게 ‘통보된’ 세종시 이전 

지난 7월, 새 정부의 첫 문화체육부장관이 취임하기 직전 몇몇 언론 보도를 통해 국립민속박물관이 세종시로 옮겨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청원서를 발표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문위원임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이전을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현재 경복궁 옆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경복궁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경복궁 복원정책'에 의해 오는 2030년까지 이전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한 관계자는 "이 정책으로 인해 경복궁에 계속 머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전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로 인해 지난 2000년부터 서울 용산 이전계획이 진행되기 시작했고 2014년 7월 '국립민속박물관 이전건립'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가 완료됐다. 

실제로 지난 2009년 10월 “용산에 '한국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을 만든다”는 제목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립민속박물관과 민족학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등으로 구성된 ’용산박물관복합단지 조성'이 추진된다는 내용이 나온 바 있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은 지난해 12월 박물관을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 내 문체부 부지로 옮기고, 부족한 공간은 파주에 개방형 수장고를 건립해 이원화된 운영체제를 갖추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지난 7월 갑작스럽게 국립민속박물관을 세종시로 옮긴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7월 11일, 도종환 장관이 새 문체부 장관으로 취임한 후 국립민속박물관 최초 업무보고에서 파주 개방형 수장고와 본관 용산 이전건립을 보고 받은 지 불과 열흘도 채 되지 않아 세종시 이전이 급작스럽게 결정된 것이다.

문체부 측은 세종시 이전이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에 포함된 사항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정과제 67'인 '지역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 시대'의 실천과제 중 '지역간 문화 균형발전 및 문화다양성 확보'에 바로 국립민속박물관의 세종시 확대 이전이 포함된 것이다.

문체부 “용산 부지 공간 협소, 관객 감소는 감수할 문제” 하지만 외국 관광객 동선을 생각한다면...

문체부 관계자는 "지금 용산의 부지는 공원으로 조성이 되어 있어 신규 건물을 짓는 것이 어렵고 박물관이 들어오기에는 공간이 협소하다는 문제가 나왔다"면서 "세종시 국립박물관단지의 경우 더 넓은 땅을 사용할 수 있다. 관객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을 알지만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한다고 보고 있다. 세종시에 박물관단지가 활성화되면 다시 관객들이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문체부는 세종 신도시 중앙공원과 금강 주변에 '국립박물관단지'를 조성하려는 계획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디자인박물관, 어린이박물관, 자연사박물관, 국가기록박물관, 건축박물관 등이 추진되고 있으며 여기에 국립민속박물관을 세워 '박물관 시너지 효과'를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문체부의 생각이다.

하지만 국립민속박물관이 존재하는 이유 중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의 민속을 알린다는 데 있다. 외국 관광객은 물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등 해외 유명 인사들도 한국을 알기 위해 찾은 곳이 국립민속박물관이었다. 바로 그 외국 관광객의 접근성이 세종시로 이전하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현재 민속박물관에는 연간 3백만명이 다녀가고 있으며 이중 외국인이 150만명 내외로 거의 절반 수준에 육박한다. 이것은 경복궁 옆이라는 지리적인 특성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경복궁은 복원 사업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하는 상황이 됐고 이전으로 인해 관람객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는 문체부도, 문화인 모임도 충분히 인지를 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세종시로 이전할 경우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람율이 감소되고 이로 인해 국립민속박물관의 존재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화인 모임측은 "대한민국 역사문화관광과 문화외교의 중심인 국립민속박물관을 세종시로 이전한다면 국내외 관람객 접근을 크게 제약하고, 국립민속박물관이 수행해 온 전통문화원형보존 활동과 문화 재창달의 기능을 위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이는 국가문화경쟁력의 상실, 국민과 국가의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체부 측은 "최근 외국인 관광객이 단체보다 홀로, 개인으로 돌아다니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추세"라면서 "최근 변화의 추이를 보면 당장은 감소가 될 수 있지만 차차 세종시 국립민속박물관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외국 관광객의 관광 스타일이 바뀐다고 해도 서울이 아닌 세종시까지 가서 민속박물관을 관람할 것인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방문자 상당수가 해외관광객임을 고려하면 심각한 관람객 수 저하 가능성이 있다”면서 “용산으로 가면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과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박물관 건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접근성이다”라며 정부의 재고를 요청하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한 나라의 전통 민속을 보여주는 곳은 외국인들에게 익숙한 곳에 있어야 쉽게 찾아갈 수 있고 그렇기에 민속박물관이 서울에 있는 것인데 세종시가 과연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서울관광 활성화’를 외치면서 정작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지를 쉽게 이전시킨다는 것은 어딘가 석연찮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문화인 모임은 용산이 어려울 경우 사대문 안인 종로구 송현동의 구 주미대사관저(현 대한항공 소유)를 대체부지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문체부 측은 “그 부지는 이미 다른 곳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 주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국립한국문학관의 용산 입성, 문학계 향한 ‘보은’은 아닌가?

국립민속박물관이 들어서려했던 용산공원 부지에는  ‘국립한국문학관’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국립한국문학관은 도종환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 발의한 ‘문학진흥법’에 의거해 설립되는 것으로 지난해 공모를 통해 문학관 부지를 결정할 계획이었으나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공모가 중단됐고 결국 문화역서울 284, 국립극단 부지, 용산공원 부지 등 3곳을 후보로 추린 후 용산공원 부지로 결정했다.

문체부 측은 “용산공원에는 국립한글박물관이 있어서 근처에 국립한국문학관이 생기면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국립문학관이 건립된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 국립민속박물관을 설치한다는 보도가 지금도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그곳에 문학관을 짓겠다는 것은 일종의 ‘보은’이 아닌가라는 논란을 가져오기에 충분하다. 

최근 문체부는 ‘안도현 문학관’ 지원을 놓고 한바탕 진땀을 뺀 적이 있었다. 경북 예천에 안도현 시인의 문학관이 건립되고 정부가 특별교부세 5억원을 지원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은 안도현 시인이 “문학관을 지을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문체부도 “지원을 결정한 적 없다”고 밝혀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안도현 시인과 문재인 대통령, 도종환 장관과의 관계를 알고 있는 이들은 일종의 ‘화이트리스트’가 아닌가라는 우려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해프닝의 여파가 사라지기도 전에 용산 부지에 국립민속박물관이 아닌 국립한국문학관을 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몇몇 사람들은 다시 앞의 우려를 반복하고 있다. ‘문학인 출신이 문학인에게 특혜를 주려는 것이 아니냐’라는 의혹 제기가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문체부는 “일방적인 통보를 한 것은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논의 중인 상황이었다”면서 “반대하는 이들의 의견도 수렴하면서 조만간 이들과 말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현 상황에서 세종시 이전 철회나 국립한국문학관을 다른 곳에 세우는 생각까지는 아직 이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화인 모임의 한 회원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지금 이 상황은 자칫 국민들에게 ‘국립문화박물관도 결국 적폐 세력’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갑작스럽게 서울에서 내쫓는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마치 박물관이 적폐로 내몰린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국립민속박물관 이전, ‘지역균형발전’ 논리로는 공감이 부족하다

세종시로 옮겨야한다는 문체부의 주장도 어느 부분 일리가 있지만 17년을 논의한 사항을 단 몇 달 만에 손바닥 뒤집듯 결정한 부분과 서울과 세종시의 접근성 및 국립민속박물관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은 안이한 발상, 그리고 국립한국문학관의 ‘갑작스런’ 등장은 이번 국립민속박물관 이전 계획을 좋게 보기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들이다.

문화인들 및 관계자들과의 소통을 기대했던 현 정부, 그리고 그 정부의 문체부가 오히려 ‘일방통보’식 불통 행정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이전 정권보다 더 큰 실망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금부터라도 논의와 설득을 해야하는 것이 문체부의 일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이전은 단순한 ‘지역균형발전’의 논리로는 공감을 살 수 없는 부분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이전계획 진행 과정

*2000~2010 11년간 국립민속박물관 중장기 발전, 용산 이전방안 학술 연구용역 발주(한국문화정책개발원, 문화관광연구원 등)
*2009.09.30  대통령자문국가건축정책위원회
-용산공원 핵심지역에 특화된 국립민속박물관 공간 구축
*2009.10.20 서울신문 “용산에 한국판 스미스소니언 2조 투입-국립인류학·민족학박물관으로 개편”
*2014.07.  ‘국립민속박물관 이전건립’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완료
*2015.12  ‘경복궁 복원사업’ 변경에 따른 국립민속박물관 철거일정 조정
*2017.07  국립민속박물관 이전건립 추진현황(총사업비 2,045억원)
-1단계(지원시설) : 파주 개방형 수장고(2016~2020)/설계(2017년 완료) 중, 2018년 착공 완료
-2단계(핵심시설) : 용산 중박부지 내 본관 이전 건립(2024~2030년)
*2017.07.11  도종환 장관 취임. 국립민속박물관 최초 업무보고
-1단계 추진 중 파주 개방형 수장고와 2단계 본관 용산 이전 건립 보고
*2017.07.20  연합뉴스, 경향신문 등 언론 통해 국립민속박물관 세종 이전 추진 보도
-국정과제 67 ‘지역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 시대, 실천과제④ ’지역간 문화 균형발전 및 문화다양성 확보‘에 ’국립민속박물관 세종시 확대 이전‘ 포함

*2017.07.26  문체부 장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운영과에 세종시 이전 협조 공문 발송
*2017.08.21  역대 국립민속박물관장, 민박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세종시 이전 현안 보고
-세종시 돌발 이전의 문제점과 대안 논의
*2017.08.28  이종철 전 민박관장, 도종환 장관에게 세종시 이전 재고 용단 청원서 송부
*2017.10.18  세종시 이전 반대 ‘민족문화사랑 동행 문화인 모임’ 결성. ‘문재인 대통령님께 올리는 국립민속박물관 세종시 이전 반대에 관한 청원서’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