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춘향전'을 새롭게 해석한 두 분 선생님께

2018-11-19     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박용구 선생님(1914~2016)과 신상옥 감독님(1926~2006), 두 분 선생님, 안녕하세요? 늘 내 마음속에서 존경하고 있는 두 분께 ‘춘향전’을 매개로 글을 씁니다.

두 분은 제가 뭔가 풀리지 않을 때, 늘 떠올리는 분들이죠, 두 분 선생님은 보통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거나 깨닫지 못하는 걸,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내는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인의 입장에선, 매우 발칙한 생각이지요. 

고전 ‘춘향전’을 대하면서, 오래전부터 늘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두 장면이 있습니다. 선생님들게서도 그러셨는데, 이 글을 함께 읽는 독자들도 그리 생각했으면 좋겠네요.

첫째, “그 순간”, 몽룡은 춘향에게 끌렸을까요? 저 멀리서, 그네 타는 모습만 보고 그랬을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굴도 못 봤는데, 어떻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까요?

이건 내게 말도 되지 않습니다. 몽룡과 춘향은 그 이전에 만난 적도 없습니다. 춘향의 명성이야 자자했겠지만, 이 장면에선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됩니다. 몽룡이 방자를 시켜 춘향을 데리고 오라는 명령하는 장면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혹시 방자를 보내고, 누군가를 은밀히 만나려 한 건 아닐까요? 

둘째, “왜 그리” 학도는 춘향만을 고집할까? 학도는 오자마자 기생 점고를 한 후,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서, 빨리 춘향을 대령하라고 얘기합니다. 호색한(好色漢)이라면 ‘열 여자 마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춘향전에서 변학도가 또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갖는 장면은 보이지 않습니다. 

늘 이 두 가지가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은 분명 또다른 스토리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좀 지나서, 나는 두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분도 이미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신상옥감독님은, 멀리서 그네 타는 장면에 반한 것이 어색하다고 생각하면서 ‘꽃신’ 장면을 삽입했습니다. 방자가 춘향을 부르러 갔는데, 춘향이 따라올 기색이 없자, 그녀의 꽃신 한짝을 막무가내로 가져옵니다. 몽룡은 양반으로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고, 꽃신 한짝을 가져다주면서 춘향을 제대로 보게 되죠. 이런 ‘꽃신’ 에피소드가 있기에, 사랑의 시작이 자연스럽습니다. 

몽룡과 학도의 관계를 동성애로 풀었습니다. 박용구선생님은 그러셨습니다. 대사가 있는 대본이 아니기에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박용구 대본을 바탕으로 해서 안은미가 안무한 ‘춘향’울 보면, 두 사람의 관계를 동성애 코드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몽룡은 춘향에게도 반하지만, 학도는 몽룡에게 반한다고 할까요? 그리고 두 사람에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춘향전의 한계를 생각하면서, 나는 내 나름대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이른바 몽룡외전(夢龍外傳)입니다. 외전(外傳)은 본전(本傳)에 빠진 부분을 따로 적은 전기를 말합니다.

‘몽룡외전’은 춘향보다는 몽룡에 더 비중을 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런 대본을 쓸 수 있었던 출발에, 두 분 선생님이 계셨다는 게 참 고맙습니다. 신상옥감독님과 박용구선생님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별생각 없이 쉽게 넘어가는 부분에서 뭔가를 발견하는 분이시죠. 저도 두 분 선생님을 따라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몽룡외전’ 속의 이몽룡은 매우 현실적이고, 출세지향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죠. 변학도는 원래 ‘춘향전’에서 그렇듯이, 여성을 진실로 사랑할 줄 모르는 인물입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두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춘향에게 집착하는 것은, 그가 성균관시절에 몽룡과 꽤 가까웠던 사실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죠. 학도에게 춘향은 연적(戀敵)이라고 할 존재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남성국극’으로 풀려합니다. 그건 70년 전, 이 땅에서 처음 시작된 ‘여성국극’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여성국극(女性國劇)의 시대가 있었죠. 1950년대 최고의 흥행물이다. 그 시작은 1948년 10월 24일입니다.

이 땅 에서 오직 여성만이 무대에 등장을 하는 공연이었습니다. ‘여성국악동호회’의 결성을 기념 한 공연으로, 당시 판소리를 하는 내로라하는 명창들이 출연했습니다. 춘향전을 각색한 작품으로, 옥중화(獄中花)라는 작품입니다. 

여성국극에는 남장배우(男裝俳優)가 등장합니다. 그 남자는 현실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여성을 배려할 줄 아는 남성이었고, 사랑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리는 인물입니다.

1950년대의 여성국극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 ‘사랑과 욕망’의 도피처이자 분출구였습니다. 그건 ‘사랑과 욕망’ 뒤엉킨 ‘뜨거운 용광로’였습니다. 극장을 나서는 여인에게, 유교적 가부장제도 속에서 오래도록 억압받았던 그녀들에게, 여성국극은 ‘희망의 불씨’를 가슴에 심어주었지요. 

신상옥 감독님 그리고 박용구 선생님! 여성국극 70년이 되는 해에, ‘남성국극’을 원년으로 삼아 공연을 올립니다. 여성국극이나 남성국극인 모두 ‘젠더’를 전제로 한 극입니다. 무대에서 성 역할이 바뀐다는 것 자체가 일단 그렇지요. 1948년과 2018년, 세상은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젠더와 관련해선 자유롭지 못합니다. 

국악계의 입장에선, ‘남성국극’은 매우 발칙하고 불편한 작품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구촌의 공연문화를 넓게 본다면, 이런 유형의 작품은 이미 70년 전 소재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런 작품을 올려야 하는 건,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젠더적 편견’ 또는 ‘젠더적 억압’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올릴 수 있었던 건 두 분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이고, 또한 두 분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이 작품은 보고 제대로 평가를 해주실 거란 생각이 듭니다. 

1948년 10월 24일, 여성국극 최초의 작품은 ‘옥중화(獄中花)’입니다. 옥에 갇힌 춘향을 지고지순한 여성으로 그리는 작품입니다. 2018년 11월 20일, 남성국극(男性國劇)을 표방한 최초의 작품은 ‘옥중화(獄中話)’입니다. 옥에 갇히게 된 변학도가, 자신의 숨겨진 사실을 얘기합니다. 두 분 선생님게선 제가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습니다.

제가 두 분 선생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늘 ‘집단’과 ‘주류’에만 편승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마이너리티’에 대한 관심입니다. 사극에서도 임금이나 왕비가 아닌 ‘궁녀’에 관심을 갖는 분이 신상옥 감독이십니다. 다소 뻔한 고전 속의 인물에 생생한 현실감을 불어넣은 분이 박용구 선생이십니다.

배비장전이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로 탄생 될 수 있었던 건, 선생님이 계셔서 가능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늘 고전을 그래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의문을 가지고 살피면서, 재해석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이제 두 분 선생님의 행보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잘 지켜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