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고상한’ 어른인가요? 어른들의 추한 민낯 <대학살의 신>

‘대학살(Carnage)’을 통해 조명하는 인간 근본의 가식과 위선

2019-02-22     차유채 인턴기자

11살의 두 소년이 놀이터에서 싸우다 한 아이의 앞니 두 개가 부러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고상해 ‘보이던’ 두 부부가 추한 민낯을 드러낸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연극 <대학살의 신>의 주된 이야기다. 

네덜란드산 튤립과 같이 우아하게 치장됐던 어른들의 만남은 작은 단어 논쟁과 함께 유치찬란한 설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고상한 만남은 삿대질, 물건 던지기를 비롯한 눈물의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한 마디로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극이 마냥 부부들이 편을 이뤄 싸우는 구조가 아니다. 때론 아내들끼리, 때론 남편들끼리, 때로는 3명이 한 편이 되어 1명과 맞서 싸움을 벌일 때도 있다. 이렇듯 극은 사건에 따라 선과 악이 끊임없이 변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극중 등장인물의 선과 악의 경계 자체가 모호하다.

네 어른의 민낯을 드러내는 소재는 ‘술’과 ‘햄스터’이다. 예부터 인간의 본성을 파헤친다고 알려진 술은, 이번 연극에서도 ‘고상한 어른’이라는 가면을 쓴 네 인물의 가식을 벗겨버렸다.

의외로 극 중 중요 포인트를 담당한 햄스터 또한 등장인물들이 인간, 그 중에서도 ‘나’와 비슷한 부류의 존재가 아닌 그 밖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조명해줌으로써 연극 관람에 있어서 가면을 여는 열쇠와 같은 소재를 담당했다.

사회적으로는 드높은 명예를 지닌 변호사이나 정작 하는 일은 돈에 따라 부도덕한 제약회사의 편에 서며 ‘가장 가까운’ 가정의 일은 나 몰라라 외면하는 알랭(남경주 분).

우아하고 섬세하며 고상한 여자로 보이나 결국 상황이 주는 부담감과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구토’를 통해 제일 먼저 싸움의 양상을 전환시킨 아네뜨(최정원 분).

평화주의자에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를 드러내며 호탕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 누구보다 ‘호탕하게’ 인간 본위에 서서 죄책감 없이 햄스터를 내다 버린 미셸(송일국 분).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아프리카 대학살에 대해서는 자신의 일인 것 마냥 크게 분노하며 울분을 감추지 못하지만 정작 일상 속에서는 주변 인물들을 억누르며 원칙에 근거해 ‘학살’하고자 하는 베로니끄(이지하 분).

이렇듯 <대학살의 신> 속 등장인물들은 모순과 이중성으로 뒤섞여 관객들에게 ‘매우 씁쓸한’ 웃음을 선사한다.

분명 <대학살의 신>은 굉장히 재밌다. 보면서 큰 소리로 웃는 관객들도 허다하다. 그렇지만, 극이 중반을 지날수록 관객들은 재미 속에서 오히려 숙연해진다.

연극을 보던 관객들은 어느 순간 알랭, 아네뜨, 미셸, 그리고 베로니끄에 자신을 투영한다. 그리고 그 순간, 관객들은 그들의 막장에 가까운 행보를 보며 언젠가부터 웃음보다 한숨이 앞서게 된다.

연극을 통해 그간 대외적으로 내보였던 관객 자신의 ‘고상한 가면’의 끔찍한 민낯을 자각하는 순간, 관객들은 웃음의 대상으로 여기던 네 명의 등장인물들을 보며 자신이 감추고 있던 폭력성과 가식, 위선을 느끼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관객들은 스스로가 마주했던 추한 민낯을 다시금 가면에 숨기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웃는다. “아, 연극 너무 재밌었는데?”하고 말이다. 함께 본 다른 이도 말한다. “배우 연기 정말 잘하더라!”하며.

스스로의 가면 속 솔직한 모습을 마주한 관람객들은 배우들의 연기를 모두 ‘연기’로 돌리고 만다. 결국 그 점이 연극이 우리들에게 하려는 질문이 아닌가 싶다. 당신은 정말 ‘고상한’ 어른인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