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 “전통문화, 실력과 이론 겸비한 전문기획자 절실”

연극·영화 배우, 국악인, 국립극장장, 문화부 장관… 화려한 이력만큼 넓은 식견으로 전통문화 비전 제시

2009-10-29     이소영 기자

 

[연재] 이 시대의 대가를 만나다
한 사람의 인생 프로필에 입이 쩍 벌어졌다. 이렇게 화려할 수 있을까. 기자, 교사, 연극배우·연출가·대본작가·국악인·영화배우·극장장·장관…  그의 이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길에 들어서서도 우리 전통문화와 예술을 놓치 않았다. 전북 전주 출생, 서울사대 독어교육학 전공. 무명의 연극인에서 인간문화재 박초월 선생에게 판소리를 사사받으며 소리꾼의 삶 10년, 영화 ‘서편제’의 각본을 쓰고 주인공 유봉 역을 맡아 1993년 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고,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 의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객원교수까지…. 게다가 2000년부터 7년 반 동안은 국립극장 극장장을 맡았고 제8대 문화관광부 장관도 지냈다. 이 눈부신 이력의 주인공은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57)이다. 스스로를 ‘넓고 큰 영혼을 가진 광대(廣大)’라고 말하는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 전통에 대한 집념으로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진정한 전통예술가가 아닐까. 신종플루로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취소한 이후에도 특별한 행사를 위해 틈날 때마다 들린다는 전주세계소리축제 서울사무소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그의 삶을 통해 느낀 우리 전통문화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신종인플루엔자로 인해 전주세계소리축제도 타격을 받았다. 지방의 국악 행사를 세계축제로 도약시키려 한 과감한 도전과 참신한 시도로 주목받았는데, 개막을 10여 일 앞두고 취소돼 아쉬움이 크겠다.

 프로그램들이 신종인플루엔자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어린이와 연로한 명인명창들을 주인공 하는 것이 많았고, 축제보다는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이 중요했다. 올해 아쉬움을 보강해서 내년에는 더 잘 준비할 꺼다. 하지만 전 조직위원장의 잔여 임기만 하기로 해서 올해로 끝이다. 내년에도 맡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올해 하기로 했던 행사 중에 판소리·무용·기악·풍물굿 등 국악 전 분야에 걸친 100인의 국내 명인명창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국악 특강 릴레이 및 1950년 이후 60년 만인 단체기념촬영 등 몇 개의 프로그램을 살려 12월 4일 송년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요새 블로그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은데, 매달 20건이 넘는 글을 올리고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고 재미있는 시각으로 풀어내 6개월 정도 만에 굉장한 인지도를 얻었다. 블로그라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어려서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고 예술 활동을 하면서 대본·희곡이나 영화 등 시나리오도 많이 쓰고 신문·잡지 등에 기고하기도 하면서 평생 연필을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제약이 많아서 자유롭지 못하다. 블로그는 부담 없이 내키는 대로 쓸 수 있어서 내가 쓴 글이지만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생명력을 느낀다. 요즘 블로그를 하면서 그동안 썼던 글을 재정리하고 평소 쓰고 싶었던 글을 쓰면서 이름, 얼굴, 나이… 아무것도 모르지만, 세상 사람들과 내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이 즐겁다. 서로 다른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공부가 된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지만 내 또래도 블로그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얼마 전 ‘김명곤아저씨가들려주는우리소리우리음악’이 라는 책을 냈다. 어떻게 쓰게 됐나.

지난해부터 준비하면서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 국악, 소리에 대한 자료가 정말 너무 없더라. 외국에서는 훌륭한 필자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쉽게 풀어쓴 책을 많이 내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출판사와 많이 공부하고 준비해서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어린이들이 우리 음악을 즐기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나아가 교사, 부모 등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우리 음악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특별부록으로 시대별 대표적인 우리 소리와 음악을 담은 CD도 만들었다.

독일어 전공과 연극, 판소리…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어떻게 판소리를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원래 문학 지망생이었다. 독어를 전공해서 독일 문학을 공부하고 유학도 좀 갔다 오려고 했는데, 2학년 때 우연히 연극 연습을 보고선 하고 싶어졌고 3학년 때는 사대 연극반 반장도 했다. 헌데 휴학 시절 판소리를 배우는 친구를 통해 우리 소리를 듣고 그 길로 명창 박초월 선생님에게서 직접 판소리를 배웠다. 10년간 소리를 공부하며, 민요와 풍물, 탈춤, 굿 등 전통연희도 배우면서 조예를 키워나갔다.

공연을 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우리 소리를 즐길 텐데, 특별히 좋아하는 소리가 있나.

(영화)‘서편제’에서도 부른 ‘사철가’를 제일 좋아한다. 다섯 마당을 다 좋아하지만 특히 흥부가와 수궁가는 깊이 있게 배워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 춘향가와 심청가도 짜임새가 훌륭해 안 좋아할 수가 없다. 적벽가는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작가적인 입장에서 연구 대상이다. 남의 나라 영웅을 오랫동안 우리 영웅처럼 생각해오면서 결국 우리 식으로 변환한 노래를 어떻게 봐야할지… 그런 것들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한동안 사라져버렸던 전통예술과를 문화부장관 재임 당시 새로 만들고 전통예술진흥 정책 발표하는 등 전통예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요즘 그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는지.

당시 국악예고가 사립고라서 환경이나 시설 등 여건 개선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국악예고를 국립화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등 후배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우리 전통을 배울 수 있게 돼서 기뻤다. 국악 인재육성 정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국악을 알리고 나아가 기량이 뛰어난 국악인들을 지원해 국악 전문기획자를 만들어보자는 의도였다. 성과라기보다는 장기 비전을 만들어서 이렇게 키워나가자 하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나름대로 다들 하고 있겠지만 기대에는 못 미친다. 전통문화나 국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문화부 장관 당시 때보다 멀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국악과 우리 음악은 어릴 때 접하는 것이 중요한데 교육에서부터 너무 안 되어 있다. 일부 초등학교에 도입되고 있는 국악 특별강사 제도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곳까지 더 확대·지원되기를 바란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춘향뎐, 취화선 등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영화들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전통이라고 하면 대중들이 낯설어하고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폭 넓은 소재도 아니기 때문에 다른 소재보다 대중들의 반응을 얻기가 10배는 힘들다. 그런 와중에 ‘서편제’는 대본·연기·영상·구성 등 모든 것이 짜임새 있게 만들어져 성공할 수 있었던 특별 케이스다.  전통을 가지고도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대중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다.

말한 대로 대중성 확보 문제부터 인간문화재 지정, 국악계 갈등 등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다.

세부적인 문제야 엄청 많다. 교육·방송 등 모든 면에서 전통과 단절된 문화 환경 자체가 전통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하지만 전통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 등의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희망적이다. 다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특히 전주는 국악의 발상지임에도 우리 음악이나 소리에 대한 유아기 교육조차 제대로 자리 잡혀 있지 않다. 그나마 국악공연이나 행사가 많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전북대의 경우 1학년 교과과정에 판소리·대금·단소 등 전통악기 중 하나를 반드시 배우도록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를 더 확대시켜야 한다. 중요한 일이다. 또한 실기만큼이나 이론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국악 등 전통문화의 경우 실기 위주다 보니 자기 분야에서만 뛰어나고 자기 범위 안에서만 보는 우물 안 개구리가 많다. 행정·정책·기획 등 큰 틀에서 전체를 바라보고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현대적인 것들과 엮어내는 전문인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키워야 한다.

요즘 국악을 하는 젊은이들이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국악의 퓨전화를 많이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얼마 전 (TV 프로그램) ‘인간극장’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며 트로트를 부르는 쌍둥이 자매를 본 적이 있을 꺼다. 그런 재능 있는 젊은 인재들이 전통문화의 현대화 작업에 많이 도전하고 있어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그러한 노력으로 인해 대중들이 지루하다고만 생각했던 우리 음악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전통의 정통을 고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가야랑’처럼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접목시키는 등 대중들과의 소통을 위한 다양한 시도도 필요하다.

방시혁 작곡가와의 인연으로 이번에 ‘햄릿’의 한국판 뮤지컬 대본을 쓰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계기로 쓰게 됐는지, 또 작품의 방향성은?

햄릿 말고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인 시각이 묻어나는 작품들이 많더라. 젊었을 때는 남성적인 성향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 아내, 딸에게서 포용력·부드러움·희생 등 여성들의 절대적인 힘을 배우고 느꼈다. 그래서 음양의 균형을 추구하는 동양적 세계관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작품을 구상했다. 햄릿의 오필리아를 ‘오필려’라는 한국적인 이름으로 바꾸고 그녀를 주인공으로 여성적 시각에서 바라본 새로운 ‘햄릿’이다.

대본은 거의 마무리했고 음악 작업에 들어갔다. 원작의 오필리아는 순종적이며 햄릿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지만 미쳐서 죽는다. 하지만 오필려는 햄릿에게 할 말 다하면서 복수와 살육으로 피비린내 나는 비극 속에서 용서와 사랑의 힘으로 다른 영혼들을 정화시켜주는 여성적 생명의 상징이다. 남성 지배적이고 각박한 사회가 여성적인 성향을 좀 가져서 서로 좋은 것들이 융화됐으면 좋겠다.

앞으로 서편제 같은 영화, 혹은 드라마 등 작품 출연 제의가 들어온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살면서 느끼고 경험하면서 달라진 것이 있겠지. 그런 것들이 연기로 표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하나의 일만 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기회가 된다면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을 하고 싶다.

인터뷰-이은영 편집국장 young@sctoday.co.kr
정리 및 사진-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