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연희와 한류

전경욱(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

2009-10-30     전경욱(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

우리의 전통연희는 주변 여러 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그 독자성과 우수성을 갖추어 왔다. 우리는 삼국·고려·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외래의 공연예술을 수용하여 공연문화를 풍부하게 영위하면서, 그것을 우리의 취향에 맞게 개작하여 한국화하고 나아가 새로운 공연문화를 창출해 왔다.

새로운 공연문화를 성립시킬 수 있었던 뿌리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같은 제천의식이나, 마한의 농경의식 같은 상고 사회의 가무 전통으로부터 이어지는 자생적·토착적 공연예술이었다. 삼국시대에 서역과 중국으로부터 외래 공연예술들이 유입되었을 때, 이런 공연예술들을 담당할 수 있는 자생적 연희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신라·백제의 공연예술은 수준 높은 연희로 발전할 수 있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백희·가무백희·잡희·산대잡극·산대희·나례·나희 등으로 불리던 전통연희의 종목들은 대부분 산악·백희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런 명칭들은 이 공연예술들이 산대라는 무대 구조물의 앞에서 연행되었고, 또 나례에서도 연행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이르면 이런 공연예술들이 변화·발전하여 연극적 양식의 본산대놀이 가면극·판소리·꼭두각시놀이 등을 성립시킨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한류열풍이 굉장하다. 한류는 한국의 TV 연속극, 영화, 가요 등이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에서 매우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최근에는 브레이크 댄스(Break Dance)를 추는 젊은이들 즉 B-Boy들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브레이크 댄스대회’에서 우승을 독차지하고 있다.

TV 연속극, 영화, 가요, 브레이크 댄스는 우리나라보다 외국에 먼저 있었으므로, 외국의 영향 아래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TV 연속극, 영화, 가요, 브레이크 댄스는 한국적 독자성과 우수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오히려 중국, 일본 및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굉장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지금과 같은 한류열풍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이미 삼국시대에도 중국과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한류가 있었다. 중국에서 인기가 있었던 고구려의 고대 한류로는 수나라와 당나라의 칠부악·구부악·십부악 가운데 고구려기인 호선무(胡旋舞)와 광수무(廣袖舞), 인형극, 이백(李白)의 악부시 〈고구려〉, 고구려춤을 흉내 냈던 당나라 재상 양재사의 경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던 고구려의 고대 한류로는 일본의 무악(舞樂, 궁중의 공연예술) 가운데 우방악인 고구려악 24곡(曲)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백제인 미마지(味摩之)가 중국 남조 오나라에서 배워 612년 일본에 전했다는 기악(伎樂)은 백제의 대표적 고대한류이다. 일본에서는 기악이 전래된 이후 불교의 2대 명절인 석가탄신일(음력 4월 8일)과 우란분재(음력 7월 15일) 때 동서양사재회(東西兩寺齋會)에서 기가쿠(伎樂)를 공연했는데, 나라(奈良) 시대(710∼784)에는 기가쿠가 모든 사찰에서 연행될 정도로 융성했다. 현재 일본에는 기가쿠에 사용되던 가면들이 230여 개 남아 있다.

신라의 연희는 가무백희, 황창무, 농환, 우륵이 제작한 12곡, 사자춤, 무애희, 신라악 입호무, 신라박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신라악 입호무와 신라박이 신라의 대표적인 고대한류이다. 특히 중국학자들은 신라의 ‘입호무’를 오늘날 중국에서 널리 전해지고 있는 환술인 ‘항둔(缸遁)’으로 간주하면서, 이 환술이 신라악 ‘입호무’로부터 발전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외래 연희를 수용하여 공연예술을 풍부하게 영위하면서, 그것을 우리의 취향에 맞게 개작하여 한국화함으로써 새로운 전통연희를 창출해 왔다.
더 나아가 이제는 전통연희가 문화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2005년 영화 <왕의 남자>가 크게 히트하여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는데, 이 영화는 조선후기의 떠돌이 놀이꾼인 두 연희자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많은 전통연희 종목들이 공연되었다.

그리고 현재 연극계에서는 우리의 전통연희를 활용한 한국적 연극을 창작하여 공연하는 연극단체들이 여럿 생겨났고, 이들 중 일부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아직도 초보적인 단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전통연희라는 문화콘텐츠를 잘 활용하여 새로운 한국 현대연극을 창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