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이야기] 설날 밤, 체의 구멍을 세다가 하늘로 돌아간 밤귀신(夜光鬼)

정영신의 장터이야기

2019-11-05     정영신 기자
1990

몇 해 전에는 체장이들이 장터마당에서 주문을 받아가며 체를 만들어 팔았다.

어렸을 적, 우리 윗집에 사는 깨순이 엄마가 장터에서 먼 사돈된다는 체장이를 만나

체 구멍이 다른 것을 여러 개 만들어와 자랑을 했었다. 그 후 부터 동네아낙네들이

들락거려 깨순이네 집 문턱이 반질반질 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1991

깨순이 엄마가 떡가루를 내리고, 매밀 묵 가루를 내려 음식장만을 하면

깨순이는 낮은 우리 집 담장위로 음식이 담긴 대바구니를 넘겨주었다.

또한 깨순이와 나는 감나무아래에서 체 구멍을 세다가 구구단을 외웠고,

체 구멍이 몇 개인지 끝끝내 알지 못한 채 도시로 왔다.

1991

할머니는 이야기가 궁해지면 밤에만 찾아오는 귀신이야기를 해줬다.

이 야광귀신이 밤이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아무집이나 들어가

자기 발에 맞는 신을 신고 가버린다는 것이다.

신발을 잊어버린 사람은 일 년 동안 운수가 나쁘다는 미신 때문에

설날 밤에는 문 앞에 체를 걸어두었다는 것이다.

1988

밤 귀신은 밤새 체 구멍을 세다가 끝까지 다 세지 못해,

날이 밝아지면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민간에서 전해지는 단순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우리민족의 지혜가 들어 있다.

이는 남의 물건을 탐하기 전에 다시 생각해보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치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의미가 이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것 같다.

1989

장터에 가면 여인네들이 있는 곳이면, 체파는 여인이 빵긋거리며 다가간다.

이 여인의 걸쭉한 이야기에 홀려 체를 사는 여인도 있었다.

바람 따라 흘러 다니는 이야기도 누구의 입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천지차이가 난다는 것을 일찍이 장바닥에서 배웠다.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