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이야기]깨순아 밥먹게 엉릉들어와야!

정영신의 장터이야기

2020-06-15     정영신 기자
1989

어렸을 적 우리 동네에 살아있는 역사 같은 노인이 있었다.

오래된 나무처럼 허리는 굽고 속은 텅텅 비었지만,

생활 속의 지혜나 마을에서 일어 난 수많은 사연을 알고 있었다.

동네구석구석은 물론 내 동무였던 깨순이네 집

수저가 몇 개 있는지 까지 모르는 것이 없었다.

1990

또한 마을입구에는 500년 넘는 팽나무가 버티고 있었는데,

여름이면 그 아래 평상으로 마을어르신들이 모여들었다.

쌈지담배를 비벼 넣은 곰방대를 물고 온종일 먼 산만 바라보다

초저녁달이 저수지를 건너 젖은 얼굴을 내밀면 집으로 돌아가신다.

1992

집채만 한 짊을 지고 버스 타러 가는 박씨할매 사진을 보며

내 어릴 적 기억을 색깔과 향기로 만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1988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익명의 존재들에게

생기를 불어주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때 문득 잊었던 목소리 하나가 나를 깨운다.

깨순아 밥 먹게 엉릉들어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