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1930년대 경성에서 화가-문인과 함께 나눈 대화

MMCA 덕수궁,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展 어두운 현실 속 신문물의 낭만을 이해한 시대

2021-06-10     이지완 기자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과거 문화를 동경하는 주인공 ‘길’이 프랑스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중 갑자기 자정에 나타난 차를 타고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길은 과거로 떠나 자신이 동경하는 1920년대 예술가 스콧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와 피카소 등을 만나고 작중에서 그들의 뮤즈로 나오는 ‘아드리아나’까지 만나게 된다. 영화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과거의 낭만만을 좇는 태도에 대해 날카로운 일침을 가하며 끝이 나지만, 영화가 그려낸 1920년대의 낭만은 주제와 별개로 너무나 아름답다.

개봉한 지 10년이 다 돼가는 이 영화를 몇 번 돌려보면서, 기자 또한 그 시대 낭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매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파티와 아름다운 옷들,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서 나누는 깊이 있는 대화들은 지금은 누릴 수 없는 어떠한 낭만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했다.

사실 그러한 낭만을 꿈꿀 때면 기자의 머릿속엔 서양 풍경만이 그려졌다. 우리나라 1910년부터 1940년대는 일제 치하에서 고통 받고 있었고, 1950년대엔 분단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시기였다. 이 시대의 문학작품이나 자료를 읽으면 알게 모르게 가슴 한편이 아릴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의 예술을 거론한다는 것은 선조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행위 같았다. 하지만, 예술은 인간이 힘들 때 가장 큰 힘이 되고 약자가 가진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언어가 된다. 1910년부터의 경성도 예술의 힘이 번진 시기였다.

▲최재덕,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 덕수궁관에서 지난 2월부터 5월 30일까지 열렸던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展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보여줬던 시절 즈음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예술의 낭만과 고뇌를 담아냈다. 전시는 범람하듯 밀려들어 오는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조국의 참담함을 함께 마주하고 살아갔던 예술가들의 시간을 차분하게 담아냈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1930~50년대 경성의 새로운 얼굴을 찾아주는 시도였다. 은은한 조명아래에 구성된 전시는 마치 그 시대 예술인들과 오랜 시간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과도 같았다. 이제 기자는 근대 예술을 떠올릴 때면 프랑스 파리의 새벽이 아닌, 우리나라 경성 종로의 ‘제비 다방’을 떠올리고 조선일보 출판부에 나란히 앉아있던 백석과 정현웅을 그려볼 수 있게 됐다. 핏물과 서러움으로 얼룩져있던 역사 속에서도 찬란한 지식과 예술적 표현으로 시대의 아픔과 그 때의 ‘지금’을 살아냈던 젊은 선조들을 마주할 수 있는 전시였다.

아흔을 넘긴 시인부터 MZ세대까지 아우른 전시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시에는 하루 평균 670명 이상이 방문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전시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에도 전시장은 주말 데이트를 하는 연인과 가족단위 관람객 예약이 꽉 찬 상태였다.  전시는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의 근대미술가와 문학가의 작품과 자료로 구성됐으며 그들의 관계성에 주목했다. 총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됐고 ▲제 1전시실, 전위와 융합 ▲제 2전시실, 지상(紙上)의 미술관 ▲제 3전시실, 이인행각(二人行脚) ▲제 4전시실, 화가의 글‧그림이다.

미술관을 찾은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에게 한국 근대미술과 문학은 각기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듯했다. 신문 소설의 삽화를 책처럼 넘겨보며 관람할 수 있는 제 2 전시실 ‘지상(紙上)의 미술관’을 아이와 함께 관람하던 관람객이 전시물을 짚으며 아이에게 종이 신문에 대한 설명을 전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백석 시인의 사슴 시집을 오랫동안 관람하던 백발 중년 여성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 관람객이었다.

▲백석,

제 2전시실에서는 당시에 출판됐던 서적이나 잡지도 만나볼 수 있었다. 표지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석의 <사슴>시집은 100부 한정판으로 제작돼 윤동주 시인도 모두 필사해서 봤다고 알려져 있다. 책 표지를 넘겨서야 작은 글씨의 ‘백석 시집 사슴’ 여섯 글자를 볼 수 있다. 판형이 넓은 편이어서 여백이 많고, 한지를 사용한 책이기에 첩장본을 하는 등 제작에 수고로움이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런 노고와 달리 시집은 요란하지 않은 한국의 잔잔한 모던미를 가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근현대 미술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진 BTS리더 RM이 두 시간여 동안 관람하고 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클럽 ARMY(아미)등 젊은 세대에게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또한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꾸준히 집필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김남조 시인도 전시장을 찾아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차근차근 전시를 둘러보며, 순간순간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는 김 시인은 당시 문화를 직접 경험했던 이의 시선을 드러냈다.

기자에게 이번 전시는 교과서 속에서 고리타분하게 봐왔던 작품들의 날카롭게 벼른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당시 발표 자료로 만나게 된 이상 <오감도>는 굉장한 감동이었다. “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적다하오,)/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무작정 이해되지 않고, 어렵다고 느꼈던 시였는데 다시 읽어보니 그 시대의 힙(Hip)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약 상자 삽화와 함께 실린 ‘날개’ 자료도 독특한 감각을 전했다.

문인으로 잘 알려진 이상은 사실 화가지망생으로 그림을 열심히 그린 인물이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자신의 자화상을 출품할 정도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건축학을 공부했고, 그 시간은 그에게 또 다른 감각의 장을 선사했다. 이상의 선구적인 그래픽 감각은 1930년에 발간된 조선과 건축 표지와 김기림 <기상도> 장정으로 확연하게 돋보인다. 미니멀하면서도 우아한 감각의 표지와 장정은 지금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김기림,기상도(氣象圖),장정:이상,1936,

또 한 명 새롭게 조명해볼 수 있는 문인으로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작가 박태원이 있다. 봉준호 영화감독의 외조부로도 알려져있는 박태원은 소설 집필 외에도 소설 삽화를 직접 그리기도 하는 미술적 감각도 지니고 있는 이였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그가 직접 그린 삽화는 1930년대의 그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독특한 구도를 지니고 있는데, 카메라 앵글이 천장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감기법의 그림이다. 그는 실제로 이상과 함께 영화를 자주 보러 다니며 영화의 기술을 자신의 작품에 많이 사용하려했다고 알려져 있다.

화가와 문인들은 프랑스에서 들어오는 초현실주의, 다다와 같은 새로운 사조에 한 번씩 빠져들었고, 시인‧소설가‧극작가였던 장 콕토에게도 큰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전시에선 장 콕토의 전위성이 잘 드러나는 영화 작품 <시인의 피>를 보여주며 그 시대의 감각의 장막을 살며시 열어 보이기도 한다.

▲박태원

1930년대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대’의 요소를 이미 체험하고 받아들인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제 1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는 『별건곤』 제8권 제7호 표지, 황정수 <모던 금강 만이천봉!>이다. 이 표지에선 이미 호텔, 카페, 주점, BAR 등 현대적 요소의 건물이 등장한다. 특히 표지 좌측에 그려져 있는 자살장(自殺場)이 시대의 비애와 현대 인간성 상실과 맞닿아있는 공간으로도 읽힌다.

그 시대에 이미 완성된 현대성과 모던함을 보여주고 있는 전시는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익숙함을 노년 세대에겐 가까웠던 시기의 아픔을 승화한 예술을 만나볼 수 있는 장이 됐다. 당시 시대상과 예술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들이 공개됐다는 점에서 전시는 이미 풍부한 즐거움을 전하지만, 나는 이번 전시의 주목할 만한 점이 자료가 가진 시간적 고루함을 숨기고 작품이 품고 있는 전위적인 태도를 앞으로 내세운 지점이라고 본다.

사각 유리 케이스 안에서 작품을 꺼내 신문을 넘겨보는 듯한 책자 형 전시물 기획하고 회화 배치사이사이에 놓인 당시 출판 자료와 작가들의 메모는 다양한 감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지금 시대 우리에게 살아있는 재미를 준다. 또한 이러한 전시 구조는 그 시대의 예민한 감각으로 시대를 받아들였던 예술인들의 태도도 은유하고 있었다.

▲황정수,

살롱 드 경성, 문단-화단의 연대와 우정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가 조선일보에서 연재하고 있는 칼럼 제목은 ‘살롱 드 경성’이다. 1920년대에서 40년대 초까지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는 조국을 잃은 고통을 겪고 부조리한 현실을 거부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였던 이른바 ‘경성 르네상스’를 일군 시기다.

그 누구보다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받아들였던 이들은 감각 최전선에 있었던 예술인이었다. 그리고 1930년대의 경성은 문인과 화가들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던 시기였다. 1934년에 순문예 동인지를 창간한 삼사문학 동인에 참여하고, 문장의 실무를 담당했던 수필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조풍연은 1941년 결혼식을 올리는데, 이 결혼식 축하화첩에서 근현대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1940년은 조선일보‧동아일보 등 민간신문이 강제 폐간되는 등 굉장한 암흑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시대의 분위기 때문인지 이 당시 원화 그림은 정말 찾기 힘든 자료라고 한다. 그런데, 조풍연의 결혼 축하화첩을 보면 김환기, 정현웅, 길진섭, 김용준, 김규택, 윤희순, 이승만의 그림을 볼 수 있다. 결혼 축화화첩을 작은 병풍처럼 구성돼 화가들의 그림이 이야기를 담은 편지글처럼 이어진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친우의 결혼을 축하하고자 그린 작품들에는 당대 화가와 문인들이 깊은 믿음과 어려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서로를 향한 복합적인 감정이 녹아들어있다. 

▲구본웅,

최근 출판된 시인과 화가의 관계에 주목한 글을 담은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책 <시인과 화가> 서문에는 ‘1920~30년대 서울은 문학과 미술이 한 가족 되어 동고동락했다’는 표현이 있다. 책에서는 김용준, 길진섭, 구본웅 등이 참여한 목일회라는 미술단체와 이태준, 이상, 김기림, 정지용, 박태원 등이 참여한 구인회라는 문학단체와의 교류는 상상이상으로 끈끈한 관계였다고 말한다.

전시는 제 3전시실과 제 4전시실을 통해 문단과 화단 간 관계의 맥을 펼쳐 보인다. 제 3전시실에서 선보인 예술의 영감을 공유했던 화가와 문인 간 이야기와 전시 자료는 마치 내가 보지 못했던 졸업한 선배들의 무용담을 듣는 듯한 재미를 안겨줬다. 특히 백석과 정현웅, 이쾌대의 형인 이여성과 김기림의 만남이 인상적이었다.

백석과 정현웅은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한 잡지 「여성」 편집자로 함께 일했다. 이 때에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정현웅의 그림이 함께 잡지에 실렸다. 전시에서는 당시 발간된 화문과 정현웅이 장난스럽게 백석의 옆모습을 그리고 쓴 글 <미스터 백석>을 볼 수 있었다. 항상 편집에 열중하는 백석이었기에 정현웅 자신은 매일 심각한 ‘미스터 백석’의 프로필만 볼 수 있다는 내용은 그들의 끈끈한 유대와 관계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자료였다.

김기림과 이여성 역시 조선일보 신문사에서 만난 관계다. 김기림은 이여성보다 7살이 어려, 그들의 나이 차는 꽤 많았다. 하지만, 모더니즘 문학운동을 이끈 김기림의 예리한 감각과 사회 이곳저곳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보도한 이여성의 깊이감은 공명을 일으켰다. 김기림은 <붉은 울금향과 로이드 안경> 수필에 이여성의 얘기를 담아냈다. 수필에서 김기림은 “이형은 나의 2년 동안의 서울 살림 중에서 얻은 최대의 우정이다”라고 말한다.

▲정현웅,

후대의 일반 대중은 이전 세대가 남겨놓은 작품이나 결과만을 보고 느낄 수 있다. 그 작품이 어떠한 과정 안에서 완성됐고, 어떠한 생각이 담겨있는 지는 전문가들의 연구 영역으로 남겨 둬야한다. 제 3전시실은 일반 대중은 쉽게 알지 못했던 그림 뒤 작가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시대 예술가들 곁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인다.

이 시기 주목할 인물로 한국의 모더니즘 시운동을 이끌며 이미지즘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광균 시인이 있다. <와사등>, <설야> 등의 시를 쓴 김광균은 1910년대생 화가와 문인들 사이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그림을 굉장히 사랑한 김광균은 시인이면서 사업가이기도 했다. “1930년대의 시는 음악보다 회화이고자 하였다”라는 말을 한 그는 김만형, 최재덕, 이중섭, 김환기 등과 깊은 우정을 나누면서 당시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적극적인 후원을 하기도 했다.

김광균은 특히 이중섭을 많이 지원했는데, 제 3전시실과 제 4전시실 사이에 배치된 영상 자료에서 김광균 딸의 인터뷰로 그들의 관계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이중섭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김광균 집에 맡겨두곤 했는데, 가끔씩 찾아와 그림 값을 받아가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백석

제 4전시실은 화가이면서도 빼어난 글 솜씨를 펼쳤던 이들로 김용준, 장욱진, 박고석, 한묵, 천경자, 김환기를 조명하면서 전시 내내 이어지던 긴 대화를 마치는 것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화가들의 글을 직접 읽어볼 수 읽게끔 조성된 공간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작은 쉼터로도 느껴진다.

마지막 전시실에서 감명 깊게 본 자료는 김광섭 시인에게 보낸 김환기의 육필 편지였다. “멍멍한 시간, 할 일이 없어 혼자 맥주를 마시며 1월 31일에 쓰신 이산(怡山) 선생 (시인 김광섭) 글월을 읽었어요”로 시작되는 그의 편지글에는 한 권에 3만 원짜리인 비싸서 안 팔리는 시집을 내겠다며, 그것이 미운 세상에 대한 복수가 될까 물어보는 김환기의 생각이 담겨있었다. “요새 제 그림은 청록홍(靑綠紅). 점밖에 없어요…붓을 들면 언제나 서러운 생각이 쏟아져 나오는데 왜 나는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참 모르겠어요”라는 그의 먹먹한 문장은 김환기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지침이 되는 것 같았다.

▲무제,이수경,2021,국립현대미술관커미션(사진=서울문화투데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는 미술을 시작으로 한국 근현대 문화예술을 총체적으로 다루며, 한국이 가지고 있는 미의 근간을 열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작품은 보는 이가 가진 재료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한다. 너무나 많은 가치가 충돌해 세계의 방향이 무엇인지 근원적으로 다시 고민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번 전시는 선배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전하는 격려와 지침을 전달해주는 듯했다.

한편, 전시에는 1930~50년대 작가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현대미술가 이수경이 창작한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그는 당시 작가들의 모습에서 작은 몸에서도 고운 빛깔을 갖고 있는 공작새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한다. 작품 설명에서 이 작가는 “몸집에 비해 비대하고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 거대한 꼬리를 지녔지만, 공작새는 그 존재만으로 우아한 기품을 뿜어낸다”라고 설명한다. 예술은 가끔 필요와 불필요의 경계에서 논의되곤 한다. 하지만 어떤 시대에서든지 예술은 계속돼왔다. 모순으로 가득 찬 굴곡의 세상에서 펼쳐진 한국 근현대 예술인의 작품과 그것을 바라본 현대 예술인의 조우는 앞으로 예술이 나아갈 길에 대한 조언으로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