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늑대 아이

2021-07-17     윤이현
윤이현(2000년생),

내가 유치원을 갓 졸업했을 때, 작은 언니는 중학생이 되어있었고, 큰 언니는 고등학교 신입생이 되었다. 부모님은 공부를 곧잘 하는 언니들에게 기대가 크셨고, 나 또한 그들을 우상으로 삼았다. 일찍이 공부할 싹수가 보이지 않는 나는 대신 여러 예체능을 접할 기회를 얻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가야금, 서양화, 운문, 농구 등 많은 것들을 배웠다. 배우는 족족 곧잘 했기에 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넘치는 칭찬을 해주셨다. 나에게 사랑과 관심은 과분하게 늘 함께했다. 그래서 무엇이든 악을 쓰고 노력하기보다는 여유를 부리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반대로 두 언니는 칭찬을 쟁취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 다르게 욕심이 많았고, 노력할 줄 알았다.

언니들은 각자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그들이 20대를 보낼 때,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부모님의 예측은 정확했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왜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 뺏고 빼앗기는 경쟁이 우선 싫었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처럼 거대한 보리수나무 아래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물감과 붓 뒤에 숨어서 언젠가는 직면해야 할 세상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사이 큰 언니는 새로운 꿈을 위해 대학을 자퇴했고, 작은 언니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이어갔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 큰 언니는 유명 국립예술 대학에 합격했고, 작은 언니는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인도 여행을 떠났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우리 세 명은 생김새만큼이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큰 언니는 예술 학교를 졸업해, 한 달 후면 네덜란드로 유학길에 오른다. 작은 언니는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고, 미국 간호사 시험과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한국에 남아서 글을 쓰는 목수가 되거나 사업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한 번은 엄마에게 물었다. 어쩜 한배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이렇게 다를 수 있냐고. 엄마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한 번 더 물었다. 이제 곧 있으면 언니들이 해외로 떠날 텐데 슬프지 않냐고. 엄마는 웃으며 대답했다. 슬프지 않다고. 각자의 삶을 잘 찾아가면 그만이라. 엄마의 답변을 들었던 그 날 이후, 내게도 무언가 책임감 같은 것이 생겼다. 언니들처럼 삶을 잘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엄마의 그 미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쯤에서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2012년 작 늑대 아이. 동경에서 평범한 대학 생활을 하던 하나는 학교에서 한 남성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비밀 가득한 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는 늑대와 인간의 피를 물려받은 늑대 인간이었다.

하나는 를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딸 아이 유키와 아들 아메를 출산하게 된다. 아메가 태어난 날, ‘는 아내에게 먹일 짐승을 사냥하다가 물에 빠져 죽게 된다. 그렇게 하나는 홀로 두 아이를 키우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늑대로 변하는 아이들 때문에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없었던 하나는, 유키와 아메를 데리고 먼 시골로 이사를 간다. 두 아이를 등에 업고 비가 새는 낡은 목조 주택을 고치고, 생전 해보지 않은 농사를 거듭 실패하면서도 하나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런 하나의 씩씩한 모습에 동네 주민들도 하나 둘 씩 마음을 열어간다. 몇 년이 지나, 활달한 성격의 유키는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 늑대로 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 유키와 아메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금세 적응한 유키와는 달리, 아메는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된다. 하나와 키가 맞먹을 때쯤 아메는 늑대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호소다

그렇게 갈등이 시작된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유키를 데리러 가려고 준비하던 하나는 아메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울부짖으며 산속으로 들어가 아메의 이름을 외쳐보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탈진한 채 쓰러진다. 늑대로 변한 아메는 엄마인 하나를 구조해 길가에 옮겨놓는데, 그제야 의식을 찾은 하나는 웃음을 지으며 온전히 아메를 자연으로 보내주게 된다. 유키는 중학생이 되어 기숙사로 떠나고 하나는 여전히 그 집에서 때때로 들려오는 아메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살아간다.

그날의 엄마와 하나의 웃음은 마치 예술의 찰나 같았다.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후회도 아쉬움도 없는 그런 미소였다. 가닿아 보지 못한 영역의 사랑을 해본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피와 살을 내어주고 열 달을 품어 눈물로 키워낸 자신의 자식을 기쁜 마음으로 보내줄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랑과 아픔이 있었을까.

이제는 나와 언니들이 부모님을 지켜야 한다. 어린 시절처럼 무한한 사랑을 기대하기엔 엄마와 아빠는 너무 늙어버렸다. 사랑하는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각자의 가지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힘을 내야 한다. 나는 그걸 성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언니들처럼 노력해서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사실, 두렵지만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영화

앞으로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얼마나 많은 경쟁에서 이겨야 각자의 위치에서 건재할 수 있을까. 유년 시절 잔잔한 냇물과 보리수나무 아래서 꿨던 꿈들은 정말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져버리고 만 것일까. 여전히 미지수지만, 어딘가에서 나와 아메를 미소로 지켜보고 있을 엄마와 하나를 위해서 단단해져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