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소리극 ‘옥이’와 작곡가 민소윤

2021-10-13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바리데기 신화를 다시 읽으며 무릎을 치고 기뻐했다. 맞아, 맞아! 바리공주의 스케일이 겨우 효도 따위에 그칠 리 없어. 바리의 무대는 우주요, 그녀의 적수는 운명이고, 그녀의 무기는 사랑이었다. 바리데기의 사랑은 자신을 버린 인간 모두를 구원하고 그 구원의 대가를 한 톨도 바라지 않는, 부피도 경계도 측정할 수 없는 가없는 사랑이다.” 정여울(문학평론가)

‘소리극 옥이’를 보면서, 바리공주를 생각했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정여울의 글이 겹쳐졌다. 옥이가 바리공주였다. 우주 운명 사랑이라는 세 개념이 하나가 되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옥이는 시각장애인이다. 전인옥은 시각장애인이다. 전인옥 배우가 옥이 역할을 맡았다. ‘소리극 옥이’(이하 ‘옥이’)는 장애인 극단 다빈나오의 대표작이다. ‘다 빈 마음으로 나오시오’에서 ‘다빈나오’란 극단 이름이 탄생되었다. ‘옥이’를 보면 비워지기도 되고, 또 채워지게도 된다. ‘옥이’는 세상의 차별과 부조리와 차별을 비워내고, 거기에 평등과 공존을 채워지게 한다.

“엄마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져야 하는 게 아닌가” 중환자실에 입원한 엄마가 걱정되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없는 하늘 아래’에서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 옥이의 심정이 잘 그려진다. 그러다가 옥이는 꿈을 꾼다. 여기서부터 바리데기 신화가 변형된다. ‘옥이’는 ‘바리데기’ 신화를 매우 잘 연결하다. 2017년부터 계속된 작품답게, 대본도 연출도 연기도 모두 만족스럽다.

극작은 이보람, 연출은 김지원, 작곡은 민소윤. 작품이 시작되면서, 대금 소리부터 들린다. 민소윤이 연주한다. 대금연주가로 출발해서 작곡가를 병행하고 있다. ‘옥이’의 음악을 담당한 민소윤을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대지도 않기, 그렇다고 움츠려들지도 않기.” 이건 아티스트로서의 민소윤의 삶의 자세처럼 받아들여진다. ’옥이’에는 이런 매우 적당한 수위의 노래와 음악이 있어서 작품이 정갈하고 품격있다.

민소윤은 창작국악그룹 ‘아나야’의 대표로 활동했다. (2006 ~ 2017) 아나야는 다른 창작국악그룹 또는 퓨전국악그룹과 다르게, 특히 ‘노래’에 방점을 두었다. 과거로부터 전해진 노래에 뿌리를 두지만, 또한 이 시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동시대성을 지녔다.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처음 열린 경연 ‘한국월드뮤직열전 – 소리프론티어’(2010년)에서 당당한 팀들을 제치고 ‘KB소리상’라는 최고의 영예를 획득한 팀이기도 하다. “묵은지 겉절이 콘서트”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냈고, ‘보성아리랑’ (2014년, 이용부 작사, 민소윤 작곡, 아나야 노래)을 만들어 알리기도 했다.

‘아나야’가 해체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민요에 뿌리를 둔 창작국악의 한 역사가 사라지는 게 되는 것이었다. 2018년 민소윤은 ‘노올량’으로 다시 돌아왔다. 정세화(플레이온 컴퍼니 대표)가 추진한 ‘섬아리랑 프로젝트’가 그 시발점이 되었다.

민소윤은 이 시대에도 아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아티스트다. 지난 20세기말에 ‘홀로아리랑’ 등을 만든 한 돌이 그런 역할을 했다면, 지금 21세기 초에는 ‘섬아리랑’을 만든 민소윤이 그런 역할을 이어 받았다. 정세화 – 민소윤 콤비는 ‘세대별 아리랑’(어린이, 청소년, 청년, 중년, 어르신)을 통해서 아리랑의 ‘동시대성’과 스펙트럼을 확산하고 있다.

‘옥이’에서의 노래에도 이런 아리랑과 같은 소박함과 진정성이 배어있다. 김용원(베이스) 최민지(해금과 노래), 고명진(타악), 강민규(피아노) 등 ‘노올량’을 통해서 ‘아리랑’을 함께 동인들이 작품을 빛내주고 있었다.

공연은 배리어프리로 진행한다. 나와 같은 세대에겐 마치 예전 ‘라디오 연속극’을 듣는 것 같은 즐거움도 느껴진다. 작품을 더욱더 섬세한 시각으로 보게 되고, 작품을 더욱더 상상하면서 보게 된다. 6명의 배우는 모두 살아있다. 나와 같은 시각에서 보면 모두 다 주인공이고, 그들은 모두 주어진 조건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선인(善人)이다. 모두 아픔과 장애를 지니고 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그들은 선인(選人)이다. 세상을 바꾸는데 앞장서는 역할을 해내는 선택 받은 사람이다.

‘옥이’를 보면, 장애와 아픔이 또 다른 극복과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걸 자연스레 알려주는 장면이 많다. 특히 트렌스젠더 은아(방기범)과 옥이(전인옥)의 만남이 그렇다. 은아가 운영하는 카페에 아이들을 돌을 던져서 창문이 깨졌기에, 은아는 생애 최초로 커피향에 끌려서 이 카페에 들어가게 된 설정이 단적으로 잘 말해준다.

대한민국 국립극장에서 장애인극단이 공연한 적이 있을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국민이다. 그간 국립극장은 비장애인들이 독점했다. 일 년에 한 차례일지라도, 장애인들의 극장이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2021년, ‘소리극 옥이’가 그런 좋은 출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