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이야기 63] 시간을 조율하는 박씨의 하루

정영신의 장터이야기 63

2023-02-14     정영신

 

2014

가스통 바슐라르는 순간의 미학이란

시간은 순간 안에 꽉 조여 있고, 두 개의 허무 사이에 매달려 있는 현실이다고 했다.

그런데 허무가 매달려 있다는 현실에서 60년 넘게, 혹은 40년이 넘게 구석진 장터에서

허무에 지쳐버린 고장 난 시계를 하루에 30여개를 고치는 아재가 있다.

 

2011

 

박씨의 손놀림을 지켜보노라면,

마치 순간 속으로 시간을 꽉 조여들게 하는 느낌이다.

너무 정밀한 손놀림이라 지켜보는 이가 숨을 멈춘다.

그 순간마저도 찰칵찰칵 시간이 말을 하는데도 사람들이 못들은 척 할 뿐이다.

그런데 지나가는 바람이 아는 듯, 잠시 시계 위에 멈추어 선다.

그야말로 짧은 순간이다.

 

2014

 

휴대전화가 나온 후 곳곳에 있던 시계방이 하나둘 사라지자

고장 난 시계를 고칠만한 곳이 없어,

()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가는 풍경이다.

()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과거에 멈추어 있는 곳이 많다.

그런데 시계 고치는 난전만은 옛날보다 요즘 많이 찾는다.

 

2014

 

옆에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사람이 많이 찾아오네요.” 라는 내 물음에

박씨아재가 건네는 말이다.

정직하게 해주니까 단골이 많아지지유.

홍보가 별건가유. 오로지 입소문 하나로 되는 거지유.

40여년이 훌쩍 넘다 보니께유, 믿고 오는 사람이 많아유.

장날이면 누가 보냈다며 찾아오는 맛에 홀려 나오게 되구먼유.”

 

2014

 

그 사이에 시계 고치는 박씨아재 손끝 사이로 바람 한웅큼 바르르 떨고 지나간다.

오일장이 움직이는 박물관인 듯, 시간을 조율하며 걸어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