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로(路)]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문화행정을 대한 초심은 무엇이었을까

2023-03-15     장석류 인천국립대 문화대학원 초빙교수·칼럼니스트
▲장석류

이어령 선생께서 세상을 떠난 지 1주기가 되었다. 얼마 전 국립중앙도서관 전시실에서 추모 1주기 특별전 <이어령의 序(서)>가 개막되기도 했다. 국문학자, 소설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육자로 남긴 많은 글에 비해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행정가로서 남긴 사유의 글은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가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을 때, 그 역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조직도 정책도 초심이 있다. 시대의 요구와 국가의 역할 사이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노력과 협력으로 문화예술 조직과 문화정책이 만들어진다. 이어령 전 장관의 흔적에서 문화예술을 만나는 행정 조직의 초심을 찾아보고 싶었다.

정부 단위 독립적인 문화부는 언제 생겼을까

이어령 선생께서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다면 그 시기는 언제였을까?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승만 정부 당시 내각이 구성되었을 때, 정부 행정은 문화예술 분야를 고려할 수 있었을까? 먹고 살기 힘든 시기 문화예술 분야는 정책의 우선순위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도 경제, 행정·안전, 외교·국방, 국토, 교육, 복지 등의 영역에 비해 문화는 주류 행정학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정부 단위로 독립적인 문화부는 대통령 직선제로 헌법이 개정된 1987년 이후 6공화국이 시작된 노태우 정부에서 1990년 1월 출범했다. X세대가 10대 후반과 20대를 지나는 시기였다. 1990년대 초반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왔고,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쥬라기 공원>은 문화가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자극을 주었던 시대였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산업화 시대를 지나, 민주화 시대와 함께 본격적으로 문화행정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어령 선생은 문화부 장관의 역할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취임 초기 한 인터뷰에서 선생은 “문화부나 문화부 장관이 앞서나갈 것이 아니라 문화가 앞서나가야 합니다. 있는 듯 없는 듯 뒷전에 숨어서 일하고 싶은 게 제 바람입니다. 마치 공기처럼, 느끼지는 못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게 문화부 장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국민이 문화부 장관의 이름도 모르게 되는 것이 우리 문화를 위해 훨씬 바람직하리라고 봅니다. (그 역할이) 꼭 맞으면 그 존재를 잊게 되는 허리띠 같은 것이 문화부 장관이란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1990)”라고 했다. 이어령 선생의 말을 들으면서, 노자의 도덕경이 생각났다. 도덕경 17장에서 노자는 리더의 급을 네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가장 훌륭한 리더는 ‘太上不知有之(태상부지유지)’, 있다는 것조차 모르게 하는 것이라 했다. 그 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받는 리더이고, 그 다음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리더이고, 끝으로는 업신여김을 당하고 욕을 먹는 리더라고 했다. 행정이 문화예술을 만났을 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애를 쓰는 리더들이 많다. 문화와 예술이 앞서나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앞서 나가려 하면서 도덕경에서 언급하는 네 번째 급인 ‘모지(侮之)’의 리더가 된다. ‘모(侮)’는 업신여긴다는 뜻으로 리더 같지 않은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앞에서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뒤에서 업신여김을 당한다는 의미이다. 

3불(不) 3가(可)의 원칙 : 이어령 선생의 문화행정지표 

행정이 문화예술을 만났을 때, 좋은 행정이란 무엇일까?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선생이 말한 문화행정 지표는 무엇이었을까? 선생은 3불(不), 3가(可)의 원칙을 강조했다. 3불(不)은 ‘문턱’ 없이 일하기, ‘생색’ 내지 않고 일하기, ‘사심’ 없이 일하기였다. 딱딱한 관용어 같은 ‘법과 원칙’, ‘공정과 형평’ 등의 언어가 아닌 쉽게 마음에 가 닿는 표현을 사용했다. 3불(不)은 문턱, 생색, 사심, 이 세 가지 없이 일하라는 의미이다. 행정이 문화예술을 만났을 때 말이다. 문턱이 높은 사람이 있다. 문화예술계 현장 사람들이 만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만나서 대화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 독불장군처럼 높게 문턱을 세워두고 위에서 내려보며 일을 하는 것이다. 행정인이 사용하는 예산은 내 돈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는 일에 ‘생색’을 낼 필요가 없다. ‘생색’은 보통 ‘사심’이 있을 때,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심’이 없다면 하는 일에 떳떳할 수 있고, 소신껏 일할 수 있다. 

3가(加)의 원칙은 마른 바위에 생명의 ‘이끼’ 입히기, 문화 우물터에 하나의 ‘두레박’ 놓기, 국민의 작은 심부름꾼 ‘부지깽이’ 되기였다. 30년 전 문화부가 출범했을 때, 당시 이어령 장관이 언급했던 문화행정 지표였다. 행정이 문화예술을 만났을 때의 역할과 태도라는 관점에서 지금 시점에서도 얘기해볼 수 있는 원칙이라고 생각된다. “문화라고 하는 건 정치·경제·사회 같은 바위와 싸워서 이길 수는 없어요. 그러나 그 딱딱한 바위를 덮는 이끼는 될 수 있지요.” 지금의 문화도시 사업을 도시에 문화의 ‘이끼’를 입히는 것이라고 바라볼 수 있다. “두레박은 우물가에 하나를 공용으로 놔주기만 하면 그다음에 오는 사람이 손쉽게 물을 떠먹을 수 있어요. 극장 하나 지어 놓으면 거기 와서 누구나 연극을 할 수 있어요.” 두레박은 공유재이다. 2023년 동시대에 필요한 두레박은 무엇일까, 어떻게 공유해 사용하면 좋을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부지깽이를 우습게 알지만, 부지깽이가 있어 장작불을 지필 수 있고 밥을 지을 수 있어요. 자기가 불타는 것이 아니라, 남을 불태워주는 추임새를 넣는 사람이 돼라, 공무원이 뭐냐, 너희 스스로 불이 되려 하지 마라, 너희가 밥이 되려 하지 마라, 밥 짓고 요리할 때 밑에서 자기를 그슬려가며 부지깽이처럼 봉사해라.” 부지깽이 역할은 문턱, 생색, 사심, 3불(不)의 가치와 연결되는 얘기이다. ‘부지깽이 원칙’은 한국판 문화행정의 ‘팔길이 원칙’이라 볼 수 있다. 이 원칙은 문화부만이 아니라, 전국에 있는 많은 문화예술기관 종사자들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봄이 시작되었다. 조직도 정책도 초심이 있다. 지나온 시간에서 나와 우리의 초심을 돌아보기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