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

SPACE HONGJEE 개관 기념 ‘한국 현대미술 5인展’

2010-02-17     박기훈 기자

한·중·일 3국의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SPACE HONGJEE(서울시 종로구 홍지동 63-1 소재)가 이번달 세검정홍지동언덕에 문을 열었다.


그 첫 번째 개관 기념전으로 22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한국 현대미술 5인展’ 이 펼쳐진다.

이번 전시는 ▲삼베와 같은 캔버스에 Umber Blue와 진한 암갈색의 번짐으로 19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을 대표해온 윤형근 ▲일본 모노하의 철학과 이론에 근간을 제시하며 생성과 소멸의 철학을 작품에 담아내는 이우환 ▲극사실적인 기법으로 영롱하게 그려진 물방울을 통하여 시간과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나타내는 김창열 ▲조각의 고정관념에 대하여 끊임없이 반발하며 조각의 재료가 가지는 물성 자체를 응시하는 심문섭 ▲비어 있거나 거칠게 지운듯한 배경에 단숨에 그은 힘찬 선과 ‘오리’, ‘배’, 등을 표현하여 다양한 명상에 잠기게 하는 이강소 등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5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강소 _ 김백균 Kim Baik-Gyun

이강소의 작품은 하이퍼텍스트(일반 문서나 텍스트는 사용자의 필요나 사고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계속 일정한 정보를 순차적으로 얻을 수 있지만, 하이퍼텍스트는 사용자가 연상하는 순서에 따라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처럼 상호작용하며 작가의 의식과 관객의 상상을 이어주는 미디어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동일한 작품 일지라도 관객의 경험이나 인식 정도의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관객의 경험과 인식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생의 작품은 열린 구조를 지닌 텍스트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상상의 여행을 한다. 그의 모티브로 자주 등장하는 배가 없어도 우리는 그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여러 이미지를 통해 기억을 더듬어 과거의 경험과 느낌을 회상하고, 연상하고, 의식을 종합하여 자유로운 정신적 상상의 새로운 세계로 떠난다.

선생의 작품을 열린 구조의 하이퍼텍스트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의 작품이 우리의 상상을 어느 곳으로 인도할지 예측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각자의 경험과 기억 회포懷抱에 따라 다른 방향을 지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선생 작업의 지향점이 크게 맑은 경계의 추구와 멀고 먼 형상 저편의 모호한 느낌에 대한 회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문섭 _ 앙리 프랑수아 드바이예 Henri-François Debailleux

심문섭은 재료의 선택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고, 그 자신이 계속해서 사용해왔던 재료들을 지칭하기 위한 형용사로서 ‘가난한’ 혹은 ‘절제된’ 등과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또한 항상 자신의 작업들이 놓이게 될 공간에 대해 언제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심문섭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더불어 자랐고, 자연과 아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래서 당연히 그는 간단하고 기초적인 재료들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자연적 질료에 이르기 위해 재료들의 본성을 탐구했다. 그리고 그가 근원 즉, 원래적 의미에서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면을 좋아하는 것도 무엇보다 덩어리로 잘려진 나무의 날것 그대로의 속성이나 물의 순수성에서 나오는 밀도와 힘을 위해서이다.

더 나아가 그 같은 요소들의 특유한 성질과 내재적인 힘을 위해서이다. 심문섭이 추구하는 것은 두 개 혹은 여러 개의 재료들이 병치되면서 탄생하는 만남이나 대화이다. 그의 작업은 어떤 대립적인 것들, 이를테면 단단한 것과 부드러운 것, 직선과 곡선, 수직선과 수평선, 자연(돌)과 산업(철판) 등이 접촉해서 만들어지는 긴장과 균형의 관계를 보여준다.

우리는 그의 작업이 드러나는 방식에서 이 모순의 놀이와 조화와 탐구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심문섭은 조각의 조형적인 면만이 아니라, 그 주변의 것들까지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각 작품의 형태, 그 존재 그리고 한 장소에서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택한 위치들은 작품이 이루어지고 있는 컨텍스트를 드러내기 위해 숙고된 것이며, 이로써 우리는 작품 주변의 공간과 작품이 그 주위 환경과 대화하는 방식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내면의 공간에서 진실한 것은 외면의 공간에서 훨씬 더 진실하다.

윤형근 _ 치바 시게오 CHIBA Shigeo

윤형근이 말하고자 한 것은 ‘자연’이 인간의 ‘미술’, ‘미술행위’를 훨씬 초월하고 있다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처절할 정도로 엄격한 자연, 그 ‘공간’에 필적하는 아니 대항하는 듯한 ‘공간’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이러한 문장의 배후에 깔려 있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기성의 ‘회화’는 전혀 그 의미를 상실한 것이 명백한 것이다.

첫 개인전으로부터 10년 정도는 그는 ‘엄버(Umber, 짙은 갈색)’와 ‘블루(Blue)’만으로 그려진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초기 시기였다. 한국 화단이 윤형근을 확실히 인정하고 ‘에꼴 드 서울’전에 초대한 때였다. 하지만 그 자신은 ‘회화가 아직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를 아직 확실히 인식하지 못했었다. 그는 ‘회화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분신과 같은 것’을 그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바로 이러한 점, 그가 ‘회화가 아닌 것’을 그리고 있는 것을 명료히 자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에게는 ‘작품’도 또한 본질적으로 하나의 ‘현상’인 것이다.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윤형근의 작품은 실체적 물질로 되어있지만 그 ‘존재 방식’은 구미의 작가들과 같은 것은 아니다. 자세히 관찰하면 윤형근의 ‘작품’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본래적 ‘형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창열 _ 피에르 레스타니 Pierre Restany

자신의 회화를 ‘별개의 장’, 우주적이고 자기유사적 원형原形의 장으로 삼음으로써 이 작가는 뛰어난 직관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말이 필요 없는, 따라서 국경이 없는 사상의 이상적 배경을 발견할 줄 알았고 그 속에서 그는 동양의 서예 문화의 형태적 요소를 객관화 시키면서 재통합한 것이다.

나로서는 그의 근작에서 한자체의 형태적 상징성에로의 복귀를 보아야 할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으며, 오히려 반대로 그 한자체의 의미론적 극복의 결정적 표시를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화가는 자신의 진실의 혁명을 이룩했다. 그는 그 물방울이 항상 별개의 것으로 머물러 있을 것임을 보여 주었고, 또 그 물방울이 그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고, 다만 사물의 본성과 몇 사람의 현인에게만 속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들 현인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 별개의 것을 보았고, 또한 그것을 사물의 본성 그 자체보다도 더 진실된 것으로써 보게 한 것이다. 그렇다.

김창열은 그 현인 중의 한 사람이거니와, 그의 회화가 나에게 일깨워주는 감정, 다시 말해서 나의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말들, 예컨대 아시지의 성聖 프란체스카라든가, 고대 일본의 하쿠닝잇슈의 말과 버금가는 지울 수 없는 감정에 대해 나는 크게 감명을 받고 있는 터이다.

이우환 _ 이일 Lee Il

그는 그가 그리려고 하는 그림에 대한 명확한 관념을 이미 가지고 있으며, 찍혀지는 점 하나하나가 그 관념의 구체적인 표현이 된다. 거기에서는 감정의 표출이라든가 우발적인 것은 전적으로 배제되어 있고 ‘시간의 리듬’이랄 수도 있는 정연한 지속성持續性이 있을 뿐이다. 처음에 짙게 찍혀진 점은 일정한 리듬에 따라 차츰 희미해지며 끝내는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점’과 ‘선’은 넓은 의미에서 ‘양식화樣式化’된 그림이다. 다시 말해서 흐트러짐이 없고 여분余分의 것이 없는, 그리고 어떤 규율에 따른 그림이라는 말이다. 이우환은 그 규율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일종의 ‘무양식無樣式’의 회화, 원점原点의 회화에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는 이미 그림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자신을 허虛의 상태에 놓고 자연스럽게 호흡하듯 붓을 그어간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그의 근작은 가장 ‘자연스러운’ 그림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우환의 이 자연스러움은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연’이라는 말을 쓰는 데 매우 조심스럽다. 흔히 생각하듯이 그는 무조건의 자연 예찬자도 아니며 또 무위자연無爲自然, 무념무상無念無想 등의 동양적 자연관을 자신의 회화 속에 담으려 하고 있지도 않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보다 더 체험적인 것이며, 인간의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은 인간 본연의 삶의 한 형태이다.

전시기간 : 2월 22일~ 3월 15일
문    의 : 전화 02-396-0510 / 팩스 02-396-0511 / E-mail hongji@g604.com

서울문화투데이 박기훈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