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와 같은 운명을 살고 있다 '평행이론'

2010-03-11     임고운 영화칼럼니스트

평행이론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100년의 세월을 두고 똑같은 운명을 살았던 링컨과 케네디의 실화이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영화같은 운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서로를 알지 못하고 시대도 다른 두 사람이 일정하게 같은 경험과 운명을 반복한다는 평행이론은 프랭크 조셉이라는 학자가 유명인들의 사례를 발표해 학회 최고상을 수상한  이미 검증받은  이론이기도 하다.

단어가 주는 느낌만으로도 무한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이기에 영화  평행이론에 대한 기대감은 자못 커질 수 밖에 없다.

시놉시스가  만점에 가까운 찬사를 받은 것도  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권호영감독의  소재 선택은 현명하고 탁월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 평행이론은  <부단히 노력 중>으로 끝나버렸다.  반전 이라는 결말에 지나치게 공을 들이다보니 줄거리의 흐름도 차단되고 주인공 주변인물들에 대한 분석도 의심만이 난무하다가 끝난 듯한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결말을 보고 있자니 연상되는 두 영화가 있는데 2004년에 개봉되었던 조니뎁 주연의 영화 <secret window>와  송일권 감독 감우성주연의 영화 <거미숲>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영화 모두 한 남자의 비현실적인 기억과 자기분열증에 관한 소재로 배신한 아내를 죽인 범인이 자기자신이었음을 환영처럼 감지하게 된다.

평행이론에서 주인공 석현이  30년전  최연소 부장판사였던 한상준이 아내를 살해했듯이 자신의 아내인  윤경을 무참하게 죽인 사람이 바로 자기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되는데 아내가 매일반 건네주었던 약이 수면제와 신경안정제였음을 알고는 제어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평행이론에 관한 영화보다는 <secret window>나  <거미숲>처럼 자기분열증을 다룬 영화에 더 가깝다. 이 두영화의 결말의 반전은 친절한 빌미를 자주 제공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문제를 분석하고 풀어가는 재미를 놓치게 한 아쉬움이 있다.

반면, 영화 <평행이론>은 충격적 반전이라는 점에서는 확실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것처럼  결말에   많은 공을 들이다 보니  마치 반전을 위해 영화가 만들어진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예감할 수 있는 단서가 전무한 상태에서 느닷없는 건너뛰기식의 반전은 충격적이라고하기엔 너무나 무모하다.

워커홀릭인 남편 석현에게 수면제를 타 주었던 아내가 석현의 비서와 밀애를 즐기기 위해 거실 지하에침실을 꾸민다는 설정보다는 아내를 묻은 마당에 아무렇지 않게 옥수수를 심어먹는 <secret window>의 조니뎁의 끔찍하면서도 기괴하고 코믹스럽기까지한 캐릭터ㅡ물론 조니뎁의 완벽한 연기탓이지만ㅡ가 영화적인 상상면에서 조금 더 유연함이 있다. 물론 상상하기는 싫지만...

이혼하기 직전의 이름없는 작가의 기괴한 상상이 빚어낸 이 희대의 살인극과는 달리 영화 ,<평행이론>은 석현의 분열증적인 증세가 많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한꺼번에 기억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다.지진희를 비롯한 이종혁, 하정우의 뛰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운명은 존재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운명론자가 되어 평행이론을 뒤쫓으며 살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절대긍정의 마인드로 살고 있는 필자에게 평행이론은< 놀랍도록 닮은 우연의 법칙>일뿐이다. 안타깝게도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평행이론>에  너무 휘말려 버렸다. 아니, 그럴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