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우리문화

2010-04-23     유인철/유소아청소년과원장

 

 여행 가이드북 출판사인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은 지난해 10월 서울을 세계 최악의 도시 중 한곳이라고 발표했다. ‘당신이 정말 싫어하는 도시’라는 편집자의 글에서, 범죄와 오염이 심각하다고 평가를 받은 미국의 디트로이트가 1위, 혼란스럽고 추한 도시라는 가나의 아크라에 이어 서울이 3위에 올랐다.

 

  ‘제 멋대로 뻗어 있는 무질서한 도로, 소비에트 식으로 올라가 있는 끝없는 아파트들, 심각한 대기오염, 영혼도 마음도 없는 단조로운 도시’라는 것이 선정이유라 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신빙성이 없고 객관성이 결여된 평가라 반박하며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중 84%가 만족한다는 조사 자료를 내놨다.

  남산에 있는 서울타워에 올라보자. 아이들이 흥분하여 떠드는 소리와 더불어 “야 진짜 아파트 많다”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흙먼지를 섞어 놓은 듯 매연으로 뒤덮인 서울의 하늘이 보이지 않는가?

  2008년 5월 일본 옻 예술의 보고(寶庫)이자 연회장인 메구로가조엔(目黑雅敍園)에서는 세이코사의 명품시계 발표회가 있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내는 나전칠기로 장식된 손목시계의 값은 자그마치 5억 원. 더 놀라운 것은 장식을 담당한 이가 한국인 전용복(全龍福.57)장인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나전 기술이 일본에서 빛을 발하고 있던 그때 우리는 숭례문에 모여 있었다. 3개월 전에 화재로 무너진 국보1호를 놓고 관계부처를 비난하고, 제사를 지낸다 굿을 한다 부산을 떨었다. 서울에서는 한국문화가 불타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도쿄에서는 한국문화의 영혼이 꽃핀 것이다.

  론리 플래닛의 평가를 우리가 달라지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오천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고 오백년간의 수도였다고 하는 서울에서 그 흔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나절 동안 고궁을 보고 나면 그 다음은? 일제 탓 그만하자. 잘살기 위해 무조건 달리다 보니 그리 됐다는 핑계도 대지 말자. 멋없이 높기만 하다고 건물을 헐어 버릴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하면 된다. 박물관에 갇힌 박제된 문화가 아니라 살아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외국 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멋진 풍경과 오래된 유적지, 맛있는 음식들은 기억에서 흐릿해진지 오래다. 하지만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그 곳 주민들과 같이 어울렸던 것은 그렇지 않다. 스페인 집시 마을의 플라멩코, 일본의 료간(旅館), 피지와 뉴질랜드 민속 마을 등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관광수입을 위해 카지노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주민들의 문화혜택을 위한다며 지자체 마다 공연장 건설이 붐을 이룬다. 하지만 정작 우리 민족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전통 문화예술에는 무관심하다. 공공행사의 구색 맞추기나 모두들 잠든 새벽시간을 메우는 프로에 이용될 뿐이다. 무용, 국악, 농악, 곡예, 탈놀이 등 우리 전통문화 예술의 한 흥 멋 태를 한자리에서 맘껏 보여주는 전용무대를 만들자.

  돈도 벌고, 국민에게는 교육의 장이 되고, 관광객에게는 놀라운 감동을 주고, 전통문화예술인에게는 끼를 발휘할 수 있는 일석다조(一石多鳥)의 일이 아니겠는가? 관계 당국과 국민들의 관심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