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민족학박물관’인가

다문화사회로 가는 길목서 길잡이 역할 해줄 민족학박물관 필요

2010-06-24     정지선 기자

[서울문화투데이=정지선 기자]거리를 오가며 외국인들을 만나고 눈인사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관광 뿐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 온 사람도 있으며, 학업을 위해 한국 대학을 찾는 이들도 많다. ‘단일민족’이라는 말도 이젠 옛 말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도 외국인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는 커녕 피부색과 언어만 달라도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에는 아직 존재치 않는 ‘민족학박물관’의 필요성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본지에서는  지난 14일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신광섭)이 개최한 ‘세계 민족학박물관장 초청 국제심포지엄’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민족학박물관의 필요성과 다문화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해 다뤄봤다.

민족학박물관의 과거서 엿본 ‘미래’

우리나라는 아직 갖고 있지 않지만 유럽을 포함해 나라마다 적어도 하나씩은 갖고 있는 박물관이 바로 민족학박물관이다. 유럽의 민족학박물관들은 원래 식민지의 보물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으로 설립됐다. 지금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성격도 변해 대부분의 민족학박물관은  학술적인 공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티븐 앵겔스만 라이덴 민족학박물관(네덜란드) 관장은 미래를 위해 민족학박물관이 가져야 할 중요한 임무에 대해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선언과 같이 문화다양성을 기리는 것” 이라며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선언에 의하면, 생물다양성이 자연에 필요한 것과 같이 문화다양성은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한편, 유리 치스토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상트페테르부르크 표트르대제 인류학 · 민족학박물관 관장은 초기 유럽 민족학박물관의 생성을 유럽인들의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그는 “유럽인들의 활발한 탐험과 이를 통한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에 기반했다”며 “유럽인들이 그들의 문화와 달리 이질적인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아시아 전통문화와 사람에 대한 동경이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다.

19세기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유럽의 민족학박물관들은 국제무역의 거점으로 발달한 도시를  중심으로 세워졌다. 이는 시대가 흐름에 따라 박물관의 역할이 달라졌고, 그 당시의 박물관은 자신들의 경제적인 번영을 외부에 자랑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여겼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과 바젤,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등의 민족학박물관이 설립된 배경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렇듯 민족학박물관의 설립은 대부분의 국가재산으로 지어지는 박물관이 그렇듯이 우수한 민족임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실감, 더 많은 관람객을 확보하고 소통하기 위해 살아있는 박물관이 되기 위한  방법론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새 패러다임, 살아있는 박물관

독일 함부르크 박물관은 설립 직후 빠른 외형적인 성장을 이뤘다. 초창기부터 유럽문화와 독일 고유의 문화 산물을 지속적으로 수집해오면서 20만여 점의 전시물과 40만여 점의 사진,  10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한 민족학 서고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람을 금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은 현실의 풍부한 생기를 따라가긴 역부족이었다. 함부르크 박물관으로선 변화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물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박물관이 갖고 있는 자산이 가진 문화, 예술적 가치에 대한 독일 사회의 인식이 충분하다고 판단, 새로운 슬로건 아래 도전을 감행했다.

블프 퀘프케 관장은 “박물관의 슬로건을 ‘모든 문화를 위한 하나의 건물’이라 정하고, 새로운 관람객층 즉, 이민자들과 같이 비교적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을 고려해 접근방식을 바꿔나갔다”며 “이는 일반적으로 박물관 텍스트들이 고등교육의 배경 없인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기획한 것으로, 문맹인 사람조차 관람객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변화를 꾀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서는 많은 이주민 공동체들과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 전시유물들과 비슷한 도구를 이용해 요리하거나 음악을 연주하면서 전시물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진행했다.

박물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시도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 인디언박물관(이하 인디언박물관)에서도 진행, 지난 15년간 새 패러다임을 개발했다. 인디언박물관이 지금의 살아있는 박물관의 모습을 갖춘 것은 박물관 운영 초기부터 뚜렷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선 전시 기획 단계부터 미주 원주민공동체들을 참여시켜 전시물 자체보다는 그들의 아이디어에 중점을 뒀다.

긴 준비과정을 거쳐 2004년 개관했을 때, 로저 케네디 스미스소니언 국립 미국역사박물관 명예관장은 인디언박물관의 철학과 접근방식에 대해 “‘어떻게’ 만큼이나 중요한 질문은 ‘왜’일 것이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며 “미주 원주민들의 세계관은 일반적인 서구의 문화 패러다임과 간극이 존재하는데, 미주 원주민들의 시각에서 박물관에 전시된 하나의 사물은 그것의 창조를 이끌어낸 일련의 과정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순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박물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전시된 유물 그 자체보다는 그 유물이 갖고 있는 이야기와 유물에 접근하는 방식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한국도 민족학박물관이 필요하다?!

시대가 원하는 박물관이 따로 존재할까. 물론 그렇다. 지금은 21세기, 우리사회에 필요한 박물관은 다양한 문화를 담을 수 있는 박물관이다. 21세기 들어서면서 한국사회는 급격하게  다문화사회로 변화하고 있지만 그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스티븐 앵겔스만 라이덴 민족학박물관 관장은 한국의 민족학박물관 설립 필요성에 대해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한국의 인구가 다른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로 인해 점차 다양해지면서 다른 문화를 인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이 세계에서 산업국가로 부상하면서 다문화 세계의 인구를 어떻게 대면할 것인지에 알아야하기 때문”이라고 논했다.

그렇다. 현재 우리사회는 다문화사회로 가기 위한 길목에 이미 들어섰으며, 그들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이 필요하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교육장으로서의  박물관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교육받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야한다고 말한다. “원래 교육이란 쌍방소통을 전제로 하는 사회적 현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전시품을 감상만 하고 지나가도록 만들어 놓은 곳은 교육장으로서는 영점”이라며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질문도 할 수 있고, 전시된 것들을 만질 수도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전시된 것과 유사한 것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됨으로써 교육장으로서의 박물관은 제대로 된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아직도 많은 박물관들이 교육장을 표방하면서도 범하고 있는 오류 중 하나다.

대부분의 박물관이 범하는 또 다른 오류는 과거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흔히 과거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나아가 미래로 나아갈 방향성도 제시한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박물관에서도 충분히 미래를 엿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전경수 교수는  우리 스스로는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남의 역사와 비교도 해보고, 남의 역사에 비춰 우리의 것들을 바라보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인간의 삶을 이해하려는 순리를 따라가는 박물관이라면, 최소한 우리의 것에 관심을 갖는 것만큼 남의 것에 대한 알고 싶은 욕구도 해결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면서 “더욱이 ‘세계화’라는 국가적인 과제를 생각할 때, 한국사회에서 박물관의 세계화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민족학박물관의 설립은 이제 시대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이제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누구를 대상으로 할 것이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민족학박물관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 말이다. 철저하게 밑그림을 그린 뒤 시작해야 다문화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로서의 민족학박물관을 만들 수 있다. 또 그래야 제 역할을 다해낼 수 있다.

지난 14일 외국 주요 민족학박물관 관장 및 전문가를 초청해 국제 심포지엄을 가졌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독일의 블프 퀘프케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관장은 ‘현대 유럽 수도의 민족학박물관이 직면한 어려움과 해결책’에 대해 발표하면서 민족학박물관의 역할에 대해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본지에서는 블프 퀘프케 관장을 만나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이 독일 다문화사회에 어떻게 기여했으며, 한국의 경우 민족학박물관 설립에 앞서 어떤 고민이 선행돼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함부르크의 이주민 사회 비중이 전체인구의 20%를 차지, 민족학박물관에서는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을 고려해 접근방식을 바꿨다고 들었다. 박물관에 가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관람객으로 유치했는지 그 방법이 궁금하다.

그들을 끌어들이기 이전에 박물관에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그러기 위해선 소통이 중요한데, 아무하고와 소통한 게 아니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행사를 준비할 때도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지 않으면 형식적인 행사가 될 수밖에 없다. 18년 전 관장을 맡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인들이 주최가 된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우리 박물관은 재정적인 지원만 담당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공연도 보여주고 김치 등 음식을 대접하면서 즐거워보였지만 그 행사가 형식적이라서 일까. 정작  독일인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행사를 통해 일방적인 지원보다는 실제적인 경험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은 이주민공동체들과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 그들의  문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떤 식으로 제공하고 있나.

전시기획단계부터 이주민들을 참여시킴으로써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시킨다. 우리 박물관 내 아프리카관을 만들 때 역시 그들의 의견을 최우선적으로 반영했는데, 기획단계 뿐 아니라 전 단계를 협력 하에 진행했다. 우리 박물관에서는 현재 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전시를 추진 중이다. 상설전은 아니고 기획전을 준비 중이며, 3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상설전이 아닌 기획전으로 추진하는 것은 관람객들이 금방 실증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만일 한국에 민족학박물관이 생긴다면, 다른 나라의 박물관과는 다른 성격을 지니게되리라 생각된다. 설립에 앞서 어떤 고민부터 시작해야하는가.

민족학박물관을 세우기에 앞서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왜 박물관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다. 또한 누가 혜택을 받을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새 박물관을 세우기 전에 기존의 박물관에서 다문화를 다룰 순 없는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는 박물관 자체에서는 다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정부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박물관이 소통이나 교육의 장 보단 보물창고로서의 인식이 강하다. 이런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물론 박물관은 보물창고로서의 인식이 강하다. 이는 대부분의 박물관이 아직도 유물 중심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유물보단 유물이 가진 의미에 대해 표현해야 한다. 방식은 스토리텔링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물 제작에 얽힌 사연을 전시를 통해 이야기하면서 유물이 말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우리 박물관에 나이든 한 할머니가 자신의 재봉틀을 기증하고 싶다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 재봉틀 자체만 놓고 본다면 그냥 옷을 만드는 도구에 그치지만 그 할머니의 재봉틀은 사연을 갖고 있었다. 할머니는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가면서 한 손에는 봇짐 하나, 다른 한 손은 재봉틀을 챙겼던 것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재봉틀이 할머니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어떤 역경을 거쳤는지 다양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 재봉틀은 아직도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중요한건 유물보다 유물이 가진 이야기이다.

박물관이 다른 여러 문화의 사람들을 위한 모임 장소로서 변화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들었는데, 박물관은 어떤 공간이라고 생각하는가.

박물관은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이자 메시지를 전달하는 곳이다. 한 예를 들겠다.  독일 이민자사회에서 사건이 발생했는데, 독일경찰들은 그들에 대한 이해나 인식이 거의 전무했다. 우린 경찰청에 직접 찾아갔고, 다문화사회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을 설득해 경찰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가졌다. 결과와 반응은 물론 좋았다. 다문화사회에 대한 인식개선의 첫 걸음은 그들에 대한 이해라는 점을 다시금 실감했다.

인터뷰/ 정리 정지선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