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다시보는 놓친명화 - <하얀 리본>

폭력,불신,거짓말,죄에 대한 은유

2010-10-16     황현옥/영화칼럼니스트

 

서양 역사에서 중세기를 암흑기라 부른다. 인간은 없고 신이 지배했던 신중심 사회였기 때문이다. 국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지배자의 신성함과 신민에게 종교적 엄격함이 요구되었다.

그런 전통에서 나오는 잘못된 관습과 억압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수백년의 노력이 서양 근대 철학의 역사이며 인간성 회복 운동이다.

하지만 어느 사회나 아직도 신에게 종속된 삶을 살기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신에게서 삶의 위안과  축복을 원하며 자신이 갈길을 제시받고 싶어한다.

인간 본연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자신의 자녀나 타인에게 종교적 잣대를 강요하는데서 비극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얀 리본>은 종교적 순수함을 추구하는 1913-14년 독일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폭력, 불신, 거짓말, 죄에 관한 은유와 모호함이 뒤섞인 영화이다. 2009년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하얀 리본>은 오스트리아 감독 미카엘 하네카의 작품이다. 
 목사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순수와 순결의 이미지로 하얀 리본을 팔에 묶는 훈육 방법을 쓴다. 그 자녀들이 저지른 죄와 거짓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지만 극의 후반부에 어렴풋한 추측과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억압에 대한 상징성이 과제로 남는다.
 

2시간22분이라는 긴 시간 흑백으로 보는 <하얀 리본>은 예술 영화라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책 읽어주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화가 한 장면 넘어갈때마다 책의 한페이지를 넘기듯 범인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물론 누가 가해자인지 불명확하다. 1차 세계 대전 직전, 한마을의 남작부부와 그 자녀, 목사와 그 자녀, 의사와 자녀들, 옆집 산파와 장애 아들,아내를 잃은 농부와 그 자녀들을 학교 선생님의 회상 나레이션을 통해 번갈아 이야기를 풀어간다. 각 계급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위선적 삶이 전쟁이란 비극적 변화 앞에 놓여져 있다. 많은 것들이 애매하고 모호하게 이들 마을속에 남아있다는 것이 영화의 전부이다.
 

필자는 2002년 정도에 우연히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2002)와 다름>라는 영화를 보게 된다. 2001년 깐느 최초로 심사위원 대상과 남,녀 주연상을 휩쓴 영화라서 선택한 것이었는데 <하얀 리본>을 만든 미카엘 하네카 감독이었다. 당시<피아니스트>영화는 충격이었다.

피아니스트면서 엄격한 피아노 강사인 에리카가 보여주는 기괴한 성적 취향과 제자 클레메를 향한 도발적 행동 때문이었다. 슈베르트를 연주하는 공대생을 향해 마흔살 독신 여선생의 변태같은 행동은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인간의 억압과 분노에 대한 낙서처럼 느껴졌었다. 작년 <하얀 리본>에게 황금종료상을 준칸느 영화제 심사위원장 프랑스 출신 여배우는 이때 <피아니스트> 여주인공 에리카를 연기했던 이사벨 위페르였고 그때의 은혜를 기쁜 마음으로 <하얀 리본>으로 갚았다.

2009,오스트리아,프랑스,독일,미카엘 하네카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