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켓 잡지 발행인과 함께 모호한 현대미술 잡기

한국 미술의 기폭제가 될,‘World stars in contemporary art’展

2010-12-20     이은진 기자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진 기자] ‘동시대의, 현대의’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예술, contemporary art는 뭘 의미하는 걸까? 컨템퍼러리 아트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현재까지 현시점의 예술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한마디로 현대미술이라고 불리지만, 그 개념은 모호하다. 아직 정립되지 않은 예술이기에 일반 사람들은 그 실체에 회의를 갖기 쉽다.

그런 현 시대의 미술을 지난 25년간 지켜온 사람이 있다. 바로 잡지<Parkett>을 발행한 ‘디터 폰 그라펜리드(Dieter von Graffenried)’이다. 파켓은 1984년에 창간되어 동시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현대 미술 작가들과 함께 잡지 편집에서 작품제작까지 공동 작업을 하는 독특한 프로세스를 고수한다.

이로써 탄생한 수많은 세계 최고의 작가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앤디 워홀, 루이즈 부르주아부터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게오르그 바젤리츠, 신디 셔먼, 로버트 로젠버그, 댄 그레이엄, 길버트와 조지, 토마스 슈트루드… 등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작가들의 역사가 파켓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파켓의 현 역사, 디터 폰 그라펜리드의 ‘현대 미술의 작은 도서관’이 전시된 예술의 전당에서, 지난 17일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얗게 뒤 덮인 눈길을 걸어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으로 향했다. 2010년을 보내는 게 아쉽기라도 한 걸까, 예술의 전당을 대표하는 큰 건물 외벽에는 굵직굵직한 전시를 자랑하는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이를 뒤로 하고 들어간 간담회 장에는 삼삼오오 모여 앉은 언론 관계자들과 가운데에 외국인 특유의 제스처를 취하며 말을 하고 있는 그가 보였다.

   

▲기자 간담회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디터 폰 그라펜리드(Dieter von raffenried)’ 

“…이 전시에서 중요한 점은 다양성과 작품, 아이디어입니다. 작가와 협업을 통해서 이를 보여줌으로 3~4개 작가의 텍스트도 함께 싣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에게 아티스트의 작품을 만나게 해 주지요. 처음엔 뉴욕에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매년 8~9개 하는 프로젝트들이 더해져서 현재 200개 프로젝트가 만들어 졌어요. 로마에서 시작해서 최근에는 일본까지 진행돼 왔어요.”

그는 파켓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해 주고, 현재 아시아 투어를 하게 된 경위까지 들려줬다. 끊어질 줄 모르는 긴 이야기를 받아 적느라 열심인 통역과 함께 기자들은 그의 이야기를 놓칠 세라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잘 알려진 작가로 앤디워홀의 사진이 전시돼 있는데, 사람의 뼈로 돼 있는 사진들은 앤디워홀이 죽기 바로 직전에 받았어요. 그는 죽기 직전에 말했어요. ‘인생은 둥그런 원과 같아서 계속 돌아가고 작품을 통해서 인생도 돌아간다.’고 말이죠.”

둥그런 원처럼 돌아가는 인생이라. 소비되는 작품을 지향하는 앤디워홀도 불교의 ‘윤회사상’을 알고 있었던 걸까? 그의 작품 <파켓을 위한 사진>이 ‘우리의 삶이 여기에서 저기로 혹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돌아가며 거듭한다는 것’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일하게 4장이 반복되는 X 레이에 남겨진 해골 뼈들. 이것은 일렬로 선 해골 뼈의 운명이 누구나에게 반복된다는 섬뜩함을 보여준다. 반복되는 운명, 그리고 돌아가는 인생. 누구나 알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억겁의 세월이 걸린다는 삶의 법칙을, 앤디워홀은 죽기 전에 한 마디 말과 함께 파켓에 기증한 작품으로 남겨 놓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디터 폰 그라펜리드(Dieter von Graffenried)’는 말을 이어갔다.

“이번 쇼에서는 도록이 정말 중요해요. 465작 중에서 풀 컬러로 된 200명의 작가와 작품이 들어있습니다. 이 많은 수가 들어간 첫 번째 도록이라 생각하기에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 기회를 제공해 준 예술의 전당에 감사하고, 한국의 관객들이 쇼를 즐기고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간단한 파켓 전시에 대한 소개를 마치자, 박수소리와 함께 그는 더 질문할 사항에 대해 물어보았다. 컨템퍼러리 아트 전시의 이력을 볼 때 외국에서 시작해 이제 아시아 투어를 막 시작한 때였다. 아시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하자, 그는 '한국미술에 대해서는 감히 말할 수 없다'며 '앞으로도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고 하며 말을 비켜 나갔다.

사람들에게 컨템퍼러리 아트를 열심히 이해시키려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현대미술을 조금 더 정립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아직까지 근대 이전의 예술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에선 특히나 더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미술하면 특정 작가, 특정 작품이라는 고정화 된 대상이 미술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컨템퍼러리로 정의되는 현대미술은 일상 소비생활에서의 이미지 등이 미술의 대상이다. 누구나 이미지 속에서 살고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미술전체가 확 바뀌어가는 시대적 흐름, 이걸 찾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유명 미술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참여하고 거기서 이미지를 창출하고 시행해야 해요. 이걸 컨템퍼러리 아트라고 지칭했을 때,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이런 미술의 흐름이 실현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겁니다.”라는 전시 기획을 총괄한 채홍기 큐레이터의 친절한 설명이 전시 관람을 부추겼다.

질의 시간이 끝나고 다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업실에서>, <놀이터에서>, <야외에서>, <옷장에서>, <도시에서> 등 소 주제별로 연결되는 방들이 감각적인 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입구를 들어가자, 포토리얼리즘의 창시자 척 클로즈의 <자화상>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채홍기 큐레이터는 핵심적인 작품들을 몇몇 개 골라서 간략히 소개해 주었다. 크리스찬 마클레이의 <내 나쁜 귀>는 사람들에게 실물 크기의 청동 귀를 보게 해줬다.

의아하면서도 또 이해되는 바로 이런 게 현대미술의 실체인 것이다. 그 외에도 햇사과 같은 새파란 사과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카타리나 프릿슈의 <사과>. 그 옆에 거대한 노란 풍선은 제프쿤스의 <부풀어 오른 풍선 꽃>이다. 옷장에서와 도시에서의 방을 지나 마지막 방에는 파켓의 역사가 기록된 공간이었다.

   
▲카타리나 프릿슈, <사과>, 2010, 레진 캐스트/손으로마무리

파켓 잡지가 1권부터 현재까지 발행된 실물이 놓여 있었다. 파켓 잡지는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였지만, 알찬 겉표지에서부터 파켓의 역사가 녹아 있는 듯 보였다. 보는 내내 큐레이터는 ‘흐름을 느끼세요.’를 간간히 외쳤다. 잡혀지지 않는 실체, 그 자체를 인정한다면 더 흥미로운 볼거리가 될 것이다. 허기진 배를 쥐고 식당으로 내려가며 현대미술이란 그 연기 같은 것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