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에게 열려있는 시민 친화적 공연장
주민에게 열려있는 시민 친화적 공연장
  • 임연철 / 국립극장장
  • 승인 2011.04.2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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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니시 문화창조센터는 국내 지역문화공간의 롤모델

가니(可兒)시는 시의 이름부터 생소하다. 나고야(名古屋)시에서 택시로 40분, 전철로 30분 거리에 있는 인구 10만 명의 깨끗한 소도시이다.
일본의 다른 도시들처럼 가니시도  공연·전시 공간을 갖고 있는데 시설의 이름이 특이하게도‘가니시문화창조센터’이다. 인구 10만의 도시인데다 문화예술 관련 대학도, 전문 단체도 없는 상태에서‘문화창조’센터를 갖고 있는 것 자체가 범상치 않았다.

▲에이 기세이 가니시 문화창조센터 관장 겸 극장총감독(왼쪽)과 필자

지난 2월 초 문화창조센터에 다다르자 학생들을 싣고 온 버스가 여러 대 보이고 물과 잔디가 잘 어울린 광장이 보였다. 이 센터가 일본에서 유명한 것은‘에이 기세이(衛 紀生)’라는 문화시설운영 철학이 뚜렷한 예술경영자가 센터의 관장 겸 극장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도쿄에서 예술경영자로 활동했던 에이 관장은 도쿄에서 이뤄지는 클래식 음악이나 순수 예술활동의 과도한 상업화가 싫어 자신의 예술관을 보다 합리적으로 펼칠 수 있는 곳을 찾다 마침 가니시의 문화·예술 시설 운영 방침과 뜻이 맞아 이곳에 오게 됐다.

‘문화창조센터’라는 이름도 2002년 개관하면서 에이 관장이 직접 결정했다. 자체 예술단체도 없으면서‘문화창조’센터라고 한 것은 문화·예술이 프로들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창조할 수 있다는 에이 관장의 철학 때문이다. 창조물의 결과를 놓고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창조에 참여하고 하다보면 그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의 센터 운영방침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필자가 방문하는 동안 2개의 중요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하나는 가니시립중학교의 전교음악회가‘향창의지(響創意志)’즉‘소리를 창조하는 의지’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었다. 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핸드 벨 연주로 시작된 음악회는 반별로 30명 안 밖의 남녀 중학생들이 갈고 닦은 솜씨를 겨뤘다.

30여분 지켜본 결과 참가 학생들이 많은 연습을 한 듯 지휘 선생님에 맞춰 멋진 화음을 들려줬다. 프로그램에는 1~3학년 28개 학급의 노래 제목과 지휘자 반주자가 소개되어있다.
 국내에서도 교내 합창대회는 많이 하겠지만 최신 설비의 1000석짜리 대극장에서 프로합창단처럼 대접을 받으며 기량을 겨루는 학생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기초 자치단체에 불과한 소도시의 공연장이 서울의 국립극장이나 예술의전당 내부 수준과 비견될 만큼 훌륭한데다 이들 시설을 지역 학교가 필요할 때 마다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러웠던 것이다. 에이 관장은 사전협의를 거쳐 센터의 기획공연과 관계없으면 학교나 지역사회 단체에 대관해 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역사회 주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연장은 주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좋은 공연을 기획해 보여주고 주민 스스로가 참여하는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문화창조’센터가 될 수 있다고 부연해서 설명했다.

중학생들의 합창대회가 진행되는 대극장 왼편에는 100여명의 노인들이 발표회를 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확인해보니 <가니시고령자대학(可兒市高齡者大學) 민요발표회> 였다.
 노인대학에서 일본 민요를 익힌 46명의 어르신들이 일본 민요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정장 차림의 남녀 노인들이 정성껏 부르는 모습에서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 노인들의 인생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우리 국립극장에서도 판소리 배우기 교실이 있는데 지역 소도시에서 일본 민요를 배워 공연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국내 소도시들도 우리 소리 보급 교육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당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에이 관장은 지역주민들이 문화창조센터 무대에 서도록 하는 사업 이외에 더 중요한 사업은 수십 개의 전문 연극인, 단체의 공연이라고 밝혔다. 주로 도쿄의 가부키를 비롯해, 비엔나의 교향악단 등이 포함된 수십 회의 공연을 통해 주민에게 문화향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니시는 소도시인 만큼 시민들의 음악감상능력이 높지 않아 음악회에서 연주나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매너 교육도 실시 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제목이『클래식?』인 손바닥만한 소책자. 주민교육을 위해 16쪽 분량으로 만들었는데 마지막 페이지에는 ‘감상매너’8가지를 적어 놓고 있다.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잡음을 내지 말라는 것으로 휴대전화, 알람시계, 방울, 종이 꾸러미, 꽃다발 등을 조심하도록 하고 있다. 기침은 악장과 악장 사이에 할 수 있지만 괜히 습관적으로 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눈에 띈다.

이 밖에 중간입장, 모자, 어린이 입장문제도 다루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박수를 칠 때에 대한 안내. 남들을 따라 하라고 안내하며 곡을 모를 경우, 먼저 박수치지 말라고 권유하고 있다.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일본인의 철저함이‘감상매너’와 같은 소책자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유명 공연도 없는 소도시 공연센터를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는 국내에도 300여개의 지방 국공립 공연장들이 있는데 일부는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는 지역 공동체 문화예술의‘센터’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 소도시 문화공간들도 시·군·구 학교에 열린 공연장이 되어야 하고 어느 연령대라도 이용할 수 있는 시민 친화적 공간이 되어야 주민들도 세금 내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가니시 문화창조센터’는 여러 가지로 국내 지역문화공간에 시사하는 점이 많고 롤모델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