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약속...반값 등록금 실현여부 주목한다
대통령의 약속...반값 등록금 실현여부 주목한다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1.06.0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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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차별없는 사회...대학간판 없어도 당당한 세상

한 가난한 청년이 있었다. 지방에서 상고를 나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그는 늘 돈이 부족했다. 어느 날 필요한 책을 구하기 위해 청계천 헌 책방에 갔다. 그런데  책값이 모자랐다. 필요한 책을 찾긴 했지만 구입할 수가 없었다. 청년은 그저 책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자, 책방 주인이 눈치를 챘다.
‘아하! 저 학생 돈이 없구나.’
“학생, 책값이 없으면 있는 대로만 주고 가져가요. 나중에 생기면 갖다 주시구려”
“정말 그래도 됩니까?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책을 손에 든 청년은 기쁨에 넘쳤다. 그 길로 청계천에서 동대문을 거쳐 대학로 혜화로타리까지 뛰었다. 너무 좋은 나머지 정신없이 뛰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야기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 선거전 와중에 종로 광장시장과 동대문 시장 등 재래시장을 찾아 행한 연설 중에 들은 이야기다. 이대통령은 그때 학비를 벌기 위해 상인들의 주선으로 시장 청소를 담당하는 환경미화원 일을 했다고 한다. 시장사람들이 주는 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영장을 받고 군대에 갔다가 기관지 확장증으로 돌아왔을 때, 모친께서 “내가 너를 군대에도 못 보낼 정도로 약하게 키웠구나”라며 펑펑 우셨다는 이야기도 했다. 기자도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코끝이 찌릿했다. 대통령과 동향의 가난한 농가 출신으로서 강한 동질감을 느꼈었다.

그런 이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내심 기대가 컸다. 더군다나 그는 이념보다 실용을 중시하겠다고 했다. 우리사회의 비생산적 이념대결이 완화되며 순조로운 남북관계 속에 경제적 활기도 기대됐다. 기자는 그때 거창하게도 중국 등소평이 내걸었던 ‘실용주의’를 연상했다. 1976년 모택동 사후 중국 지도자로 오른 등소평은 1979년부터 이른바 ‘실용주의 개방노선’을 천명한다. 유명한 ‘흑묘백묘론’이 뒤를 받쳤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사회주의 원칙에 충일해야 한다는 이른바 ‘모택동 사상’에 입각한 중국사회의 이념적 틀과 사회운용 기조를 실용위주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중국적 정체성과 체제를 지키되 실용적 개방을 단행, 인민에게 먹일 쥐를 잘 잡겠다는 포부였다. 그들이 터부시 해 마지않던 시장을 받아들인 등소평과 중국의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세부적으론 아직 문제가 많긴 하지만 불과 30년 만에 일본을 제친 제2 경제대국이 되었다.

옛 소련을 대신해 미국의 독주를 견제할 G2 국가로 우뚝 선 것도 부인할 수 없다. 5척 단구의 등소평이 실용주의 개방노선을 처음 천명할 때만 해도 가난하고 더러운, 후진국 중공이라며 한 수 아래로 깔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반공사상이 투철한 대한민국에선 몇 년 전 까지도 중국하면 아시아 신흥 4국(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보다 못한 나라라는 인식들이 많았다.

기자는 가당찮게도 그런 중국을 성공으로 이끈 등소평의 ‘실용’을 이명박의 ‘실용’에 빗대어 보곤 했다. 물론 그것은 남한에서든, 북한에서든 우리 한반도 지도자 가운데도 그런 ‘실용’을 구현할 인물이 나와야 할 필요성을 인식한 희망사항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것은 희망사항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대통령은 말로만 실용으로, 진짜 실용이 뭔지 모르는 것 같은 정책만 써 왔다.

그의 치세(?)로 한반도 내 이념대결은 더욱 격화되고, 남과 북의 사이도 멀어졌다. 와중에 위기와 긴장, 전쟁시나리오까지 제기되며 경제적 활기와 서민의 희망은 더욱 아득해져 갔다. 이념보다 실용이라더니, 오히려 ‘이념’에 빠져 ‘실용’을 상실, 경제까지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 전체 민족의 운명과 고유 강역마저도 중국에 반분해 줘야 할 지도 모를 상황(북한의 중국 종속화)까지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등소평과 이명박의 비교할 수 없는 ‘그릇’ 차이일까? ‘경제대통령’의 꿈은 차치하고 한반도인의 자존심이 허무해 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 순간 젊은 대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아우성이다. 염치없이 해마다 치솟는 대학 등록금을 좀 내려달라는 소리다. 대학에 가기 위해 고교시절까지 학원이다 과외다 뭐다 하며 이미 많은 비용을 지불한 대학생들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사람구실 못한다는 사회분위기에  새빠지게 공부해 대학에 간 학생들이다. 그랬더니 이번엔 등록금이 문제다.

1년에 1000만원 이상이 든다니 이제 우리사회는 돈이 학력과 사람신분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부모들은 필사적으로 자녀 공부 뒷바라지에 정신이 없다. 뒷바라지 할 자신이 없어 아예 자녀를 낳지 않기도 한다. 저출산 문제가 그것이다. 그래도 태어나 자란 자녀들은 필사적으로 대학을 다니려 한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다단계 영업에다 생체실험 마루타 ‘알바’까지 마다않는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어 취직할 수 없는 상황을 생각하면 더 답답해진다. 그 많은 등록금과 시간을 들여 대학간판 땄더니 일할 곳이 없다면, 등록금이 신용불량 빚으로 남는다면, 대체 대학은 왜 나와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대학을 없애든지, 범국민적 대학거부운동이라도 일어나야 되지 않겠는가? 부모들의 교육열을 이용, 비싼 간판 장사를 계속할 대학이라면 그런 대학을 위해 많은 부모들과 학생들이 들러리를 설 필요가 있겠는가? 깨놓고 말한다면 대학 간판 없이도, 비록 초등학교만 나오더라도 자신의 노력과 성실성, 책임감, 능력에 따라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명박 대통령 특유의 어법이 있다. “나도 그것 해 봤는데...”라는 것이다. 이대통령은 가난하여 청계천 헌 책방 주인으로부터 그냥 책을 얻은 적이 있다. 종로 동대문시장 상인들로 부터 환경미화원 일자리를 주선받아 그들의 장학금과 도움으로 공부한 적도 있다. 지금 대학생들의 아우성이 대통령에게도 실감나게 들릴 충분한 이유다. 자신도 그것을 해 봤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문제는 대통령 혼자서 해결 할 수 있는 건 아닐 거다. 감성적 시각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거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기대한다.

그가 비록 우리 역사와 한반도 전체 민족을 위한 ‘실용’을 놓치고, 남북관계를 놓치고, 꿈꾸던 경제대통령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반값 등록금’만이라도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 하나만 지켜내도 이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으로 칭송과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마지막 남은 기회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