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500년 명문가의‘아름다운 유산’만들기
[문화칼럼] 500년 명문가의‘아름다운 유산’만들기
  • 김종규 /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 승인 2011.06.1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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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 혹은 고택을 힘겹게 지키는 후손들 많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많은 명문가 집안을 이야기 할 때, 동래정씨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명문가 집안으로 쏜 꼽힌다.

특히 조선시대의 경우 영의정 5명을 포함해 정승만 총 17명을 배출했으니, 이정도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명문 집안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중 동래정씨 동래부원군파의 파시조이자,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명필가인 허백당 정난종(1433~1489) 선생 일가의 내력은 18대를 이어 내려오며, 그 역사 또한 500년을 훨씬 넘어선다.

우리가 흔히 아는 조선시대 명문가 집안들처럼, 동래정씨 동래부원군파 집안 또한 사회지도층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데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흉년이 들면 곡식을 이웃에 나눠주어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은 물론, 절제되고 겸손한 삶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이웃을 배려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말하자면 나눔과 베풂은 곧 이 집안의 가풍이었던 것이다. 그중“흉년이 들면 집을 고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흉년이 들어 먹을거리가 없는 사람을 고용해 집을 수리함으로써, 단순한 시혜적 차원의 동정이나 적선이 아닌, 스스로 힘써 호구지책을 삼도록 했기 때문이다. 요즘으로 치면‘자활’또는‘일자리 창출’이었던 셈이다.

이렇듯 자손대대로 명문가의 가풍을 이어오던 동래정씨 동래부원군파 종손 일가족이 또 다시 뜻 깊은 결정을 내려, 세간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달 초 18대째 내려오며 500년의 유서 깊은 역사가 깃든 동래정씨 동래부원군파 종택(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5호)과 그 종택에 속한 토지 등 약 100억원 상당의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했기 때문이다. 바로 필자가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동래정씨 동래부원군파 종손 일가족으로부터 종택과 그에 속한 토지 1만 8176㎡(약 5,500여 평)을 무상 기증받은 것이다. 문화유산과 그에 속한 토지를 함께 기증한 사례로는 좀처럼 사례를 찾기 힘든 전무후무한 예가 아닌가 한다.

동래정씨 동래부원군파 종손 일가족의 이와 같은 결정은 현재 백수를 바라보는 제16대 종손 정운석 옹을 비롯해 9남매 모두가 뜻을 한데 모은 것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 종손 일가족이 기증을 결정한 이유는 간단하다.“조상대대로 이어오던 종택과 토지를 올바로 지키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당초 이 종택이 속한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 일원은 개발계획에 속해 택지지구로 개발을 앞두고 있었다.

이 경우 종손 일가족 9남매는 각자 막대한 개발이익을 챙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종손 일가족의 생각과 가치관은 달랐다. 막대한 개발이익과 돈보다, 18대째 내려오며 조상의 숨결이 깃든 종가와 삶의 터전의 가치가 더 우선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손 일가족은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기증하는 방안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국민의 기부 및 성금 등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보전가치가 큰 문화유산을 영구 보전하여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 법인’으로, 이곳에 재산을 기증할 경우 영구 보전의 기반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이제 유서 깊은 동래정씨 동래부원군파 종택과 그에 속한 토지는 종손 일가족의 품에서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거액의 유산을 둘러싸고 혹시나 있을 수도 있는 후손들 간의 재산 분할 갈등도 미연에 막을 수 있게 되었다. 동래정씨 동래부원군파 종손 일가족은 소유권을 포기함으로써 그 가치를 국민 모두가 영원히 누리고 함께 가꾸어 갈 수 있게끔 스스로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러한 숭고한 결정이 주는 교훈과 시사점은 적지 않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와 같은 상황과 처지에 놓인 종가 혹은 고택을 힘겹게 지키는 후손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사적 소유에서 사회적 소유로 전환함으로써 그 가치를 영구히 지키고 온 국민이 함께 가꾸어 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소중한 문화유산을 가꾸고 물려주기 위한‘아름다운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