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눈살 찌푸리게 한 ‘선잠제향’
성북구, 눈살 찌푸리게 한 ‘선잠제향’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5.0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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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상 앞서 우왕좌왕하는 제관들 모습에 주민들 실망하고 돌아서


지난 7일 성북구 선잠단지에서 고려시대 때부터 누에치기의 풍요를 기원하며 열리던 신성한 ‘국가의식’인 선잠제향(先蠶祭享)이 거행됐다.

하지만 올해 17회를 맞은 선잠제향은 ‘거행됐다기보다는 열렸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가볍고 미흡한 진행으로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 신위에게 폐(예물)을 올리는 의식인 '초헌례'에서 실수를 한 제관이 의식도중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다.


제례의식의 시작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선잠단지와 주변에서 하나 둘 사람들이 몰려들고 제관들의 입장에 이어 왕비가 행차해 자리를 잡고, 선잠제향 봉행의 막을 올렸다.

하지만 제관들이 제상 앞에 올라서자 상황은 달라졌다. 엄숙한 가운데 경건하게 거행돼야 할 의식을 진행하는 제관들이 처음해보는 듯 쭈뼛거리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 제관이 다음 절차를 몰라 가만히 있자 선잠제향 보존회 이수자가 가르쳐주고 있다.

그 모습에 진지한 분위기의 제례의식이 어수선해지면서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옆에서 취재를 하던 다른 기자의 입에서는 “뭐야, 설마 교육 안 시킨거야?”하는 조롱 섞인 중얼거림도 들려왔다.

잠시 후 보다 못한 선잠제향 보존위원회 관계자가 구석에서 조심스럽게 제관들에게 즉석에서 제례절차나 방법을 가르쳐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 상황에 대해 보존회 측에게 물어봤다. 보존회 측은 “10여명의 제관들 가운데 해설집례를 하는 제관을 포함 한 3명만이 선잠제향 이·전수자다. 대부분의 제관들 은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우리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대답했다.

▲ 왼쪽에 살짝 보이는 옷깃은 보존회 측 사람으로 우왕좌왕하는 제관들에게 제례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가르쳐주던 선잠제향 보존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선잠제향은 국가의 제례의식으로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전수자들도 10년 이상은 걸리는데 연습도 안하고 하니 이럴 수밖에”라며 울분을 토했다.

또 “설마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제관으로 선정해 신성한 의식을 치를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뒤쪽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눈치를 보며 하나둘 사라졌고 선잠단지 내부에 마련된 누에고치 체험행사를 즐기던 어린이들은 이미 자리를 떠난 지 오래였다.

▲ 제례의식 중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제관의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 지역 주민 최 모씨는 “경제 상황을 감안해 작년보다 규모가 작아진 건 이해하지만 뭔가 어수선하고 준비되지 않은 행사 같다”며 애써 온 발길을 돌려버렸다. 초반 가득 메운 좌석은 빈자리가 점점 늘어 종헌례에서는 행사장은 텅텅 비어만 갔다.

한 관람객은 “뒤늦게 외국인 수녀가 보러왔는데 사람들은 떠나고 의자만 휑하게 남아 민망했다”며 “가려다가 한 자리라도 지켜야 할 것 같아 가지 못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덧붙여 “오늘 이 광경이 외국인 수녀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졌을지, 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 걱정이다. 하지만 수녀의 표정이 밝지 않아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이 같은 정황을 구청 관계자에게 설명하며 묻자 “이번에 예산이 없어 간소하게 치러지다보니 그런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에 대해 주민 K씨는 “하루 예행 연습하는 것이 그렇게 돈 들어가는 일이냐”며 “보는 내가 부끄럽다. 외국인들이 많이 오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 제례의식 초반에 가득 메우고 있던 좌석들이 하나둘씩 비기 시작해 중반쯤에 거의 대부분이 비어있어 차마 찍기도 민망해졌다.

한편 선잠제란 우리 조상들이 양잠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고려시대부터 치러온 국가적인 행사로 매년 늦은 봄, 길한 뱀날(巳日)에 잠신(蠶神)인 서릉씨(西陵氏) 신위를 모시고 지낸 전통제례의식이다.

국가의 전통문화이자 성북구의 문화유산 중에 하나다. 대한제국 말인 조선 순종 2년(1908년) 중단된 후 85년만인 1993년 5월 16일 재현해 금년으로 17년째를 맞고 있다.

특히 우리의 전통제례인 선잠제를 계승해오고 있는 선잠제향 보존위원회의 철저한 고증을 통해 1963년 사적 제83호로 지정된 선잠단지에서 봉행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