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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序論)
1. 서론(序論)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창세기 1, 3-5).
이 글은 내가 굳이 광학론을 들추지 않더라도 ‘빛과 색’의 관계가 절묘하게 드러난 성경의 한 대목이기에 인용한 것이다. 빛(光)이 생기니 색(色)이 보이고, 색이 보이니 시각적으로 좋(善)고 나쁨(惡)이 구분되며 이렇게 생긴 변별성은 곧 낮(晝)과 밤(夜), 밝음(明)과 어둠(暗), 양지(陽)와 음지(陰), 하양(白)과 까망(黑)을 구분하여 상생과 대립의 변증법적 순환관계로 발전한다. 이렇게 보면 빛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흑백(밤, 낮)의 무채색이며 그 다음이 적(赤) 청(靑), 황(黃)(온갖 사물)의 유채색이 만들어진 것이다.
얼핏 보면 관념적인 설교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음양오행과 오방, 오정, 오간색을 기저로 한 우리의 전통 색채의식을 살펴보는 나로서는 오(五)라는 개념을 매개로 매우 합리적인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관심 있는 대목은 ‘보시기에...’로 일관되는 창조원리의 시각우선 개념이다. 우리는 미술을 창작예술이라고 ‘창(創)’자를 붙인 이유가 감히 이런 창조주(創造主)의 그것과 구우일모(九牛一毛)의 한 부분이라도 흉내내보라는 절대자의 기도라고 믿고 싶다. 화가인 나로서는 창작의 깊은 의미와 책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됨은 물론 ‘한민족의 빛과 색’을 공부하는 데 더욱 정신을 다잡게 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나는 우리 민족이 유구한 역사의 색채문화를 향유해 오면서 나름대로 색채의식을 정립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가 요구하는 그런 합리적인 색채론은 아무 데도 기술(記述)해 놓은 기록이 없다. 그래서 뭇 사람들이 전통적인 우리의 색채의식을 들여다보기 위해 조상들이 남겨 둔 흔적들을 뒤적거리며 희미한 의식의 편린(片鱗)들을 주워 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뜬구름 잡는 것처럼 구체성도 없고, 연구의 실체도 퇴색되어 감으로써, 잠시 스쳐간 견문록(見聞錄)의 시각에서 물색 옷(染色衣)을 멀리했던 백의민족이 합리적인 색채의식을 정립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제하기 일쑤다. 그러나 한민족의 색채의식은 문자 이전부터 말씀 안에 살아 있음을 확신하고, 우리의 혀 안에 감춰진 민족의 색 정서를 언어관습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언어는 그 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의 바다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이든지 주인이 있는 언어는 살아 숨쉬며 자라면서 생멸의 순환을 거듭한다. 이렇게 쉼 없이 명멸하는 어휘의 바다에는 소금처럼 민족의 ‘얼’이 녹아있다. 다만 고기가 바닷물의 짠맛을 알지 못하듯이 우리의 색채의식은 언어의 바닷물과 한 몸을 이룬다.
B. C. 20세기에서 10세기를 전후하여 성립된 음양사상에 앞서, 우랄 알타이어계의 민족들은 태초에 말씀이 있기부터 창세기의 말씀처럼 음양대립의 대칭적인 의미체계(意味體系)가 음운체계(音韻體系)와 조화를 이루면서 말씀의 바다를 이루어 왔다. 알타이어계의 제사(第四) 어족군(語族群)에 속하는 우리의 언어체계는 음양의 상생대립(上生對立)적인 이원론(二元論)에 근거하여 색에 대한 어근변화(語根變化)가 발전되어왔다.
중국의 주역사상(周易思想)에 의존한 음양설로 인해 한국인의 색이름이 한자색명(漢字色名)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에 대해 나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사실 알고 보면 중국 고대의 한 문화(漢文化)가 일찍 문자를 사용한 우수함은 인정하나, 실제 음양사상은 알타이어족의 사상으로부터 연원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자문화 그 자체는 우리의 언어처럼 음·양의 이원체계(二元體系)를 확고하게 갖고 있지 못한 채 알타이어계의 어족사상(語族思想)을 흡수 발전시켜 체계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입안에 든 색 이름에 대한 언어체계를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색채의식이 어떠했으며 그 안에 내재된 한국미학의 자생성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를 화두로 삼고자 한다.
2. 전통 색채문화의 이해와 오해
얼마 전에 어느 토론장에서 색채학 공동발표회가 있었다. 그 중에 한 분이 “우리의 색채어휘(色彩語彙)는 비과학적이고 빈약해서 현대산업화에 걸림돌이 된다.”며 서구적 시각과 잣대만으로 한국의 색채문화를 폄하(貶下)하던 기억이 난다. 매카니즘적인 기능과 효율성을 우선하는 산업분야와, 사상과 감성을 토대로 하는 예술은 다르다. 천만가지의 기호화된 색상 샘플도 전통적으로 우리 색채의식 속에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오방위의 오정색(五正色)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세분화한 또 다른 표본에 지나지 않는다.
영어 문화권에서의 단일 색명(色名)으로는 빨강(Red), 진홍(Purple), 분홍(Pink), 주황(Orange), 노랑(Yellow), 갈색(Brown), 초록(Green), 파랑(Blue), 까망(Black), 하양(White) 등 11색이지만 순수한 한글로 표기한 오정색의 다섯 가지 빛깔을 빼고 나면 모두가 혼합 간색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밖에 다른 나라의 예를 들자면, 필리핀의 경우는 빨강, 노랑, 까망, 하양이 있고 나이지리아는 빨강, 까망, 하양이 있으며 파푸아뉴기니는 아예 까망과 하양만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단일 원색의 순수 한글 색이름으로 빨강, 노랑, 파랑의 유채 3원색명이 있고, 까망, 하양의 무채색명이 있어 오방위 오정색을 이루고 있다.
2. 전통 색채문화의 이해와 오해
얼마 전에 어느 토론장에서 색채학 공동발표회가 있었다. 그 중에 한 분이 “우리의 색채어휘(色彩語彙)는 비과학적이고 빈약해서 현대산업화에 걸림돌이 된다.”며 서구적 시각과 잣대만으로 한국의 색채문화를 폄하(貶下)하던 기억이 난다. 매카니즘적인 기능과 효율성을 우선하는 산업분야와, 사상과 감성을 토대로 하는 예술은 다르다. 천만가지의 기호화된 색상 샘플도 전통적으로 우리 색채의식 속에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오방위의 오정색(五正色)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세분화한 또 다른 표본에 지나지 않는다.
영어 문화권에서의 단일 색명(色名)으로는 빨강(Red), 진홍(Purple), 분홍(Pink), 주황(Orange), 노랑(Yellow), 갈색(Brown), 초록(Green), 파랑(Blue), 까망(Black), 하양(White) 등 11색이지만 순수한 한글로 표기한 오정색의 다섯 가지 빛깔을 빼고 나면 모두가 혼합 간색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밖에 다른 나라의 예를 들자면, 필리핀의 경우는 빨강, 노랑, 까망, 하양이 있고 나이지리아는 빨강, 까망, 하양이 있으며 파푸아뉴기니는 아예 까망과 하양만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단일 원색의 순수 한글 색이름으로 빨강, 노랑, 파랑의 유채 3원색명이 있고, 까망, 하양의 무채색명이 있어 오방위 오정색을 이루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필자약력:서울대동양화화 교수/초대 서울대미술관장/국전초대작가 및 심사위원/5천원권·5만원권 화폐도안 작가/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