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한민족의 색채의식⑤
[특별기고]한민족의 색채의식⑤
  •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승인 2012.10.1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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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많이 쓰이는 상적하청(上赤下靑)은 태극의 배색

<지난호에 이어>

 

▲필자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빨강은 특히 복식에서 많이 쓰이는데 조선시대의 정색(正色)인 다홍색과 천홍색(꼭두서니), 비색(翡色), 연지색, 도홍색(挑紅色), 주황색, 분홍색, 자색 등이 있었다.

이중 빨강인 적색은 연화의 덕(德)을 상징하고 있으며 홍색(紅色)은 제왕의 복색이었으므로 서민들에게는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서민대중에게 널리 애용되어 갖가지의 붉은색 계통의 색상을 애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오방색 중에 양기(陽氣)에 속하는 빨강과 파랑은 동맥과 정맥을 상징하며 혈류의 순환처럼 기의 흐름을 의미하고 있어 주술적인 작용을 믿기 때문에 의생활에 많이 쓰였다.

이런 상적하청(上赤下靑)의 순환적 색채의식은 민속의상에 많이 나타나는데 적색과 청색을 위 아래로 배색하는 청사초롱이 그렇고 혼사 때의 청홍사(靑紅絲)와 사주보가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은 태극의 배색이다.

초기 대한제국의 태극기는 오정색으로 하얀 바탕에 빨강, 파랑, 노랑의 삼태극을 그리고 그 주변으로 사방 위에 건곤리감(乾坤?坎)의 괘(卦)를 까망으로 그렸다. 그밖에 빨강은 주서(朱書)로 벽사부적(?邪符籍)에 쓰였고 봉선화(鳳仙花)로 손톱에 물을 들이면 병이 낫고 동지날 붉은 팥죽을 먹거나 주사(朱砂)를 지니면 악귀를 물리친다고도 했다.

요즘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르는 일과 봉선화로 물을 들이는 것과를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우연치고는 흥미로운 일이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이번에 한일월드컵에서 이데오르기를 뛰어넘어 온 나라가 붉은 합성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민족의 책채의식 속에 녹아있는 잠세력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빨강이 피와 태양과 정열을 상징하여 전투적이고 대중을 흥분시킨다는 시각적이고 생리학적인 측면만으로 이해될 수 없는 우리 민족만이 공유한 색채의 유전적 기질이 작용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2) 파랑(靑) - ( ‘ㅍ' + 'ㄹ' )

‘파랑’ 또한 순수하고 고유한 우리의 색 이름이고 삼원색 중의 하나이면서 전통적인 오정색(五正色)의 하나이며 명사이다. 형용사로는 ‘파란’이 있고, 부사(副詞)로는 ‘파랗게’가 있으니 이같이 간단한 어미변화 하나만으로 명사와 동사를 자유자재로 수식할 수 있는 완벽한 색 이름이 되는 것이다.

우리말 ‘파랑(靑色)’이란 색 이름은 물(水)이나 풀(草), 동방의 하늘빛, 별빛과 같은 자연물에서 연원된 어원이라고 생각된다. 파랑을 나타내는 한자용어로서 남(藍), 감(紺), 감청(紺靑), 감추(紺?), 아청(鴉靑) 등이 있는데, 이는 곧 생기의 색이며 만물이 태어날 때의 색(靑生也,象物之生時色也:《釋名》)이고, 동방의 색(靑東方之色也:《說文解字》)이기도하다.

별자리로 보면 파랑은 춘분날 동쪽 하늘에 떠올라 푸르게 빛나는 동방 28수의 첫 번째 별인 각성(角星)에 해당된다. 이처럼 새벽의 동쪽 하늘에 떠있는 별들이 푸르기 때문에 동방의 색이 청색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중국에서 파란 별이 뜨는 나라라고 하여 우리 나라를 청구국, 청구 조선이라고도 별칭한 것을 보면 해 돋는 동방의 푸른 나라로 인식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말의 어원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하여 일본어의 그것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푸른빛을 대표하는 벽(碧)과 녹(緣)의 두 가지 빛과 아우르는 일본어로는 ao, awo(靑)가 있다. 또, 초목의 새싹과 여름의 상징색으로 midori (綠)라고 하는 것은 우리말 풀색과 연계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푸르다’와 ‘풀’ 은 근세어에서 원순화(圓脣化)된 것으로 보인다.

‘파랑’, ‘푸르다’, ‘풀’, ‘풋-’ 등에서 공용된 ‘ㅍ’은 구순(口脣)의 파열음이다. 《석명(釋名)》에서 말했듯이 봄이 되면 얼었던 땅 속에서 식물의 새싹이 지표를 가르고 그 틈새에서 세상 밖으로 태어나는 소리이며 그래서 생기는 물체가 ‘풀’의 파란색이다. <다음 호에 계속>

*필자약력:서울대동양화화 교수/초대 서울대미술관장/국전초대작가 및 심사위원/5천원권·5만원권 화폐도안 작가/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