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칼럼]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건축(nature inspired architecture)
[건축칼럼]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건축(nature inspired architecture)
  • 장윤규 ‘운생동건축가그룹’ 대표 / 국민대 교수
  • 승인 2012.12.0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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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축을 생각하면 흔히 우리는 ‘특별한’건축, 혹은 ‘멋있게’지어진 건축을 떠올린다. 그러나 현대건축을 사유하려면 오히려 현대의 일상을 그대로 담아내는 공간과 그 산물에 대해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일상공간의 변화야 말로 문화와 사회의 진화를 그대로 담아내며 오늘의 공간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가장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매일 우리는 일상공간에서 다양한 범위의 창의성과 그 정신으로 구현된 실행과 실천을 하고 있지만, 멋있고 눈에 띄는 것들에 비해 쉽게 간과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조금 더 그 뒷면을 살펴보면 속속들이 보이는 미학이 잠재하는 것이 바로 일상의 삶과 문화이다.

도시공간을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공간 중 하나가 쇼핑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쇼핑을 문화나 용도로 보는것에 그친다. 하지만 쇼핑에는 방대한 층의 축적된 지식이 숨어있고,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 쇼핑은 다양한 사회구성의 원리와 연결되어 있으며, 크고 작은 정치를 통해 실현되면서, 자본으로 움직이는 행위를 기반으로 소비된다. 인간행위의 아주 작은 스케일의 행위부터 시장경제의 거대한 원리와 함께 실현되고 움직이는 것, 그래서 쇼핑은 문화이자 사회이며, 정치이고 공간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쇼핑은 가장 오래된 인간의 공공행위였다. 인간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는 종교나 정치계급 중심적 관점을 물질주의로 옮겨놓는 계기가 되었고, 산업혁명을 거쳐 폭발한 자본주의로 인해 자본과 소비, 생산위주의 새로운 세계관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중세기까지만 해도 쇼핑은 철저히 계급과 길드라는 엄격한 규율과 경계 안에서 상업행위가 이루어졌다.) 산업혁명 이후, 부르주아라는 산업자본주의의 새로운 주역이 등장하면서부터, 유럽의 권력구조는 기본의 종교/정치권력에 맞선 자본권력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고대,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친 종교권력이 수 많은 건축양식과 건축공간을 지배해 오듯이, 새롭게 등장한 부르주아 세력은 그들을 대표하는 (권력을 상징하는) 양식과 공간을 새로운 기계와 기술에 의해 앞다투어 생산해 내었다.

1851년 런던의 만국박람회는 유리와 철골이라는 새로운 건축자제와 테크닉으로 수정궁(Crystal Palace)이라는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고, 이후 각 나라들은 그들만의 ‘수정궁’을 통해 자국의 자본적 위양을 앞다투어 뽐내었다.

박람회의 취지는 결국 거래와 구매계약이었고, 대중에게 상품을 선보이는 하나의 거대한 '쇼윈도우'였다. 대중은 엄청난 규모와 화려한 박람회를 동경의 시선으로 환상한다.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는 그 화려함으로 가질 수 없는 상품의 판타지를 또 다른 방식으로 진화시켰다. 오늘날의 ‘아이쇼핑(eye shopping)’의 원조인 셈이며, 쇼핑이 실질적 소유와 소비를 벗어나 하나의 ‘문화적’행위로 확장된다.

대표적인 현대건축가 렘 쿨하스 (Rem Koolhaas)는 현대쇼핑공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 "에어컨디션,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광고가 등장한 순간, 쇼핑은 그 스케일을 확장시켰고, 동시에 쇼핑이라는 행위가 지니고 있었던 고유의 ‘즉흥성’에 대한 제한이 시작되었다.

이후 현대의 쇼핑은 거의 과학적일 정도로 예측 가능해졌다. 기술과 그 혁신의 ‘놀라움’이 치밀한 ‘조작’과 ‘응용’으로 되어버렸다”. 풀어서 얘기하자면 이렇다.

현대의 마천루가 엘리베이터라는 혁신과 뗄 수 없는 관계이듯이, 현대의 쇼핑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에스컬레이터이다. 에스컬레이터로 이동된 사람들은 계속 그 움직임이 확보되어야 하는 코리더(Corridor)가 필요하고, 코리더를 걷는동안 상점의 간판이나 쇼윈도우는 눈에 쉽게 띄어야 한다.

기술의 혁신과 그 창의성은 바로 쇼핑이 확장되기 시작하면서, 이동의 흐름과 공간의 특성, 상품전략 등의 최대치를 위한 면밀한 조율의 문제가 되었고, 이는 쇼핑공간, 특히 대형 쇼핑몰의 전형들을 만들어내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쇼핑이 진화할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이 순간에도 치밀한 응용방식을 연구하고 조작하여 지배하려는 그 어떤 권력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권력에는 우리(소비자)도 당연히 포함된다는 점이다. 일상은 어떻게 보면 미미한 듯 하지만, 어떤 관점으로 보고 접근함에 따라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힘을 내재한다. 우리가 매일 하는 쇼핑이 지금의 도시공간을 바꾸어 놓은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