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Book] 조선시대 ‘여자 임꺽정’이 있었다?
[New Book] 조선시대 ‘여자 임꺽정’이 있었다?
  • 이소리 논설위원
  • 승인 2012.12.2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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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시연, 두 번째 장편소설 <바우덕이전> 펴내

우리나라 남사당패 첫 여성 꼭두쇠 박우덕이가 투사처럼 살았던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바우덕이전>(푸른사상)을 펴낸 작가 유시연이다. 작가는 이 장편소설에서 바우덕이가 겪었던 사랑과 예술혼, 농민군을 토벌하려는 관군에게 한바탕 놀이로 훼방을 놓는 모습 등을 통해 우리시대 물질자본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곳곳에 드리운 양극화를 비춘다.

이 장편소설은 모두 13꼭지에 우리나라 남사당패에서 바우덕이가 첫 여자 꼭두쇠가 되기까지 회오리바람처럼 휘돌아야 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가 흑백필름처럼 펼쳐지고 있다. ‘들풀’, ‘하월선사’, ‘개다리패’, ‘이별단상’, ‘낙화유수’, ‘꼭두쇠 바우덕이’, ‘암동모 수동모’, ‘왕초 도둑’, ‘인연’, ‘한양’, ‘불당골’, ‘복사꽃’, ‘바람이 되리 꽃잎이 되리’가 그 이야기들.

혹, 이 장편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남사당패 첫 여자꼭두쇠 바우덕이가 19일(수) 우리나라 첫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 당선자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까 봐 미리 밝혀둔다. 작가가 말하는 바우덕이는 들풀처럼 거칠게 민초들을 끊임없이 짓밟는 물질자본과 절대 권력에 당당하게 맞설 줄 아는, 민들레꽃 같은 우리나라 모든 여성들이다.

이 장편소설은 주인공 바우덕이가 남사당패를 이끌고, 탐관오리들 수탈을 견디다 못해 일어선 농민군을 토벌하려는 관군에게 한바탕 놀이로 맞서는 것으로 이야기가 열린다. 23살 꽃다운 나이에 이 세상을 훌쩍 떠나버린 바우덕이. 그가 겪는 삶은 안성에 있는 청룡사에 고아로 버려지면서 파란만장한 나날로 이어진다.


늘 가슴 한켠에 그분을 불쏘시개처럼 품고 살았다

“사당들이 놀이라도 벌이자면 마을을 들어가야 하고 마을을 들어가야만 양식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덕이가 사당들의 마음을 위로할 겸 잠시 가던 길을 돌아 마을에 들어간 후 사당들은 산 중턱에서 끼리끼리 모여 쉬고 있었다. 어디선가 거칠게 없는 웃음소리가 폭발적으로 들려왔다.”-176쪽, ‘왕초 도둑’ 몇 토막

바우덕이가 기십 명에 이르는 남사당패를 이끌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식의주를 책임지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꼭두쇠이기 때문에 굶주리고 있는 사당패를 위해 스스로 부자나 양반과 거래를 트고 몸을 내주는 보살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여기에 타고난 소리꾼이자 빼어난 아름다운 얼굴에 포옥 빠진 남성들이 뻗치는 손길도 끝이 없다.

글쓴이는 이 장편소설을 읽으며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특히 개똥이 품에 안겨 모기가 나는 소리처럼 가냘프게 남기는 마지막 그 한 마디 “그분이 다시 오시면 기다렸다고 말해줘”는 지금도 가슴을 툭툭 친다. 젊은 날, 글쓴이가 겪었던 그 아픈 사랑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우덕이. 그는 사내보다 더 거칠고 험한 삶을 살아냈지만 그 속내에는 한 사내에 대한 깊은 사랑이 숨겨져 있었다.

바우덕이가 말하는 “그분”은 “갈래머리 땋아 내린 어린 계집애 가슴에 풋사랑을 싹트게 한 한양 도령 ‘석산’”이다. 그 석산은 “반상의 차별을 떠나 함께 글공부를 하고 쏘다니고 숨바꼭질하고 오누이처럼” 지냈던 세도가 집안 아들이다. 바우덕이는 그 석산을 ‘오라버니’로 기억하다가 죽는 그날 ‘그분’으로 불렀다.

한 세상을 바람 같이 구름 같이 살아보니/이 산 저 산 꽃은 피고 꽃은 지고
/저 강 따라 내 영혼 어디든지 흘러가리
-288쪽, ‘복사꽃’ 몇 토막


바우덕이 모습에서 ‘여자 임꺽정’이 보인다

“안개가 자욱한 날씨였다. 바우덕이가 묻힌 곳을 찾아가는 내 마음이 석연치가 않았다. 지난 밤 그녀의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그녀는 치렁거리는 비단옷을 입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인물과의 만남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 무슨 원한이 있는 걸까.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중인가. 온갖 상념에 잠을 설쳤더니 눈꺼풀이 무거웠다.” -307쪽, ‘에필로그’ 몇 토막

작가 유시연은 1959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2003년 계간 <동서문학>에 단편 ‘당신의 장미’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오후 4시의 기억>이 있으며, 장편소설 <부용꽃 여름>을 펴냈다. 지금은 (사)한국작가회의 회보 편집위원과 문학in 편집총주간을 맡고 있다.

한편 오는 26일 인사동 사동집에서 ‘바우덕이’ 출판기념회를 겸한 문학in해넘이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