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수상자 인터뷰-왕기철 명창(국립창극단 부수석)] "판소리, 시대에 맞는 변형 필요" 비보이·무용 등 접목 계획
[문화대상 수상자 인터뷰-왕기철 명창(국립창극단 부수석)] "판소리, 시대에 맞는 변형 필요" 비보이·무용 등 접목 계획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글 윤다함 기자
  • 승인 2013.03.1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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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서편제', 27일부터 31일까지 공연… 부녀 함께 출연해 더욱 뜻깊어

     지난해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왕기철 명창은 16세에 판소리계에 입문해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 장원(대통령상), KBS 서울국악경연대회 판소리부 장원  , KBS 국악대상 판소리 부문 등을 수상했으며 지난해에는 전주 MBC에서 방송한 판소리 명창 서바이벌 ‘광대전’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 최고의 명창으로 올라섰다.

     국립창극단 부수석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해 온 그가 오는 27일부터 31일까지 공연되는 창극 ‘서편제’에서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아버지 ‘유봉’ 역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길게는 수 십 년, 또는 영원히 오르지 못할 수도 있는 득음의 경지를 향해 일생을 바치는 소리꾼. 그 외길을 걸어온 왕 명창은 이번 공연에서 국립창극단 인턴인 딸 윤정 양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집에서는 인자한 아버지였다가도 연습실에서만큼은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으로서 딸을 대했다는 그는 ‘유봉’ 역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국립극장 해와 달에서 만난 그는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저기 줄이 그어지고 이것저것 쓰여 지저분한 그의 대본이 그의 열정과 30여 년 소리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현재 국립창극단 부수석 /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이수자 △한양대 국악과 및 동 대학 교육대학원 졸업 △2001 전주대사습 판소리 명창부 장원 / 2002 KBS국악대상 판소리 부문 대상 / 2012 전주MBC 판소리 명창 서바이벌 '광대전' 우승 /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 △2012 남원민속국악원 주최 <흥부제> / 2011 독일 부퍼탈 오페라 하우스 <수궁가> 해외공연 / 2004 전주MBC <얼쑤! 우리가락> 진행 / 2003 천하명창 한마당 완창판소리 <적벽가> 완창 외 공연 다수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 소감을 밝혀 달라.
“소리꾼으로서 정말 영광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전주 MBC ‘광대전-명창 서바이벌’에서도 우승을 했는데 그와 더불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이 더 빛난 것 같다. 경사스러운 와중에 <서울문화투데이>가 그 기쁨을 배로 해줬다. 내 소리를 인정해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열심히 하라는 발판을 만들어주신 거라 생각한다.”

-지난해에 유난히도 수상 소식이 많았는데, 국악인생에서 여러모로 의미가 컸겠다.
“그렇다.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거다. 대통령상 받을 때하고는 느낌이 또 다르더라. 특히 ‘광대전’은 대통령상을 받았던 열 명창이 모여 자웅을 겨루는 자리였는데, 그 안에서 우승을 했다는 건 내 소리인생에서도 참 획기적인 일이었다. 실은 처음에 출연제의가 왔을 때 많이 망설였다. 출연자 중 내가 가장 나이도 많았고, 지금까지 쌓아왔던 명예를 걸고 나가는 거라 떨어지면 어쩌나 겁도 앞섰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참여함으로서 우승을 떠나 판소리를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다면 설령 떨어지더라도 보람 있는 작은 희생이 될 거라 생각이 들었다. 청중평가단은 일명 ‘귀명창’이다. 소리 꽤나 아는 분들, 들을 줄 아는 분들이 참여해 현장에서 진출자를 가렸다. 전문가가 뽑아준 것보다 오히려 이 ‘귀명창’ 분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게 더 큰 의미를 준다.”

-이번 공연 ‘서편제’에 딸 윤정 양과 함께 출연한다.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
“‘서편제’에서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아버지 유봉 역을 맡았다. 소리꾼이면서 동시에 소리를 하는 딸을 둔 아버지이기도 한 역할에 개인적으로 참 많이 공감됐다. 이번 공연에는 딸과 함께 출연한다. 연습하면서 때로는 혼내고 다그치기도 하고 때로는 다독이며 왔는데, 극 속의 딸 ‘송화’의 눈을 멀게 하는 연기를 할 때에는 가슴이 아프기도 마음에 와 닿기도 했다. 요즘 세상으로는 그렇게 딸의 눈을 아비 손으로 멀게 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얘기겠지만, 직업의 종류도 별로 다양하지 않던 시절, 자기 딸을 최고의 여자소리꾼으로 만들기 위한 아버지의 고뇌가 느껴졌다. 딸에게 인자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내 모습과 겹치는 것 같았다. 이번 유봉 역이 내게 참 잘 맞는다. 상황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고 말이다.”

-아버지이자 선배로서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집에서뿐만 아니라 극장에서도, 연습실에서도 딸을 보니 기분이 참 묘하면서도 좋더라. 다만 아빠라는 입장에서 딸의 진로나 여러 가지 면에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찌됐든 지금 국립창극단 인턴으로 와 여기서 배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기회냐. 스스로 잘 해나가길 바란다.”

-형님 故왕기창 명창, 동생 왕기석 명창 그리고 딸 윤정 양까지 모두 소리를 하고 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유일무이 ‘판소리 집안’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인가?
“부모님은 정식으로 소리를 하신 적이 없다. 다만 어머님 말씀으로는 아버지께서 소리를 좋아하셨다고만 들었다. 작고하신 형님께서 먼저 소리를 시작하시면서 그게 동생과 내게 연결됐다. 열여섯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박귀희 선생님으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세 형제 모두 뛰어난 명창이면서 각자의 특색을 지니고 있는데, 각각 비교해보자면?
“돌아가신 기창 형님은 나보다 목소리가 더 좋았다. 목소리 자체도 높고, 전통적인 힘과 기술이 좋았다. 또 가장 먼저 소리를 시작하지 않으셨나. 예전에 창극단 놀러가서 형님을 보는데, 정말 최선을 다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동생은 중하성이 아주 풍부하다. 그래서 중후한 남성적인 느낌에 무게감과 깊이가 더해진다. 거기에 연기력까지 일품이니 모든 게 어우러져 최고의 소리꾼이 될 수 있었던 거다. 동생에 비해 나와 형님은 좀 더 여성적인 음을 지니지 않았나 생각한다. 전통악기로 따지면 동생은 거문고, 나와 형님은 가야금.”

-동생 왕기석 명창과 은근 라이벌 관계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
“우리 서로 말은 안 해도 실은 엄청 팽팽하다.(웃음) 선의의 라이벌 관계다. 동생이 30여 년을 창극단에 있었는데, 얼마나 산전수전 다 겪었겠나. 거기서 우러나오는 부분들에서 배울 점이 많다. 동생과 함께 활동하며 더블캐스트도 많이 됐는데, 실은 그 자체가 선의의 라이벌 아니겠나. 다툰 적은 없고, 다툴 필요도 없었다. 형으로서 늘 여유를 갖고 양보하고 베풀려고 한다.”

-지난해 국립창극단 스릴러 창극 '장화홍련'에서 도창을 맡았다. 섬뜩한 분장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잡은 컨셉은 실은 그런 게 아니었고, 마지막에 다 수정된 거다. 초기 컨셉은 베토벤 같은 머리스타일에 롱코트를 입은 거였는데, 그게 제법 멋있게 보여 마음에 들고 기대가 많았다. 그런데 공연 이틀 남겨놓고 리허설에서 갑자기 스타일컨셉을 전면 수정하게 됐다. 연출께서 머리는 민머리로 하고, 분장도 해골귀신처럼 하라고 하더라. 솔직히 그 컨셉이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연출께서 괜히 이런 걸 주문하실 분이 아니란 걸 알기에 말씀을 따랐다. 막상 무대에 오르니 굉장히 강렬하고 반응도 좋았다.”

-창극 요소를 거의 버리고, 발림을 하지 않는 등 기존 창극의 도창과는 전혀 다른 도창을 보여줬다. 어려움은 없었나? 또 새로운 시도에 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도창이었다가 해설가였다가 또 살인을 부추기는 그런 역할도 했다. 하지만 창극의 도창과는 달리 판소리로 하는 게 아니라 연극에 가깝게 하는 소리를 내야해서 내 소리를 다 버려야만 했다. 목을 눌러서 소리를 내야하니 무리가 많이 갔다. 특히 그때 ‘광대전’을 촬영할 때라 목을 최대한 아껴야 했는데, 오히려 버리고 있으니 부담이 엄청났다. 그 점이 너무 힘들었다. 관객들이 흥미로워했고, 동시에 무서워했다.(웃음) 작품과 호흡이 잘 맞아 즐겁게 작업한 작품이어서 그랬는지 결과도 좋았다.”

-지금까지 완창은 몇 번이나 했나?
“흥부가 한 3-4번 했고, 적벽가도 한 2번 했던 것 같다. 요즘에는 완창을 좀 피하고 있다. 예술가로서 최고의 역량을 뽐낼 기회이기도 하지만, 완창을 하고 나면 내 자신의 진이 다 빠진 느낌이다. 너무너무 힘들다. 그리고 4년 전 성대결절 수술 이후부터 조심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도전할 거다.”

-판소리는 여전히 대중에게 어렵기만 하다. 판소리가 대중에게 사랑받기 위해선 어떤 게 필요할까?
“기존 판소리가 훌륭한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는 어렵기만 한 사설을 전달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요즘은 한자를 잘 쓰지도 않고 다들 어려워하지 않나. 이러니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거다. 막상 공연을 보더라도 공감할 수 없으니 흥미가 감소한다. 판소리는 원래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이었다. 이런 점 역시 시대 흐름에 따라서 바뀌어야할 거다. 요즘 사는 세상 이야기를 소리로 만든다면 대중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소리 내용이 자신의 이야기라면 일단은 관심을 끌 수 있을 거다. 대중을 억지로 끌고 갈 게 아니라 우리 소리꾼들도 대중을 이해시킬 노력을 해야 할 거다. 특히 남상일 씨가 요즘 방송에 자주 나오는데, 그게 우리 소리를 알리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또 박애리 씨도 남편 팝핀현준 씨와 같이 방송에 출연하던데 정말 좋아 보인다. 이렇듯 대중과 가까워지기 위한 고민이 계속 이뤄져야 한다. 나는 우리 식당에서 주말마다 공연을 해볼 생각으로 엠프와 스피커도 사놨다.(웃음) 이런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요즘 판소리에 퓨전, 타 장르 접목 등 다양한 시도가 행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개인적으로 서양음악과 좀 더 친하지 못했던 게 후회된다. 소리를 하며 피아노를 친다든가 하면 대중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서양 악기가 됐든 이런 퓨전적인 공연을 해보고 싶다. 난 퓨전 공연을 긍정적으로 본다. 물론 전통도 지켜야 한다. 그 중에 갖고 가야할 부분은 바탕에 깔고, 이 시대에 맞게끔 변형하고 접목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거다. 나도 소리와 비보이, 무용, 시낭송 등과 접목하려고 연구 중이다. 소리라는 매체가 다른 여러 장르들을 만날 수 있는 만큼 다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판소리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다.”

-경기도 남양주에 고깃집 ‘왕명창한우’를 운영하고 있다. 장사는 잘 되나?(웃음)
“나 혼자 벌어서는 애들 키울 수가 없어서 시작했다. 이제 4년 되간다. 집사람이 도와주고 있는데 참 고맙다. 겨울은 비수기이고, 나머지 때는 괜찮다. 꼭 한 번 놀러 와라.(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