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디자인 개념에서 본 예술과 과학
[특별기고] 디자인 개념에서 본 예술과 과학
  •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회원
  • 승인 2013.04.3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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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술과 한(恨) 미술

<지난호에 이어>

▲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회원/전 서울대 초대 미술관장/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장
나는 일찍이 우리 예술을 두고  ‘恨’의 예술론을 펴는 사람을 보고 강한 거부감(拒否感)을 가져왔다. 굳이 일본의 미학자 야나기 씨를 말하지 않더라도 언제부터인가 예술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엄청난 진리를 터득한 것처럼 서슴없이 한국예술의 원동력은 ‘恨’으로부터 나온다고 역설한다. 차마 거역(拒逆)하기 힘든 문화계 지도급 인사들마저도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문화적 동인(動因)을 얘기 할 때면 원한(怨恨) 맺힌 ‘恨’의 예술 운운(云云) 하며 신이나 한다. 

문화의 발전은 문화 자체가 갖는 초유기체적(超有機體的) 접변성(接變性)에 의해 부단히 현실을 관통(貫通)하며 시대의식을 구축해 간다.  예술가의 삶 속에서 애증(愛憎)과 호(好). 불호(不好), 때로는 굴종(屈從)과 저항(抵抗), 자만(自慢)과 자학(自虐)으로 얼마나 많은 고뇌를 감내(堪耐)하며 살아가는가. 이러한 상황들이 창작적 동인으로 작용하여 예술로 승화(昇華) 될 수도 있지만 이러한 현실상황에 침몰(沈沒)되어 스트레스로 축적(蓄積)되면서 ‘홧병(火病)’으로 발전 될 수도 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국악기에 대금을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했다. 사노라면 세상은 온통 천파만파(千波萬波)로 얽히고 섥혀 어지러운데 다만 예술로서 맺은 한(恨)을 풀어주고 평안을 얻게 하는 관악기(管樂器)라는 뜻이다. 이것이 백성과 더불어 세상을 다스리는 여민락(與民樂)의 참뜻이기도하다.

맺힌 것을 풀어주어 생성(生成)하면 예술을 낳고 불만을 맺히게 하여 응어리지면 한(恨)은 언제까지나 한(恨)으로 남을 뿐이다. 오히려 우리 민족은 그리도 많은 불만을 관용(寬容)으로 용서하고 해학(諧謔)으로 풀면서 창조적 원동력으로 승화(昇華)하며 예술로 만들어 내는 지혜로운 민족이다. 이것을 풀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 원한이 맺히면 ‘홧병’이 되고 이 ‘홧병’이 고질화(痼疾化)되면 ‘恨’ 으로 남아 우울증상(憂鬱症狀)의 정신질환자(精神疾患者)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사상은 생산적이라면 ‘한(恨)’은 소비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恨)’ 그 자체는 절대로 예술이 될 수도 없고, 더구나 창조적 동인은 더더욱 될 수가 없는 정신질환일 뿐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민족의 훌륭한 문화의 창조적 동인을 '한(恨)’으로 규정짓는 이가 많음을 보고 통탄(痛嘆)하지 않을 수가 없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우리 예술적 근원은 웅혼한 ‘한(kahan)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 결코 자조적(自嘲的) 발상(發想)에서 나온 정신질환(精神疾患)의 ‘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恨)’은 원한(怨恨)으로 굳어져 정서(情緖)를 황폐화(荒廢化)시키고 불특정 다수를 향한 복수심(復讐心)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많음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니 ‘한(恨)’으로 맺히기 전에 용서(容恕)와 화해(和解)로써 감싸주고 이해로 조화할 줄 알면 창작으로 승화되는 너그러움의 미학이 발현(發顯)되는 것이다.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遺傳的) 너그러움,  곧 관용(寬容)의 바탕이 되는 ‘한사상(kahan思想)’은 한국예술의 엄청난 잠세력(潛勢力)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예술은 바로 이 ‘한 사상’에서 비롯된 관용미학(寬容美學)이라는 생각을 나는 오래전부터 암각화(岩刻畵)와 고구려벽화(高句麗壁畵) 그리고 고려불화(高麗佛畵) 등을 통해 그림으로 읽어왔다. 이것은 바로 한국미술이 범람(氾濫)하는 외래문화 속에서도 그들의 문화를 소화(消化)해내는 문화적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을 순명(順命)으로 받아드려 용서함으로써  ‘한(恨)’이 되기 전에 불만을 해학(諧謔)으로 풀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달관(達觀)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나는 2000년 5월에 화업 40년을 반추(反芻)하면서 내 그림의 전시명칭을 ‘한그림 40년 전’이라고 했다.  동양화(東洋畵)도 싫고, 그렇다고  한국화(韓國畵)란 말은 더더욱 싫어서이다. 분명 우리의 그림을 그려야할 다 같은 한국의 작들이 아직도 '서양화'를 그리고 있고 심지어는 '서양화가'라고 불러지고 있으니 막상 서양에도 존재하지 않는 '서양화(西洋畵)'와 '서양화가(西洋畵家)' 가 이 땅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矛盾)이며 더욱 싫다. 그것은 당연한 우리의 그림을 굳이 '한국화(韓國畵)'니 '한국화가(韓國畵家)'라고 부르는 시대착오적(時代錯誤的)인 발상이나,  우리의 예술이 ‘한(恨)’의 예술이라고 우기는 것만큼이나 싫어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우리의 미술은 분명 ‘한’사상으로부터 온 관용미학(寬容美學)에 근거하며 우리의 그림은 ‘한그림’ , 그냥 우리와 내가 중심이 되는 오직 ‘그림(繪畵)’일 따름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