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옛날 ‘우산국’이었던 ‘울릉도’와 ‘독도’
[특별기고]옛날 ‘우산국’이었던 ‘울릉도’와 ‘독도’
  • 심우성 (민속학자)/전 문화재청 무형문화재분과 위원&
  • 승인 2014.03.03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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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于山國) 」과 「耽羅國」이었던 울릉도와 제주도옛 우산국(于山國)을 찾아서 [Ⅰ]

지금은 아름다운 우리 섬인 ‘제주도’와 울릉도 남쪽 바다 큰 섬, 제주도(濟州島)는 탐라국(耽羅國)이었고, 동쪽바다 울릉도(鬱陵島)와 독도(獨島)는 우산국(于山國))이었다. 지금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우산국’의 이야기는 이번 호부터 옛날, ‘우산국’이었던 ‘울릉도’와 ‘독도’의 역사와 민속을 옛 문헌과 현지답사를 통하여 엮어나갈 것이다.
(탐라국 이야기는 ‘우산국 소개가 끝난 후 계속될 것임)

▲고려사 권58 울릉도 조(條)
6세기 초 무렵, 동해안의 두 섬인 무릉(武陵=울릉)과 우산(于山=獨島)에는 자그마한 섬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이것이 고대 조선에서의 부족국가의 하나였던 ‘우산국’이었다.

이 섬나라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생활방식은 오직 바다만을 상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우산국의 본거지인 무릉(울릉도)이 바로 주생활의 본거지였다면 우산은 어물의 수획지 역할을 했다.

두 섬은 우산국인들의 생존의 공급지인 동시에 생거지로 이용되었기에 부족민들이 힘을 다하여 이 곳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 획득한 어류? 해산물은 나라와 생명을 지키는 기본이 되었다.

이러한 관계로 본거지인 무릉(울릉)을 지키고 우산(독도)을 활용하는데 있어서는 다른 민족의 어떠한 침략도 없는 독점적 상황에서 통괄하여 왔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점차 우산국 어민들 가운데는 육지까지 왕래하며 다소간의 견물교류를 넓히며 교환도 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바다 가운데 고립돈 섬사람이면서도 직?간접적으로 육지의 본토민과 왕래가 빈번해졌음을 몇 몇 옛 문헌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고려사 권58 울릉도 조(條)
「‘우산과 무릉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았으며, 바람이 잔잔하여 청명한 날씨에는 서로 바라볼 수가 있었다......」'

■‘신증 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 조(條)
「‘하나는 무릉이며, 하나는 우릉(羽陵 =于山)이다. 두 섬은 현의 정동해 가운데 있다......」 '

이와 같은 옛 문헌들에서 오늘의 울릉도와 독도는 밝은 날에는 본토인 강원도의 울진에서도 볼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옛 ‘우산’ 또는 ‘익릉’이라 했던 오늘의 ‘독도’를 저희들으ㅢ 섬이라 억지를 부리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끔찍한 것은 그들이 좁디 좁은 섬나라에서 살다보니 별별 욕심을 다 부린다.
저희나라 북으로는 북해도와 러시아 사할린 사이에 있는 ‘쿠릴열도’의 영유권을 러시아와 겨루려 한다.

저희들 일본에서는 서쪽이 되는 ‘독도’가 또한 제 것이라고 이름도 ‘다케시마(竹島)’로 부르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려고까지 한다.

참으로 답답하여 이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다음 호에는 우산국이 어느 때부터 우리나라가 되었는지? 줄거리를 이어나가기로 하겠다.(다음 호에 계속)

*이번 호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원로 민속학자이자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객원교수를 지내신 심우성 선생의 ‘옛날에는「于山國) 」과 「耽羅國」이었던 울릉도와 제주도’ 의 역사적 고증과 현장답사에 기초해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명제에 대한 논거를 제시하고자 합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