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食道樂 9. <<충무로 쭈꾸미불고기>>
예술가의 食道樂 9. <<충무로 쭈꾸미불고기>>
  • 김종덕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의교수
  • 승인 2014.04.06 09: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종덕 창작춤집단 木 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강의 교수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감정의 절제와 지켜야할 덕목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남자다움에 길들여지고 훈련되어진다.

치열한 경쟁과 과도한 업무, 삶의 중량감 탓에 쳐진 어깨를 하고, 희생을 미덕으로 여기며 힘겨운 일상에 눈물어린 미소를 짓는 그들. 오늘, 이시대의 모든 아빠들에게 작은 위로를 통해 쳐진 어깨를 부추겨드리고 싶다.제30회 서울무용제 경연대상에 참가한 [아빠의 청춘]의 안무의도이다. 한 때, 아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이며 때로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아빠들은 권좌에서 내려와 가족부양의 의무를 다해야하는 자상한 아빠, 다정하면서 신뢰를 줄 수 있는 남편, 살벌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가련한 존재이다.

[쉐프파파의 쿠킹스토리] 저자인 이길남 역시 그런 아빠다. 그는 아내와 딸을 위해 ‘누구보다 쉽고 빠르게, 하지만 맛있게 만드는 특별한 요리’를 모아서 책으로 묶었다.

저자 이길남은 방송생활 17년차의 베테랑으로 업무상 밤낮이 뒤바뀌는 일도 다반사이고, 야근을 수시로 하며, 실수를 하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방송사고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예민한 직업군이다. 그러니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공유할 수 있는 것들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가끔 딸아이 간식을 위해 해주는 요리가 재미있고 즐겁기 시작했다.

제법 소질이 있다는 사실에 바쁜 업무를 쪼개가며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제 주말이면 아내와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직접 요리해줄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단다. 그 인자한 아빠이자 다정한 친구와 연인 같은 남편인 작가가 추천하는 맛 집을 소개하려고 한다.

충무로역 5번 출구 근처에 숯불구이 전문 ‘충무로 쭈꾸미 불고기’가 있다.

1976년부터 여기에 터를 잡고 쭈꾸미 불고기만 전문적으로 만들어 팔아온 식당으로 인근 직장인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숯불에 고추장 양념을 한 쭈꾸미와 조갯살을 구워내면 바다 내음이 후각을 자극할 뿐 아니라, 달콤하고 매콤한 미각이 살아나 쭈꾸미 한 마리에 소주 한 잔이 절로 어우러진다.

저녁 시간,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몰려와 빈자리가 없는 이곳에 또 하나의 별미는 쭈꾸미 볶은 밥으로, 양념을 한 주꾸미를 잘게 썰어 밥과 함께 볶다가 마지막에 김치를 넣어 볶아내면, 쫄깃한 주꾸미와 양념이 잘 배인 밥, 아삭거리며 씹히는 김치 맛이 포만감을 잊어버릴 만큼 환상적이다.

이곳에는 마음이 가난한 남편과 권좌에서 내려온 평범한 아빠, 업무에 시달리는 힘없는 남자들이 위로를 받고 충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다만 이집 인심은 후하지 않은 편이다. 수입산 쭈꾸미를 주재료로 쓰는 것에 비해 가격도 만만치 않으며, 사람 수에 관계없이 작은 뚝배기에 된장국 1인분과 반찬도 1인분 외에 추가를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직업 특성상 건강과 몸매에 대해 예민한 편이지만, 여기에 올 때만큼은 몸 관리도 뒤로 미룬 채, 쭈꾸미 볶음밥 2인분을 게 눈 감추듯 하고 만다.

충무로 쭈꾸미불고기
서울시 중구 필동 1가 3-20
☎ 02)2279-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