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국립현대무용단 <이미아직>,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의 드라마
[공연리뷰]국립현대무용단 <이미아직>,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의 드라마
  • 인순환 객원기자
  • 승인 2014.06.0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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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과 5월은 죽음에 대한 허무와 삶의 혼돈에 온 국민이 마음 추스르기 힘든 시기였다. 그런 가운데 지난 달 15일~18일까지 아르코대극장에서 올려진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미아직(Already Not Yet)>은 '세월호'에 희생된 원혼들을 위해 준비한 것처럼, 죽음을 위로하는 무대였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미아직' ,넋전의 무대

‘이미아직’은 ‘이미’라는 지난간 과거와 ‘아직’이란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의미가 한 단어로 묶여진 모순된 제목이지만, ‘죽음과 삶’ 그 사이에 분명 있을 ‘어떤 경계’의 세계를 상징한다.

무대가 열리면서 컴컴한 무대 한편에서 한줄기 빛에 의지한 검은 제례복 차림의 의상은 죽음에 대한 경건함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사람이 아닌 죽음의 영혼과 동행하는 넋전의 모습이다.

무속신앙에서 죽음을 위로하는 신들을 불러 올 때는 그들 간에 서열이 있다고 한다.

좁고도 긴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는 듯, 서늘한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수많은 죽음들이 무거운 걸음걸이로 차례차례 귀신과의 교접을 시도한다. 어느 듯 무대는 넋전을 통해 귀신을 다 불러 모았다. 넋전의 춤으로 무대는 달궈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생과 사, 그 사이에 맴도는 귀신들의 기운은 관객들을 서서히 무장해제시키며 빨아들인다.

뼈가 없는 연체동물의 몸짓으로 나타난 김민진이 도깨비 난장 춤으로 무대를 종횡무진 누빈다. 계속되는 넋전과 무용수들의 격렬한 듀엣과 군무가 이어지는 동안 무대는 4차원의 세계로 탈바꿈된다.국악동인‘고물’도 함께 합을 이뤄 관객의 넋을 빼앗는다.

지나친 무대열정이었을까? 죽은 자의 혼이 외롭지 않게 친구처럼 동행해야 하는 넋전들이 거의 분해 직전까지 간 것은(의도된 연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잠시 후 죽은 자와 산자를 위한 무대 위에 웃옷을 벗은 남자 무용수 다섯 명이 도열 한다. 등을 보이며 서있는 모습이 이미 죽었지만 아직은 떠나지 못한 죽은 자들의 미련을 가득 짊어지고 있다. 여자무용수가 미련을 떨쳐버리라고 그들의 등을 극장이 쩡쩡 울리도록 세게 내려친다. ‘여기서 더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갈 곳을 재촉하라’는 강한 동작은 무용수의 고통을 수반한 투혼이다. 순간, 맞고 있던, 아니 등 떠밀리던 무용수 중 한명이 뒤돌아서서 '저승길'을 재촉하는 그녀를 얼싸안아 버린다.

‘그래 죽은 자와 산 자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지, 아무리 다른 세계로 가도 내 머리 속에서 놓아주지 않으면 삶속에 같이 공존한다’는 은유다. 무대가 떠나갈 듯한 장단도 숨죽여 ‘이미아직’의 ‘긴장’에 동참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미아직'의 마지막 넋을 보내는 장면

비인비귀(非人非鬼)인가.

<이미아직>은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완전히 독립된 새로운 형태의 무대가 수도 없이 바뀐다. 무용수들은 입에서 거품을 뿜어내며 모든 에너지를 무대에 쏟아 놓았다.

땀으로 흠뻑 젖은 무대는 이제 시간을 정리하며 눈감고 서있는 무용수에게 다가가서 삼베 대신 신문으로 만든 염옷을 조심스럽게 입힌다. 그가 염옷을 입은 채로 여러 번 쓰러질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을 몸에 겹겹이 말고 살았고 계속 다른 생명체로 또 태어날지라도 지금은 이렇게 갑니다. 그리고 이 옷은 여러분 모두 입어야 합니다. 그때까지 반드시 잊지 말라”는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의 메시지를 반복해서, 분명히 전한다.

<이미아직>은 무대에 세워졌던 명부신장이 쓰러지고, 꽃처럼 흩뿌려지는 신문조각들과 함께 ‘이미’ 삶의 여정을 마무리한 자들이 ‘아직’의 그곳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은 색다른 창작의 묘미를 선보였다.

안애순 단장의 신작 <이미아직>은 삶과 죽음의 경계와 공존의 제의를 통해, 죽은 영혼들에 대한 위로와 남은 자의 숙제를 가슴 한 가득 던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