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웨인이글링 SIDC심사위원장]“한국무용수들, 세계 점령한 듯… 기량·수준 모두 괄목할만해”
[인터뷰 - 웨인이글링 SIDC심사위원장]“한국무용수들, 세계 점령한 듯… 기량·수준 모두 괄목할만해”
  • 윤다함 기자
  • 승인 2014.08.1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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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맞은 SIDC, 새로운 10년 향한 도약 기대

영국국립발레단 예술감독 / 더치국립발레단 예술감독 / 영국로열발레단 수석 무용수 등 역임
지난 4일 제11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Seoul International Dance Competition(이하 SIDC)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달 28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개막해 20개국 400여 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 행사로 개최된 이번 콩쿠르를 통해 미래의 스타무용수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SIDC는 발레, 컨템포러리무용, 민족무용 등을 아우르는 유일한 콩쿠르로서, 지난 10년간 아시아에서 가장 큰 무용올림픽으로 성장해왔다. 또한 우리 춤을 세계에 널리 알림과 동시에 한국무용수의 세계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자, 문화국가로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교량역할을 해왔다. 허영일 한예종 무용원장이 집행위원장을 맡고, 서울국제문화교류회 김성재 회장의 주관으로 젊고 유망한 무용수들을 발굴해 국제적인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 아래 지난 2004년부터 매년 거행돼왔다.

그동안 SIDC를 통해 레오니드 사라파노프, 이상은, 이은원, 휘트니 젠슨, 이재우 등 수많은 무용스타들이 발굴된 바 있으며, 특히 국제무용협회(CID-Unesco) 및 국제극예술협회(ITI)의 회원, 그리고 북경국제무용콩쿠르 선정 세계 주요 무용콩쿠르 등을 통해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의 경연대회로 공인받으며 세계 무용계의 한류바람에 힘쓰고 있다.

예년과 같이 올해에도 웨인 이글링 전 영국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웨인 이글링 심사위원장은 영국로열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며, 마고트폰테인 등과 함께 ‘레실피드’, ‘햄릿’ 등에서 주목받았으며,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를 연기해 발레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무용수로서의 활동을 접은 직후에는 곧바로 더치국립발레단(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 들어가 예술감독으로서 '마술피리', '호두까기인형' 등을 올렸다. 이후 영국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을 7년간 지낸 후 지난 2012년 자리에서 내려와 현재는 SIDC심사위원장을 비롯해 일본국립발레단 등 세계 유수 발레단에서 안무가로 활약 중이다. SIDC가 폐막하는 지난 4일, 그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그를 만나 올해 참가자들에 대한 인상, 한국 발레에 대한 이야기 등을 들어봤다.

 

-4일 SIDC가 폐막했다. 올해 콩쿠르를 마감하는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
“매년 SIDC에 참석할 때마다 느끼지만 참가자들이 새로운 경험을 얻거나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인맥을 쌓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참가자들이 어떤 것을 갖고 참가하는지 보는 재미와 동시에 뭔가를 얻어 나가는 것을 보는 건 아주 기쁜 일임을 다시 느꼈다.”

-올해 참가자들의 특징은 무엇이었나?
“발레 프리주니어가 이번 콩쿠르에서 특히 강세였다고 본다. 나이는 어리지만 능력 있는 참가자들이 참가해 실력 발휘를 했다. 한 심사위원은 올해 프리주니어는 시니어보다 더 낫다고 말했을 정도다. 내년부터는 프리주니어를 남녀로 더 세분화하고 싶다. 현재는 남녀 구분이 없으나, 남녀로 나누면 메달이 두 배로 많아지지 않겠나. 프리주니어 참가자들이 해가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는 걸 느끼는데, 메달이 3개밖에 되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

-심사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
“발모양이 어떻다는 둥의 테크닉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나는 예술가로서의 표현력을 보다 눈여겨본다. 얼마나 표현을 잘하고, 그것을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 말이다.”

-10년 가까이 SIDC를 위해 매해 한국을 찾고 있다. 처음 심사를 맡았던 당시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참가자들의 기량이나 수준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해는 더 잘하기도, 때론 비교적 수준이 떨어지는 때도 있어왔다. SIDC는 마치 올림픽과도 같다. 단거리 육상선수들의 기록을 보면 기록이 점점 단축돼지 않나. 그렇듯 기준은 점점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에는 유튜브 등을 통해 세계 각국의 무용수들의 춤을 언제라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인지 참가자들의 기량이 올라가고 있는 게 보다 더 뚜렷하게 보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현재 프리주니어의 실력이 10년 전 주니어의 실력과 같다.”

-올해 콩쿠르에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참가자가 있나?
“올해 프리주니어 금메달은 한 남성 참가자에게로 갔다. 보통 그 또래에서는 여성 참가자가 비교적 기술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그들이 우승하곤 했지만, 올해만큼은 그런 점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차지했기에 더 놀라웠다. 또한 주니어 부문의 한 여성 참가자가 눈에 띄었는데, 다른 심사위원들도 나와 생각이 같았는지 그 참가자를 위해 금메달 이상의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왔다. 금메달을 뛰어넘는 엄청난 실력의 참가자였다. 물론 그랑프리상이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시니어가 수상해왔기에 아무래도 주니어에게 돌아가기에는 어렵다. 이번 기회로 앞으로는 주니어 실력자를 위해 그의 대단한 미래를 칭찬해줄 상이 하나 생겼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SIDC는 한국 무용수들 외에도 세계무용수들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경연대회로, 한눈에 세계 여러 국가 참가자들을 비교해볼 수 있는 자리이다. 세계 속 한국 무용수들의 위치를 어떻게 생각하나?
“SIDC뿐만 아니라 해외 콩쿠르를 봐도 한국 무용수들이 우승하고 상을 가져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해외무용단에서도 한국인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 않나. 내 개인적으로는 SIDC 프리주니어에서 처음 만난 친구가 꾸준히 성장해가는 것을 보고 흐뭇했던 기억도 있다. 김지영은 현재 국립발레단 수석이지만 이전에는 더치국립발레단의 수석이기도 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은 독일 슈투르가르트발레단의 수석이었고… 한마디로 한국 무용수들이 세계를 점령했다고 할 수 있다.(웃음)”

-올해 SIDC에 중국 참가자들이 많더라. 중국무용수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중국 발레도 강세로 떠오르고 있다. 상하이, 베이징 등에 좋은 무용 학교가 있으며, 인구수가 엄청나다보니 그만큼 인재들도 많은 것 같다. 뛰어난 무용수들이 밀집돼 있으며 그에 따라 세계 유명 발레단에서 중국 무용수들을 많이 데려간다. 옵션이 많다는 것은 기회가 많다는 뜻 아니겠나. 다만 중국 발레리나들 중에 너무 마른 친구들이 많아 걱정된다. 물론 날씬해야하지만 예술성에 영향을 줄만큼 앙상한 발레리나들은 아름답다기보다는 거식증 환자처럼 보여 염려된다.”

-지난달 30일 SIDC 부대행사로, 직접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어떤 내용으로 이뤄졌나?
“참가자들이 누군지 모르니 클래스레벨은 프로페셔널 수준으로 맞춰 준비했다. 워크숍이 시작되고 보니 어린 친구들도 있고, 발레단 입성을 앞둔 전문적인 수준의 친구들도 있고, 아예 현대무용에 가까운 참가자들도 보였다. 하지만 내가 영국국립발레단이나 더치국립발레단에서 했던 것과 같은 수준의 수업으로 진행했다. 실력이 따르지 못하는 친구들은 그 와중에도 배우는 게 많았을 거라 생각되며, 실력이 뒷받침되는 친구들은 이 수준을 유지해야한다는 기준을 제시받았을 거다. 조금은 높은 수준으로 진행하더라도 모든 참가자들이 뭐든 얻을 것은 많다고 생각한다.”

-SIDC에는 민족무용 부분이 있다. 한국 전통춤을 본 적이 있나? 있다면 어떻게 감상했는지 궁금하다.
“발레, 현대 외에도 민족춤 부문이 있다는 게 SIDC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전통춤은 한국 고유의 영혼을 담고 있다고 느껴진다. 너무 신나고 재밌어서 매해 기대한다. 난 발레를 심사하긴 하지만 민족무용 무대는 꼭 본다. 다른 부문 참가자들은 SIDC처럼 민족춤 부문이 있는 콩쿠르에 참가한 것을 기회로 삼고 특별한 경험과 넓은 시야를 얻어가길 바란다.”

-한국의 현대무용을 어떻게 바라보나?
“현대무용 부문 심사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한국의 현대무용이 대체적으로 체조 혹은 운동에 가깝게 느껴진다고 하더라. 많이 돌고, 뛰고 하는 모습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비단 한국의 현대무용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 무용계에서도 이건 하나의 논쟁거리다. 현대무용에서의 체조와 예술의 경계선에 대해 말이다. 한국은 체조에 좀 더 치우친 느낌이라 어떤 심사위원들은 예술성이 부족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역동적인 무대를 보고 있으니 눈이 즐겁더라. 현대무용 자체가 큰 종목이고, 앞서 말한 논쟁거리가 끊이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발레와 더불어 현대무용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나?
“현대무용의 방향에 대해 내가 굳이 정의해보자면 정통 발레의 클래식한 요소를 빌려오면서도 오늘날 현대 시대의 움직임을 개발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발레무용수들이 현대무용을 추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더치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있을 적에는 마사그레이엄의 현대무용 레퍼토리 무대를 올린 적이 여러 번 있다. 당시 마사에게 연락해 현대무용과의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녀가 흔쾌히 응하며 9개의 안무를 보내줬는데, 그 중 6개를 무대에 올렸었다. 앞으로도 발레무용수들이 현대무용을 추는 것에 의의를 두고, 새로운 퓨전을 선보이기 위해 힘써야 한다. 뛰어난 무용수들의 많은 만큼 창의적인 안무가 개발이 절실하다.”

-현역으로 활동할 때와 현재를 비교해봤을 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한창 춤을 출 때는 오로지 내 자신, 목표 그리고 춤에만 집중하며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오고 나서는 그 집중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 옮겨갔다. 이제는 아내와 7살짜리 아들과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다.”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주연을 맡으며 유명 발레리노로 활발히 활동했다. 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 달라.
“막 무대에 오르기 시작할 때쯤인 18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무대 위에서 수석 발레리노는 벤치 뒤에 관객 몰래 숨어있고, 나는 무대 위로 천진난만하게 뛰어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관객은 벤치 뒤 숨어있는 수석 발레리노를 보며 깜짝 놀라는 게 포인트였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너무나 신나게 뛰어 들어가다 그만 벤치 위로 넘어지면서 숨어있던 발레리노가 정식 등장 전에 공개가 돼 버린 것은 물론 나는 무대를 망쳐버린 꼴이 됐다. 얼른 무대 뒤로 들어왔지만 예술감독은 나를 엄청 혼냈고, 몇 씬 후 다시 올라가야할 무대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3천명의 관객이 나를 보곤 ‘쟤가 또 나왔네’ 할 것 같았다.(웃음) 이게 얼마나 큰 기억인가 하냐면, 몇 년 뒤 같은 공연에서 난 수석발레리노를 맡았는데, 그때와 똑같은 장면에서 나는 벤치 뒤에 숨어있으려니 저 뛰어나오는 발레리노가 내가 그랬듯이 나에게로 와 넘어질까 조마조마했었다. 내 생애 가장 최악의 순간이다.(웃음)”

-영국국립발레단 예술감독 당시 티켓판매부진으로 힘들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역시 별반 다를 것 없는 상황이다. 발레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고 꾸준히 소비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영국에서 티켓을 팔고 싶으면 ‘백조의 호수’를 하면 된다.(웃음) 그만큼 익숙하지 않거나 새로운 작품은 관객의 관심을 받기가 힘들다. 예술감독으로서는 창의적인 것을 시도하고 싶지만 관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아주 어려운 부분이다. 이런 때일수록 새로운 안무가가 필요하다. 모두가 좋아하는 지금의 ‘백조의 호수’ 발레가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닌 것처럼 실력 있는 안무가의 창조성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또한 뛰어난 안무가와 더불어 훌륭한 예술감독, 무용수, 작곡가 등이 완벽히 조화를 이룰 때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다.”

-SIDC에 바라는 점은?
“긴 시간동안 함께 해왔지만, 집행위원장이신 허영일 한예종무용원장님이 이제껏 이끌어온 노력을 보면 정말 감사함을 느낀다. 정중히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첫 10년이 막을 내리고, 11회를 맞은 올해는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는 시기로, 앞으로 20년, 30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내가 바라는 건 앞으로 계속 초대받았으면 한다.(웃음) 이 심사위원장 자리가 내겐 너무도 영광스럽고 즐겁기 때문이다. 무용을 사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일반 대중들도 많이 찾아줬으면 한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해 달라.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도 그랬고, 예술감독을 그만뒀을 때도 미련이 없었다. 지금 나를 보면 거의 반 은퇴한 상태(semiretired)같다. 지금껏 24시간 내내 걱정에 시달렸다면 더 이상 그러지 않아 행복하고 또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 늘 ‘로빈후드’를 발레로 올리고 싶었는데, 현재 구상 중이다. 그저 막연한 계획이었다면 이제는 실제적으로 옮길 시기라고 생각한다. 좋은 안무가와 작곡가를 만나 내 머릿속 꿈을 꼭 실현하고 싶다.”